홍천군 제 2기 SNS서포터즈(2023~2024년)

겨레의 꽃, 무궁화 보급에 앞장선 한서 남궁억 선생 기념관을 가다

삼생아짐 2021. 4. 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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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군은 무궁화의 고장 

 

무궁화꽃이 바로 홍천군을 상징하는 꽃입니다. 

물론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이기도 하고요.

 

무궁화는 아욱과에 속하는 사철푸른 나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봄부터 가을까지 꽃을 피우고

겨울에는 잎을 떨구며

꽃이 한송이씩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는 꽃잎을 말아닫고 지지만 끊임없이 피고진다 하여

무궁화라 불리운답니다.

 

 

이 무궁화의 끈질긴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일제에 맞서 겨레의 얼을 고양시키기 위해

30만주의 무궁화 묘목을 심고 가꾸어 전국 각지로 보급하고

개화기에 일제 강점기에 독립을 위해 애써오신 한서 남궁억선생님이 바로 우리 고장 홍천 출신이시죠.

 

한서 남궁억 선생님은 1863년 서울 정동에서 출생하고 자랐지만 

고향은 홍천군 서면입니다. 

홍천군에서는 한서 남궁억 선생님의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고

그의 무궁화 사랑을 기리고자 서면에 한서 남궁억 기념관을 설립하였습니다. 

 

한서 남궁억 선생님은 1883년 최초의 영어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고종황제의 통역관을 거쳐 

 

일제 강점기

독립협회와 대한협회등의 활동을 통해 민족의 주권을 지키고

민족의 얼을 살리고 기리는데 평생을 바치셨지요. 

 

한서 남궁억 기념관에 가보면 

이러한 남궁억 선생님의 일대기와 

항일 활동, 

그리고 무궁화에 대한 사랑 및 저술서, 노랫말, 친필 등의 기록 등을 관람 할 수 있습니다. 

 

한서 남궁억 선생님은 1918년 고향인 홍천군 서면 모곡리로 귀향하셔서 

모곡교회와 모곡학교를 설립하고

백 여 곡의 애국가요와 역사책을 집필하셨습니다. 

 

남궁억 기념관 뒤에는 모곡예배당이 있는데요,

이 모곡 예배당은 1919년 9월 한서 남궁억 선생께서 지으신 곳으로 1933년 11월 '무궁화사건'으로 선생께서 구속되시고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뜯겨 폐교된 것을 2004년 6월에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한 것입니다. 

 

 

예배당 안에도 남궁억 선생님이 남기신 무궁화관련 자료와

노랫말

그리고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얼마전까지 홍천군에서는 전군민이 참여하는 지역 축제를 열었는데

한서 남궁억 선생님의 호를 따라 '한서제'라 부릅니다. 

 

코로나 때문에 잠시 멈춤이지만 

코로나가 종식되고 나면 다시 그 얼을 기리고 

뜻을 새기는 군민화합잔치를 열 수 있겠지요. 

 

기념관 밖에는 남궁억 선생님이 그토록 보급하기 위해 애썼던 무궁화 나무들이 빽빽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라 

아직 무궁화 꽃이 피지는 않았네요. 

 

한서 남궁억 기념관 맞은편에는 

무궁화 동산이 조성되어 있는데 

꽃이 피는 시기에 오면 장관을 이룰 듯 싶어요. 

무궁화는 꽃도 아름답지만 쓰임새가 매우 다양한 꽃인데요

정원수, 울타리 뿐만 아니라

나무껍질과 뿌리를 각종 위장병과 피부병 치료제로 써 왔답니다.

 

꽃봉오리는 요리에 쓰이기도 하고,

꽃차의 재료가 되기도 하며 나무껍질은 제지를 만드는데 이용되기도 했답니다.

특히 무궁화는 이질, 설사, 급만성대장염, 무좀, 구토와 목마름을 없애주며 독성을 풀어준다고 합니다.

 

위 사진은 무궁화 액기스를 내려 천연비누를 만든 것입니다. 

향도 좋고 피부미용에도 좋아 

우리꽃 무궁화가 정말 이로운 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무궁화 나무 사이 한서 남궁억 선생님의 필체가 새겨진 탑이 있네요.

 

한서 남궁억 선생님은

1933년 일제가 우리 민족의 정신을 말살시키기 위해 벚꽃을 보급하고 장려하는 것에 항거해

민족정신 고양을 위해 무궁화 보급과 함께 

'무궁화 동산'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가르쳤다는 죄목으로

일제에 의해 수감되어 옥고를 치루셨고 

그 휴유증으로 1939년 4월5일 만 77세로 소천하셨습니다.

그리고 1977년에 와서야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구요. 

 

'내가 죽거든 무덤을 만들지 말고
과목밑에 묻어 거름이나 되게 하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살아서의 삶은 물론

죽음 그 너머에서도 쓸모없는 사람이 되지않고 

한그루 나무의 거름이 되고자 하셨던 분의 뜻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즈음 홍천군 길가 가로수목으로 곳곳에 심어져

풍성하게 흩날리는 벚꽃을 보면

일제의 상징이라 벚꽃에 대항하여 무궁화 보급에 앞장섰던 남궁억 선생님의 심정이 느껴져 조금 안타깝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