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 옛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땅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어떤 삶의 모습으로 살아갔을까?
그리고 어떻게 죽어갔을까?
학창시절에 역사수업을 통해
그리고 어른이 된 후에는 우리나라 곳곳에 존재하는 박물관 관람을 통해
옛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볼 때면
신기하기도 하고
또 많은 연구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풀리지 않는
여러 의문점들도 여전히 남곤 했다.
(왜냐하면 그 시대 직접 살아보지 않았기에^^;;)
다만 후세대인 우리는
문헌이나 이러한 역사적 발굴품 등을 통해
그리고 탄소연대 등을 통해 추정할 뿐이다.
홍천읍에서 양양으로 넘어가는
56번 국도변
화촌면 군업리에는 여러 돌무더기들이 있다.
바로 고인돌
혹은 지석묘라 불리우는 무덤군락이다.
우리나라는 '고인돌의 나라'라고 불리울 정도로
전세계적으로 이 고인돌이 많이 발견되는 나라라는데
우리 홍천군에도 이 고인돌이 발견되어
강원도 기념물 제 56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인돌은 선사시대 권력자의 무덤이라고 알려져있다.
커다란 덮개돌을 받침돌로 고여 놓았다고 하여 고인돌이라 부르고,
한국과 일본에서는 지석묘(支石墓),
중국에서는 석붕(石棚), 유럽 등지에서는 돌멘(Dolmen) 등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고인돌은 받침돌 네개를 세워 지상에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편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과
땅속에 무덤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
그리고 땅 아래에 시신을 놓은 돌널을 마련하고 땅위에 덮개돌을 놓은 개석식 등
세가지로 나뉘는데
화촌면 군업리의 고인돌은 개석식으로 보인다.
청동기 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약 16기가 모여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한기가 더 있는데
아직도 발굴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아 고인돌의 성격은 명확하지 않다고...
바위의 이 까만 부분은 5천년 이상이 되어야 나타나는 현상이고
하얗게 핀 꽃은 2천년 이상 된 거라고...
우리가 즐겨 먹는 석이버섯이 피는 돌은 1억년 이상된 돌이어야만 된다는데...
백년도 못 사는 인간들이
천년, 5천년, 1억년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돌이 위대해 보이기까지 하다.
밖에서 지나치며 볼 때는 몰랐었는데
이집트에서 오벨리스크를 만들때 아스완 채석장에서 큰 돌을 잘라내던 방식을
이곳 지석묘에서도 보았다.
돌 사이에 구멍을 내고
이곳에 나무막대를 꽂아 물을 부어 나무막대가 팽창하면 돌을 잘라내었다는...
고인돌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무거운 돌무게를 감당하기위해 500 여 명 이상의 많은 사람들의 힘이 필요하기에
이 지역이 씨족공동체를 이루어 살았을거라는 점을 추정할 수 있고
일종의 계급사회였음을 추측하고 있다.
거인의 손자국이라는데, 글쎄^^
어떻게 파냈는지 정말 손자국모양으로 파여있다.
오래전
홍천군으로 시집와서 차를 타고 지나는데 이 고인돌을 처음 보았을때
그 위에 마을 할머님들이
빨갛게 익은 고추와 무우, 호박등을 썰어 널어놓은 모습을 보았었다.
어이가 없어 마악 웃고 말았지만
이또한 후손들을 위해
조상들이 남겨준 혜택이라 해야 하나...
지금은 테두리도 두르고
나름 안내석도 세워 놓았지만
부장품(껴묻거리)이라든가 어떤 시대의 어떤 사람들의 무덤이었는지
좀 더 자세한 연구가 이루어져
역사적인 가치를 바로 세웠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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