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리가 하얗게 내린 후입니다.
한껏 사람들의 눈을 황홀하게 만들던 단풍도
그 빛을 다하며 바닥에 떨어져
여기저기 뒹굴고 있습니다.
고로쇠나무과의 당단풍입니다.
그래도 눈을 뜨면 집 앞 마당에서 조금씩 물들어가는 재미를 보는 게 아쉬운 대로 좋았는데,
이젠 힘없이 한 잎... 두 잎... 제 잎을 떨어뜨리며 겨울을 준비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한낮의 따스한 햇살아래온갖 가을 것들은 여물어가고, 또 그 몸피를 줄여갑니다.
요맘때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면 부지런한 농가 아낙들의 가을 갈무리를 볼 수 있습니다.
10년을 두어도 썩지 않는다는 도토리가루를 만들기 위해
데굴데굴 도토리도 금방 져버리는 가을 햇살을 이리저리 쫒아갑니다.
닭벼슬처럼 붉게 타오르던 맨드라미꽃도 이렇게 햇살아래 말라갑니다.
이 맨드라미 꽃차는 여자들의 부인병 특히! 자궁계통에 좋다고 하는데,
아직 차로 마셔본 적은 없지만 이 맨드라미꽃이 술떡!
일명 증편에 얌전히 올라앉아 있는 것을 본 적은 있습니다.
저도 내년엔 집 앞에 몇 그루 심었다가
이렇게 따서 말려 차로 만들어보아야겠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농가의 아낙은 농가의 아낙인가 봅니다.
씨 뿌리는 봄만큼이나 바쁜 가을 하루들이기에 산더미처럼 쌓인 집안일들도 마무리해야 합니다.
찰옥수수가 나간 자리에 김장 배추와 무 그리고 들깨를 심었습니다.
워낙 겨울이 빨리 오기에 이모작은 엄두도 못 냈었는데
어느 해부터인가 조금씩 기온이 높아져 우리 지역에서도 이젠 이모작이 가능합니다.
배추도 통이 잘 앉도록 하나하나 묶어주고 무도 뽑아서 건사하고 시래기도 만들어 널어야합니다.
지난달 초, 모처럼 집에 들어온 아이들과 들깻잎을 따서 장아찌를 만들고...
그러고도 한참, 더 여물기를 기다렸다가 비로소 들깨단을 베어내서 양지바른 곳에
차곡차곡 쌓아 보름간 말렸습니다.
들깨 송이마다 굵고 까만 들깨알들이 실하게 들어찼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고소한 들깨향이 코를 찌릅니다.
처음엔 고무함지를 엎어놓고 방망이로 두들겨서 떨었는데
너무 팔이 아파 인상을 찡그렸더니 남편이 이웃집에서 도리깨를 빌려다가 털자고 하네요.
저야 물론 대찬성이지요.
안 그래도 팔이 아파서 이쪽저쪽 번갈아가며 두드렸는데,
도리깨를 쓰면 전 구경하다가 다 털어낸 깻짚단을 밭에 내놓기만 하면 되거든요.
둘이서 하루 종일 할 작업을 남편이 혼자 한나절 반에 후딱 해냅니다.
애벌 떨어낸 들깨알은 이파리와 줄기, 깻송이, 모래 등이 서로 엉켜서 엉망입니다.
굵은 바구니를 가져다가 흔들었더니가느다란 깨알들은 밑으로 떨어지고
이파리와 줄기는 위에 남아 거두어냅니다.
체를 사용하여 한번 더 꺼풀들을 분리해내고, 이제부터는 키질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시골에서 20년이 넘도록 살았어도 제가 못하는 몇 가지 중의 하나가
바로 이 키질입니다.
까부르면 찌꺼기는 나가고 알맹이만 남아야 하는데, 아무리 키질을 해도 섞여있는 것들은
여전히 그대로...그래서 동네형님들을 교대로 불러다 부탁드렸었지요.
그것도 한두 번이지, 너무 염치없어 몇 해 전부터 이렇게 선풍기를 이용합니다.
그러면서도 농가의 아낙이 키질을 할 줄 몰라 이런 번잡을 떤다는 은근한 열등감이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키질을 할 줄 아는 어르신들도 모두 이렇게 선풍기를 활용하시더라고요.
그 순간, 아... 나만 선풍기를 사용하는 게 아니구나~ 안심했지요.
그렇게 분리를 하고 불어냈어도 씻으려고 하면 모래며 자잘한 티 등이 너무 많아
집안에서 또 선풍기를 돌려댔더니세상에나~ 이렇게 많은 팃검불등과
덜 여문 들깨들이 날아 방안 이곳저곳에 흩어집니다.
아예 청소기를 대령하고 불어낸 뒤에 목욕탕으로 갖고 들어가 깨끗하게 씻었습니다.
이제 이 들깨는 다시 널어 말려서 세척들깨로 판매하기도 하고,
들기름을 짜서 가족친지들과 나누고, 또 감자탕이나 들깨 옹심이, 들깨 차,
들깨 초콜릿 만들기 체험 등으로 활용합니다.
세상만사 모두 마찬가지겠지만 농사일은 특히 사람의 품,
즉 수고와 정성, 그리고 인내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가끔 그런 생각합니다.
퇴직하시는 분들이 시골에 들어가 농사나 지을까...하고 쉽게 말씀하시는 분들 계신데,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바로 농사라는 생각이요.
농사를 짓는 토대가 되는 땅의 성질 을 알아
땅심을 길러줘야 건강한 작물을 생산할 수 있고,
기온, 날씨, 작물의 습성, 식물학, 비료의 올바른 쓰임, 물의 조절, 씨 뿌리고 거두는 시기, 농약 사용법,
농기계 사용법, 작물에 따른 두둑의 높이, 곤충의 피해예방 등 종합적인
그 모든 상식과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제대로 된 농산물을 수확할 수 있다는 생각이요.
사실 실패와 경험이 있지 않으면 농사는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안에 꾸준한 인내는 물론 바탕이 되어야겠지요.
그렇지만 주 종목인 찰옥수수와 벼농사 이외에도 이렇게 조금씩 거두는 서리태 콩,
들깨 등의 잡곡과 여벌 농사는 나도 이젠 땅을 허투루 놀리지 않는
진정한 농부의 아낙이구나...라는 자부심을 조금은 갖게도 해요.
비록 아직까지 키질을 할 줄 모르는 농가아낙이라 할 지라도요.^^
|
'농촌진흥청 블로그 쵸니 주부기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단호박으로 만든 영양 식혜! 드셔보세요~ (0) | 2014.11.07 |
---|---|
[스크랩] 가을 보양식 `추어탕` 맛있게 끓이기 (0) | 2014.11.07 |
[스크랩] 울타리콩의 매력에 한번 빠져 보실래요~? (0) | 2014.10.31 |
[스크랩] 농가의 고소득 효자작목 ‘산고들빼기’로 김치 담갔어요! (0) | 2014.10.10 |
[스크랩] 버리는 포도껍질과 개망초로 가을을 염색하다 (0) | 2014.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