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수라는 말, 아세요?
어떤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은 사람을 달인이라 한다면......
그 전에 제가 자주 쓰던 말, 명수라는 말 있어요.
(버럭개그의 달인, 개그맨 박명수씨 아닙니다^^;;)
저희 어머니나 친정어머니는 화분키우기의 명수세요.
어떤 화분이든지 비실비실해서 죽어가는 놈이라든가 키우기 어려운 녀석들
그리고 꽃을 보기 어렵다는 그 유명한 무슨 난이더라??
하여튼 그 난도 저의 양가 어머님들 손에 가면 꽃을 피웁니다.
반면 저는 화분죽이기의 명수(?)입니다.ㅡㅡ;;
어떤 화분이든지 제 손에만 오면 전부 빈 화분이 되어 나갑니다.
물을 한 달에 한 번도 줘도 된다는 벤자민인가 선인장인가 뭐 하여튼
누구나 쉽게 키울 수 있다는 것들도
빈 화분으로 만드는 신통한 재주가 있다고 저희 마을 형님들, 저를 보고 혀를 찹니다.
그래서 빈 화분 구하고 싶으면 저를 찾습니다.^^;;
저번에는 누가 난을 주신다고 하셔서 빈 화분 써야지...하고 잠시 밖에 내놓았는데
말도 없이 가져가버리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ㅠㅠ
뭐, 내 손에서 다시 빈 화분 되는 것보다 누군가 요긴하게 쓰겠지 하며 위안 삼았습니다.
......
그러던 제가 농사를 짓습니다.^^;;
이른 봄부터 거름내고, 밭 만들고,비닐 씌우고, 씨 뿌리고, 모종 심고,
하여튼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적당한 비와 거름으로 잘 자라나주는 녀석들이
또다시 사람 손을 기다립니다.
이렇게요......
모종을 묻을 때 복토했던 흙속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던 풀씨들이 살아나 고추를 괴롭히고요
고추 대궁 마디마디마다 곁가지들이 움터서
본가지를 추월해보겠다고 영양분을 빨아댑니다.
게다가 부지런한 개미들은
먹고 살겠다고 진딧물을 물어서 고추이파리 여기저기에다 붙여놓고요
방아다리라고...
음 사람으로 말하면 두 다리 사이에 달린 녀석들인데
이게 사람과는 달리 작물 고추에는 아무 쓸모가 없는 녀석들이예요.ㅋ
이녀석을 따주지 않으면 고추가 더이상 달리지도 않을 뿐더러
이녀석이 커서 익어가면 영양분을 모두 빼앗아 버리기에
그해 고추 농사는 끝(!)인거죠.
게다가 고추모종 밑에는 잡초처럼 보이지만
맛난 나물의 일종인 비름나물도 자라고 있고요
(사실 고추를 키우기 위해선 눈물을 머금고 이녀석들을 뽑아내야해요...ㅠㅠ)
이 비름나물을 일년에 세 번만 해서 먹으면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할만큼 신기한 나물이고
또 삶아서 초고추장에 무치면 참 맛난 나물이지만
고추를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뽑아줘야 하죠.
해마다 비름나물 먹는다고 이녀석들 남겼다가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크고
세력을 키우는지 가을쯤 가보면 고추는 흔적없고 이녀석들 세상이 되어버리죠.
지금도 찰옥수수 곁가지 따 줄 때면
이녀석들 남겨야하나,뽑아야하나 망설이게 되는 참 아까운 잡초네요.
하지만 어쩔 수 없죠, 고추를 키워야 하니 고추외의 녀석들은 몽조리 뽑아주고
고추 곁가지도 몽땅 따주고
진딧물이 너무 많은 이파리들도 따줘버리고...
(이녀석들이 제 팔에도 몸에도 달라붙어요...징글징글...ㅠㅠ)
그리고 주부의 본성 발휘
깨끗한 곁가지들은 바구니에 모아모아주지요.
이녀석들은 데쳐서 깨끗하게 헹구어 초고추장이나 간장으로 무치거나
데쳐서 말리면 나중에 무말랭이와 궁합이 잘 맞는 밑반찬이 되지요.
비록 일은 두 배로 더뎌지긴 하지만요.
따주기도 바쁜데 이 바구니 끌고 다니면 정말 일이 두배나 늦기에
이거 따서 모으시는 분들 별로 없어요.
그래서 고춧잎이 귀한 대접을 받지요.
바깥 밭의 고추를 손질해주고
찰옥수수모가 나간 자리에 심은 아삭이고추(일명 오이맛고추)들도 곁가지를 모두 따주었더니
제 속이 다 시원하네요.
남편이 어느새 방울토마토의 섶을 주고
곁가지를 따버렸네요.
방울토마토의 곁가지는 물에 담그었다 심으면 다시 또 한그루의 토마토모가 되는데
아깝당......
하여튼 방울토마토건, 토마토건, 고추건,오이건, 찰옥수수건, 호박이건
모든 작물은 곁가지가 달리는데
이것들을 모두 따주어야 하기에 봄철은 더 바쁜 철이 되는거죠.
그래서 지난 번에 삼성 SDS 자매결연사에서 오셔서 봉사활동 해 주신게
마을주민분들로선 정말 감사하고 요긴한 일이었죠.
한때 자연농업에 심취했을때
이 곁가지들을 따서 모아서 발효액을 만들어
작물에 농약을 치지 않고 희석한 곁가지 효소를 쳐주기도 했는데
영 효과가 없지는 않았던듯 싶어요.
제몸에서 난 것들이 제 몸을 지키는 영양분이 된다고 했던게 자연농업의 한 이론인데
이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또 작목도 전환하는 바람에 계속 실천하진 못했지만
나름 몸에 좋은 작물을 키운다는 이론을 이렇게 저렇게 공부하고 실천했던 기억이 있네요.
뭐,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남들보다 무엇을 재배하건간에 약을 적게 치거나 거의 안치지요.
일단 약을 치는 사람이 먼저 피해를 보고 다친다는게 저희집 농부의 지론이거든요.
그리고 그 약값도 정말 만만치 않거든요.
어쨌든 고추 곁가지를 쳐주고 나니
역시나...손가락 끝, 손톱밑이 새까맣게 물드네요.
지문 사이사이마다 고춧물이 배어들어 비눗물로 씻어도 잘 지워지지 않아
요맘때 농부의 아낙들을 만나면 모두 손가락끝이 새까만데
절대 때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요 흔적은 국민들의 소중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부의 흔적이니깐요.
손톱을 길게 길렀다가 깎거나
걸레 등을 손빨래 하면 좀 잘 지워지는 편이라 곁가지 따 줄 때쯤 조금 손톱을 기르기도 하지만
제가 워낙 손톱 긴건 못 참는 성격이라 손톱 길 새를 기다리지 못하고 그냥 따고 말았네요.
사실 오른쪽 손가락은 무지 시커먼데 요건 왼쪽이라 별로 안 까맣죠?ㅋ
정든 임 오실 때면 맛난 반찬으로 내어놓는다는 김용택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르게 하는 가지
보라색의 이쁜 꽃이 피었네요.
이파리에 뽀르스름하게 깔리는 분 보이시죠?
이녀석들이 가지가 커서 수확할 때쯤이면
가지밭에 들어갈 때마다 재채기가 나게 하고 알러지를 유발하는
가지의 자기보호수단 중 하나지요.
게다가 줄기와 이파리의 가시들은 얼마나 따가운지......
식물들의 자기 보호 수단을 보면 참 신기하고 놀랍지요.
하긴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녀석들, 그리고 가장 오래 살아남는 녀석들은
움직이고 사냥하는 사람들이나 동물들이 아니라
식물들이라 하더군요.
마를 캐기 어렵다해서 머리를 한 번 써 봤어요.
이녀석들은 수확할 때 쯤이면 땅을 일미터 정도 파고들어간다기에
포크레인으로 캐더라구요.
다 쓴 비료푸대를 재활용해서 마를 심었는데 너무 오랫동안 안 나와서 실패했나보다 했더니
물을 꾸준히 주고 햇볕 따뜻한 곳에 놔두었더니
이렇게 잘 싹이 터서 나왔네요.
가을쯤에 가서 요녀석의 비닐봉지를 쭈욱~~찢어주기만 하면
튼실한 마를 수확하는거죠.
기대됩니다.
아마도 고구마나 야콘같은 뿌리 식물들을 이렇게 재배하면 되지 않을까......
새벽 네시부터 나가서 부지런히 일하고 들어온 시간이 아침 여덟시
평상시에 늦잠을 자고 싶어 안달하던 막내녀석
모처럼 집에 들어왔길래 실컷 자라고 내버려뒀더니
정말 깨울때 꺼정 잘 모양입니다.
엄마, 아빠가 새벽부터 나가서 일하면
녀석도 좀 따라나와서 거들어줬으면 하는게 부모로서의 바람이기도 하지만
녀석들이 집에 올 때마다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또 오기싫어지지는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는게 부모로서의 염려이기도 하네요.
그러고보면 자식이나 작물이나 똑같다는 생각을 해요.
물론 화분도요.
적절한 환경 조성과, 관심은 약이 되지만
지나친 사랑과 배려는 독이 되기도 한다는 생각이요.
(그렇다고 이놈 늦잠자는게 '독'이라는 생각 안 해요.
저도 자랄때 아침 늦잠이 소원이었거든요.
어른들 대대로 모시고 사는 종가집이라 식사 때 밥상에 안 앉으면 불호령이 떨어졌어요.ㅠㅠ)
살아가면서......가끔 제가 생각해도 아이러니합니다.
화분 하나 제대로 건사 못하는 제가 농사를 짓다니요..ㅎㅎ
(그럴 때마다 제 남편, 농사는 네가 짓냐, 내가 짓는다고 큰소리 치지만
보세요, 이렇게 고추 곁가지 따주고
나중에 익으면 빨간고추 따주고
찰옥수수 곁가지 따주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농사일들이 여자 손 없이 되는지를요.
그걸 잘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할 때마다
조금씩 서운하기도 해요.
뒤끝 작렬 할 때면, 그래 내가 손 뗄터이니 당신 혼자 다 해!!!
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농촌 현실 뻔히 아니 참는거지요.ㅋ
어쨌든 제가 곁가지를 따주고 풀을 뽑고
남편이 말뚝을 박고 줄을 띄우고 비료를 줘서
당분간 고추농사 걱정은 잊었어요.
이녀석들이 무럭무럭 잘 자라서
따가운 가을 햇볕에 달그락달그락 말라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오늘도 역시나 속삭여봅니다.
무럭무럭 잘 자라라, 아기 고추야^^
ps. 고추꽃도 참 이쁘죠??
그러고보면 가만 들여다보면 꽃 중에서 이쁘지 않은 꽃은 하나도 없어요.
심지어 제 별명인 호박꽃조차두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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