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딸랑딸랑 전국을 떠도는 고단한 장돌뱅이들의 짐을 실어나르는 나귀들의 방울소리와
밤에 보면 하얀 눈 혹은 소금을 뿌린듯 아름답게 피는 메밀꽃들의 어우러짐이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란 소설의 한 구절을 생각나게 합니다.
원래 메밀은 물을 구하기 힘든 강원도 산골의 화전민들이 척박한 산자락 땅을 일구어 즐겨 심었던 작물이지만, 요즘은 논처럼 평평한 땅에도 마을 어르신들이 즐겨 심으십니다. 그리고 평창처럼 드넓은 곳에 메밀밭을 조성해서 축제를 열기도 하고 마을 경관사업으로 심는 곳도 많이 있지요.
어쨌든 차를 타고 지나치다보면 하얗고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밭이 눈길을 잡아끌고, 소설의 한 장면이 생각날 때면 동이의 어머니와 허생원의 하룻밤 물레방앗간에서의 수줍고 비밀스런 연애와 동이의 출생의 비밀, 그리고 달밤의 메밀밭을 방울소리를 울리며 지나가는 장돌뱅이들의 외로움과 고단함이 연상되고,
그 소설을 처음 읽었던 사춘기 소녀적의 싱숭생숭한 기분이 떠올라 어쩐지 마음을 설레게도 혹은 한숨이 나오게도 하는 메밀입니다.
더불어 어릴 적, 도시에서 자랄 때, 겨울저녁만 되면,
찹쌀떠억~~메밀무욱~~~
늦은 밤,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니던 메밀묵장사 아저씨의 그 처량하고 구슬픈 목소리가 겨울 밤 내내 귓가에 울리게 하던, 그래서 시험공부를 하다말고 창문을 열고 그 목소리가 사라져갈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던 그 메밀입니다.
인정 많은 아버지가 몇 번 사주시기도 하셨지만, 그때는 차갑게 식은 메밀묵을 한 입 먹어보곤, 이게 무슨 맛이야??? 하고 금방 외면해 버리기도 했던, 그런 철없던 기억도 있네요.
밭가장자리에 뿌려진 어린 메밀싹이지요.
잡초인줄 알고 자칫하면 밟고 지나치기도 여러번, 아차 싶어 돌아서서 '미안해, 미안해'를 저도모르게 연발하게 하는 메밀싹들.
이녀석은 고혈압과 다이어트에 좋다고 해서 주부들이 일부러 무순 키우듯이 키워서 샐러드를 해 먹기도 하는데요, 요 정도 자라면 조금 센 느낌이 납니다.
하지만 뜯어서 살짝 볶아 차를 달여 마시기도 하고, 나물처럼 먹어도 무방할 듯 싶네요.
홍천의 특산물이기도 한 이 메밀을 활용하여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바로 메밀총떡이지요.
제가 살고 있는 홍천에서도 메밀이 많이 재배되기에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요리에서 빼놓지 않고 선보이게 되는 것이 바로 이 메밀총떡입니다. 저희 마을 어머님들도 행사가 있을 때면 배추와 실파를 살짝 깔은 메밀적과 이 메밀총떡을 잘 만드시는데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의 하나랍니다.
매콤하고 아삭 씹히는 배추속과 두부가 메밀의 구수함과 어우러져 입안을 얼얼하게 하고 코끝에 땀이 송글 맺히게도 하는데 그 매콤함과 구수함이 시골 살이의 고단함과 넉넉함을 아울러 느끼게 하는 맛이기도 하지요.
홍천군 재래시장에 가면 이 메밀총떡을 전문적으로 구워서 판매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요즘은 전국 각지에서 전화로도, 인터넷으로도 많이 주문하셔서 홍천군의 맛자랑거리가 되어가고 있다고 하네요.
또, 동네 형님들이 겨울철, 집에서 담은 찰옥수수 동동주와 메밀묵을 쑤어서 곧잘 주시기도 하는데요, 우리 민재녀석은 이 메밀묵을 참 좋아해서 앉은 자리에서 두 덩어리나 순식간에 먹어치우곤 하지요. 물론 이 메밀로 만든 막국수도 엄청 좋아합니다.
뭐 동동주야 나중에 먹어야지 하고 김치 냉장고에 넣어두는데
사람 좋아하는 우리 서방님,
어느새 누군가에게 전달해서 하룻밤 자고 나면 사라지고 마는 요술(?)의 동동주가 되곤 하지요.ㅡㅡ;;
저로 말할 것 같으면 몇 해 전 겨울, 김장김치가 시어져서 이제 슬슬 만두를 빚어볼까나 하고 마트에서 사온 만두피를 뜯었다가
울 딸녀석 ; 엄마, 만두피를 사왔어요?? 어휴, 성의없게...
눈을 똥그랗게 뜨고 한심하다는 듯 투덜거리더니...
자기 아빠를 보자마자
"아빠, 엄마가 만두피 사왔대요. 만두피는 직접 반죽을 조물락조물락 빚어서 만들어야 부드럽고 맛있는데 이게 뭐야, 밀가루 투성이에 잘 붙지도 않고...
때마침 울시머니 전화가 오자 얼릉 받아서
"할머니, 엄마랑 만두 빚는데 엄마가 파는 만두피 사왔대요, 글쎄.엄마 되게 바보같죠, 그죠? 직접 반죽해서 만들면 더 맛있고 되게 쉬운데...
하면서 딸 녀석이 내둥 흉을 보고, 만두를 빚는 내내 궁시렁궁시렁 눈치주더니...
민재랑 영재넘마저 자기 누나 눈치를 슬슬 보며, 만두 빚으면서 잘 안 붙는다고 투덜거리자 딸녀석이 시골에서 만두피를 사다쓰는 사람이 어딨냐며 내내 잔소리를 해대서 제가 어쩔 수 없이 급한대로 메밀가루를 꺼내 메밀만두를 빚게 만들었던
엄마로서 체면 안 서고, 속이 쓰라리고도 쬐끔 창피한,
그러면서도 만들어 놓은 메밀만두의 맛이 의외로 구수하고 괜찮았던 기억으로 남은 메밀입니다.
홍천군 농업기술센터 향토음식 특화마을 만들기 시간에 이 메밀을 활용하여 도우넛을 만들어 보았는데요, 이 메밀 도우넛 맛도 꽤 괜찮습니다.
잘 숙성시킨 메밀도우넛 반죽을 도우넛 모양으로 잘라내는데, 이때 도우넛 틀이 없으면 아쉬운대로 주전자뚜껑과 소주병 뚜껑으로 눌러 모양을 만들고, 그도 마땅 찮으면 꽈배기 모양으로 돌돌 말아 잘라 줍니다.
그리고 이녀석들을 약 180~190도의 기름에 튀겨내면 되는데,
역시 온도계가 없으면 조그만 반죽 하나를 떼어내어 기름에 떨구었을때 뽀긃뽀글 거품을 내며 솟아오르면 튀기기에 알맞은 온도가 되는거지요. (주부 구단만의 노하우랍니다.ㅋ)
이렇게 튀겨낸 메밀도우넛을 키친 타올에 넣고 기름을 빼고, 계피가루와 설탕에 굴려내면 요렇게 고소하고 맛난 메밀도우넛이 완성됩니다.
교수님이 평가를 안 해주시니 다들 열심히 만드시곤 나눠 싸면서 담는 것에 신경을 안 쓰길래
제가 우리조는 스톱!!! 외치곤 꽃 따다 장식했더니
형님들이 "꽃 꽤나 좋아해" 그러면서 저보고 꽃 좋아함 늙는거라 하네요.
하긴 제 나이가 새파란 울 엄마 할머니 만들어드린 나이니 할 말 없네요.ㅡㅡ;;
(남편이 하도 졸라 졸업도 하기전에 일찍 결혼하는 바람에 ...남편은 도리어 절 구제해줬다고 큰소리 치는데,글쎄요
그당시 아마 대한민국 처자들이 절(!)때로 시골로 시집오지 않으려 하던 때니까 제가 농촌총각 구제해준게 아닐런지...
^.~)뭐 어쨌든 누구나 꽃을 좋아하지 않을까요?? 안 그래요??
그나저나 우아하게 베이커리 수업하고 열무김치 꺼내 도넛에 곁들이는 우리는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 농촌 아줌마들입니다. 그러면서 저도 손가락으로 한개 집어먹습니다.
아~~~ 이 개운함이여~~ㅋ
(참고로 저 손가락 제 손가락 아니구요, 저도 역시나 손으로 집어먹었는데, 그 맛도 또 괜찮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메밀도우넛 맛이 궁금한 분들을 위해 메밀도우넛 레시피 올려 드려요.
준비물 : 밀가루 중력분(900g), 메밀가루(100g), 달걀 (400g, 네개 정도?), 설탕(450g),소금 10g, 버터 150g, 탈지분유 40g, 베이킹파우더 30g, ,바닐라향 2g, 넛메그(향신료) 4g
1. 밀가루, 메밀가루, 베이킹파우더는 체로 쳐고요,
2. 달걀은 설탕, 넛메그, 소금을 넣고 잘 풀어주고요
3. 버터는 중탕으로 녹여 위의 것들을 몽땅 섞어줍니다.
이때, 너무 오래 치대면 글루텐이 형성되어 질겨지고 잘 안튀겨지므로 살살 섞어야 합니다.
4. 밀가루를 도마에 깔고 1센티미터 두께로 밀어 도우넛틀로 찍어냅니다.
5. 기름이 180~190정도 되면 튀겨내어 계피가루를 섞은 설탕가루에 굴려냅니다.
(위의 레시피는 한림성심대학 이형우 교수님이 제공해 주신것입니다. 좋은 수업 감사드립니다. 이 메밀 도우넛은 저희 마을 식체험 상품으로 등록할 예정이랍니다.
아울러 좋은 교육 커리큘럼으로 마을 부녀회원들에게 새로운 학습 의욕을 북돋워주신 홍천군 농업기술센터 윤용권 소장님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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