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성장일기)

가을 거두미

삼생아짐 2012. 9. 24.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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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다가와서 그런지

 

수시로 원서를 넣고 심란해서 그런지

 

고3 수험생인 아들녀석, 일주일전부터 집에 오고 싶다고 자꾸만 자꾸만 조르네요. 

 

 

시험도 얼마 안 남았는데 웬만하면 그냥 학교에 남아서 공부나 하지 그랬더니

 

너무너무 집에 오고 싶어서 공부가 안된대요.

 

그래, 더 바빠지고, 더 자라나면 오고 싶어도 더 못 오겠지 싶어서

 

오라고 했더니...

 

이번에는 자습이 다 끝나면 저녁때나 되어야 한다면서 더 일찍 오고 싶대요.

 

 

 그럼 어찌해줄까 했더니

 

선생님한테 아빠가 잘 말씀드려주면 일찍 보내준대요.

 

그러자, 녀석아빠, 꾀 부리고 땡치는 녀석 혼내주기는 커녕

 

선생님한테 아빠가 일찍 오라 그랬다고 말씀드리래요.ㅡㅡ;;

 

안 믿기면 아빠한테 전화하시라고 하라네요.

 

(정말 대단한 아빠예요.

 

저희 자랄 땐 저희 아버지 너무 엄격하셔서 꿈도 못 꾸었던 일인데 말이예요.

 

좋은 아빠가 꿈이라더니 정말 좋은 아빠 맞네요.)

  

녀석, 야호~~신나서 소리치더니 민재녀석까지 데리고 정말 점심시간도 되기전에 집에 왔네요.

 

 

오자마자 뭉뭉이랑 놀고, 축구도 하고, 쿡티브로 지나간 프로그램도 실컷 보고

 

너무너무 신나게 놀길래

 

에라, 조금 얄미운 김에 그동안 미뤄두었던 고구마나 캐야지 하고

 

삼부자를 밭으로 내쫓아 버렸네요.

 

 

저더러 수확의 기쁨(?)을 누리라며 은근 고구마캐기를 차일피일 미루던 남편

 

제가 든든한 일꾼 두명 준비해놓았다고 했더니

 

어쩔 수 없이 두 아들 데리고 고구마를 캐는데...

 

 

거름 한 번 안 줬어도 생각보다 굵고 실하네요.

 

양은 많진 않지만 그래도 고구마 좋아하는 수향녀석이랑

 

저희 어머니 드실 만큼은 되네요.

 

정말 땅은 심은만큼, 뿌린 만큼 돌려준다는 말이 딱 맞습니다.

 

 

전 고구마 줄기가 너무 실해서 고구마 줄기와 이파리를 수확했지요.

 

 

줄기를 뜯다보니 가끔 요렇게 돌려나오는 것들도 줍는 재미가 있네요.

 

 

고구마를 수확하면서 이리저리 뻗어나간 호박덩쿨 속에서

 

이쁘게 맺혀있는 풋호박과 멧돌호박도 덩달아 몇 개 수확했구요.

 

요즘  명절을 앞두고 호박값이 많이 올라갔는데

 

찌개 끓이고, 남는 것은 얼릴 만큼은 되네요.

 

 

제 형과 아빠가 고구마를 캘 동안 화장실에 가서 폰으로 실컷 게임하고 나온 민재녀석

 

이번에는 고추대를 뽑으라고 시켰더니

 

멀리서 휙 집어던져서 하우스에 기어이 구멍을 내 놓았네요.

 

제 형한테 욕 실컷 먹고,

 

제 눈치만 실실 보네요.

 

녀석 혼자만 있을 때에는 꽤 잘하더니, 형이 있으니 은근 꾀를 부려요.

 

 

수확한 고구마와 고구마 줄기, 그리고 멧돌 호박, 애호박 등을 나르라고 시켰더니

 

어슬렁 어슬렁 기어가듯이 가니깐 기어이 녀석형이

 

-야, 너 빨리 못 다녀??

 

하고 소리치네요.

 

녀석, 궁시렁궁시렁거리면서 자기는 시속 일킬로라네요.

 

무시하지 말래요.

 

세시간이면 이거 끌고 서석에 간다네요.

 

(서석까지 약 3킬로미터 정도니깐 시속 일킬로미터로 세시간이면 간다는거죠.ㅡㅡ;;)

 

하여튼 이녀석은 자기 형만 있으면 은근 뺀질이가 되어버려요.

 

 

예전에도 야콘 캐면서 형은 부지런히 일하는데 이녀석은

 

소변보는 척 이 짓 하다 제 형한테 혼나고 

 

 

엻심히 야콘을 고르면서 일하는 제 형한테

 

 "야!!!" 하고 몇 번 불러대더니, 잔뜩 열받은 형한테 쫓겨달아나면서

 

"콘~~~~" 하고 놀려대다가 기어이 한대 얻어맞고...

 

 

고추섶 정리할 때에도 제형은 열심히 일하는데 청량고추 뒤집어쓰고, 정글놀이하고

 

 

아빠한테 고추값도 못하는 녀석이라 야단맞고...

 

저한테 하소연하면서도

 

연실 그 매운 청량고추를 까고 놀다가 고추독이 올라 저녁에 잔뜩 고생도 하곤 했지요.

 

그러고보니 녀석들과 함께 보낸 수확의 시간들은 모두 즐거운 추억이 되어버렸네요.

 

 

제가 고구마줄기에서 이파리를 떼어내고

 

 

또 쌈으로 먹을 만한 깨끗한 이파리들을 골라내니

 

 

옆에서 도와주는 척 하다가

 

 

비글이와 뭉뭉이를 산책시킨다는 핑게를 대고 역시나 내빼버리네요.

 

"엄마, 민재는 머리가 좋은 거 같아. 일하기 싫으니깐 비글이 산책시킨다고 가버리잖아."

 

영재녀석, 그런 동생을 보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젓네요.

 

-그건 머리가 좋은게 아니라 JQ(잔대가리지수)가 높은거야.

 

했더니, 영재녀석, 씨익 웃네요.

 

어쨌든 나이차가 좀 나니깐 동생의 그런 면들도 미워하질 않고 나름 이해해주고 넘겨주니

 

은근 녀석의 너그러움이 대견하고 기특합니다.

 

하긴 어쩌면...하도 당해서 포기했는지도 모르겠지만요.

 

 

녀석들이 강아지랑 놀 동안 전 고구마 줄기를 하나하나 까서

 

 

삶아내고, 일부는 냉동시켜서 저장하고, 또 일부는 춘천의 어머님댁으로 내보내려 따로 싸놓고 

 

 

그리고 고구마 줄기 볶음을 만들었어요.

 

 

또 고구마 이파리는 깨끗하게 씻어

 

 

고구마 이파리 쌈을 싸먹도록 밥상에 올렸지요.

 

페이스북에서 어떤 페친 한 분이 고구마 이파리를 먹으면 맛나다고 해서

 

정말 쌈으로 올려놓았는데 난생 처음 먹어본 것 치곤 맛이 제법 괜찮네요.

 

영재도 민재도 이 고구마 이파리에 돼지고기 김치볶음을 올려서 쌈을 맛나게 싸먹네요.

 

 

모처럼 집에 와서 비글이랑 뭉뭉이랑 실컷 놀고

 

집안 일도 도와주고

 

제가 해 주는 밥도 맛나게 몽땅몽땅 먹어치운 녀석들

 

잔뜩 기운이 나서 각자의 새로운 터전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이게 바로 집밥의 힘인가봅니다.

 

 

민재녀석, 고구마 캘 때에는 있는대로 꾀를 부리더니

 

고구마를 좀 가져다가 할머니께 드리라고 했더니

 

제일 큰 것들만 골라담아와서 일등품만 가져간다고 좋아하네요.

 

 

-이녀석아,고구마는 큰게 좋은게 아니야. 큰건 싱거워서 맛없어.

 

그랬더니 낭패했다는 듯 벙뜬 표정

 

 

-할머니한테 맛탕 해달라그래

 

그랬더니 다시 함박웃음을 짓네요.

 

 

-네가 캔거라고 하면서 가져다드려.알았지?

 

 

했더니 녀석, 은근 찔리는 표정.

 

어찌되었든 녀석들이 집에 들어와주는 바람에 모처럼 밀린 농사일들도 모조리 마치고

 

그야말로 수확의 기쁨(?)을 담뿍 누렸네요.

 

 

혼자서 하면 지루하고 힘들었을 시골 가을 거두미도

 

가족과 함께 하니 그야말로 즐거운 추억이 되네요.

 

비록 녀석들에겐 고달픈 주말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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