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사랑니

삼생아짐 2010. 7. 5.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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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친정엄마가 사랑니를 뽑아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거라고 하셨는데, 세 개를 뽑아내고 아직 마지막 하나가 남았네요.

 

처음 사랑니를 뽑던 날은 첫아이 수향이를 낳고 한 달 정도 지난 후였죠.  길게 박힌 뿌리가 부러져버려서 자그마치 6시간에 걸친 혈투끝에 끄집어 내었는데, 그동안 시시때때로 맞은 마취주사의 후유증하며, 시커멓게 멍든 볼은 가히 가관이었죠.

눈물 글썽이며 잔뜩 부운 볼을 움켜쥐고 병원을 나서면서 다시는 사랑니따위 빼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는데......

사람들은  부부쌈이라도 해서 얻어맞은 것마냥 이상한 눈초리로 흘깃흘깃 쳐다보는데...일일이 변명도 못하고...하여튼 사랑니 뽑던 기억은 두고두고 악몽 그 자체였네요.

어쩔 수 없어서 그 후로도 5년 간격으로 두 개를 더 빼냈는데, 그 때마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정말 치과는 가고 싶지 않은 곳 중의 하나였지요.

 그래서 나머지 하나는 이나이 먹도록 결국 남겨두고 말았네요.

 

근데...

 

제 딸 수향이가 자라서 어느덧 사랑니를 뺀다네요.

한 개를 빼내는데, 엄마 딸 아니랄까봐 저처럼 뿌리가 깊어 잇몸을 째고 수술을 했는데, 염증이 심해 결국 다른 사랑니는 손도 못대고 말았답니다.

녀석, 사랑니를 빼더니 엄마한테서 쉬고 싶다고 집으로 와서 잠들었는데, 열도 나고 식은 땀도 흘리네요.

깨어나서 죽을 먹고, 조금 기운을 차린 수향넘

" 엄마, 나 어른되니깐 너무 싫어."

 

뜬금없이 그러네요.

 

삼생아짐 ; 어른 되어서 좋달땐 언제고?? 뭐가 그렇게 싫은데??

수향넘 ; 마음대로 술집 드나들어도 민증검사도 안 하고, 슈퍼에서 술 사도 아무렇지도 않게 주고, 카페에 가도 이상한 눈으로 안 보고, 특히 무엇보다 19세이상 영화를 아무렇지도 않게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슬퍼. 그리고 사랑니도 빼야하구.

삼생아짐 ; 헐~~

 

녀석, 대학생 되자마자 좋다고 신나하던 일들이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으니 벌써 싫증난 건가요.

아님 어른이 되어서 책임져야 할 삶의 무게를 조금씩 느끼기 시작하는 건지, 그도 아님 사랑니 빼는게 넘 힘들었는지...

 

삼생아짐 ; 걱정마, 네 정신연령은 아직 초딩이니깐.

하고 말았는데...

 

그랬던게 엊그제 같은데, 이놈의 제 마지막 남은 사랑니 하나가 드뎌 말썽을 일으킨 거지요.

 

치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을 모르죠.

볼이 욱신욱신 쑤시고, 잇몸이 자르르 찌르는 듯하고, 얼굴 전체를 돌아 광대뼈와 관자놀이, 머리끝꺼정 두드리듯이 울리고,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몸살나고,

걷기는 커녕 머리만 이쪽저쪽으로 돌려도 흔들리면서 아픈데...정말 애 낳던 때보다 더 아파요.

 

그 와중에 울 영재넘, 충치가 많길래 그동안 치과좀 다니라 했더니 가기 싫다는걸 혼내서 아버지 친구분이 하시는 치과에 보내서 엊그제 치료가 끝났는데, 제가 이 아프다니깐 대뜸

"엄마, 그러길래 양치질 좀 잘 하지. 쯧쯧..."

하는거예요. 가만 들어보니 이거 제가 평소에 녀석에게 하던 말......

이녀석이 분가해서도 당한 만큼 돌려주는 건 똑같아요.

게다가 녀석, 한술 더 보태서..

"엄마, 치과에 가면 말이야, 드릴 같은 걸로 드륵 드륵 간 다음에, 송곳 같은 기계로 찡찡 파내구, 거기다가 바람넣는 콤프레샤 같은 걸로 바람 팍팍 불어넣는다?? 아마, 아픔이 온 몸으로 파고들걸???" 하면서 고소해하네요.

 

게다가 수향넘...쪽지를 보냈는데...

 

 

수향넘 ; 사랑니는 그렇게 안 빼는데^^ 집게로 이빨을 우그덕 뽀갠담에 쑤욱 집어내는데^^

 

이래놨네요.

 

에휴...제가 자식들을 잘못 길렀나봐요, 엄마의 고통에 위로는 못할망정 이렇게 고소해하며 더 겁을 주니 말이예요.

그 와중에 울 최후의 보루만 빨래 해서 널어주고, 약도 챙겨주네요.

역시 자식들 크면 아무 소용없다는게 맞아요.

 

 

제가 속으로 녀석들한테 욕을 바가지로 하고 있는데, 수향넘, 미안한지...또 쪽지 보냈네요.

 

수향넘 ; 뽑아주셰여 !!!!!!!!!!!  사랑니는 ,  뽀개서 꺼내는거야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춘천으로 오는 고속도로나와서 , 엄마친구가한다는 X레스토랑??응?? 거기 맞은편에 X치과라고있어 ,
거기서 용순이 실습해 ㅋㅋ글루가서 뽑아달라그래 ㅋㅋ
아니면 한달만 참고 이겨레실습나오면 가던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사랑니아프면 자야되 ㅎㅎㅎ

 

그래도 마지막에는 자라고 충고를 해 주네요.

(안 그래도 이틀동안 약먹고 방구들 지구 누웠다, 녀석아!!

도대체 주말에 여는 치과는 왜 없는거얌...ㅠㅠ)

 

그나저나 사랑니는 왜 있는 걸까요...

음식을 씹을때 앞니로 자르고, 질긴 건 송곳니로 찢고, 잘게 부수는 건 어금니가 하는데

도대체 쓸데도 없는 사랑니는 왜 생겨나서 속을 썩이냐구요... 

어제오늘 먹어치운 진통제가 도대체 몇 알인지...아침에 일어나니 얼굴 팅팅붓고, 목도 아프고, 머리는 말 그대로 사자개마냥 산발이고...속마저 쓰려요.

 

내일 아침 되자마자 치과부터 가야겠다고 벼르는데, 울 최후의 보루, 가봤자 진료도 못한다고...통증 가라앉기 전엔 손 못댄다면서 염장 지르네요.

정말 이 사랑니 마저 뽑고나면...어른이 되는게 아니라 팍삭 늙는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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