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흙빨래

삼생아짐 2010. 7. 4.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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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이 벗어놓은 작업복을 빨다보면...

 

가끔씩 서글퍼집니다.

 

 

옷사이에 배어든 흙탕물이 목욕탕 벽은 물론 바닥 타일에마저 스며들고

 

내 손에도, 플라스틱 세수대에도 심지어 샤워꼭지에도 흙물이 배여듭니다.

 

 

농사일을 하다보면...

 

그렇게 논에서 일하다보면 논의 진흙물로 뒤범벅되는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흙강아지라는 말...실감납니다.

 

 

흙물은 세탁을 해도 잘 지지도 않습니다.

 

손으로 비누칠해서 여러번 헹구어내고

 

그렇게 세탁기에 넣고 돌려도 여전히 흙물이 나옵니다.

 

 

단 한번도 흙을 더럽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모든 생명을 키워내는 게 바로 흙이니깐요.

 

하지만 흙을 만지는 이 일들을

 

누군가는 천하다 여기고

 

누군가는 부끄럽게 여기기도 합니다.

 

 

사실...저또한 남편을 도와 일을 하다

 

흙강아지가 된 적도 많습니다.

 

모판을 날라준다든가, 모심을 때 건네 준다든가, 또 모를 심고 난 상자를 받아 씻다보면

 

제 옷에도 진한 흙물이 들곤 하죠.

 

 

예전에 친정어머니가 친구분들과 놀러오셨었죠.

 

근데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오셔서 그만 제가 남편의 커다랗고 시커먼 장화를 신고

 

(논에 댈 물이 흐르는 용소로가 깊어 여자 장화를 신으면 장화속으로 물이 들어가거든요.)

 

흙투성이가 되어 도랑에 빠져 상자를 씻고 있는 걸 보고 마셨죠.

 

순간 당황하시던 엄마의 모습...

 

 

우리 딸 농군 다 됐죠??? 하시면서 웃음으로 얼버무리셨지만

 

어쩌면 어머니의 그 눈길은 안쓰러움 보다는 친구분들에 대한

 

부끄러움이 아니었나 생각들 정도로 어머니가 당황하셔서

 

저도 덩달아 무안해지고 말았답니다... 

 

정작 흙투성이였던 저는 부끄럽지 않은데, 저를 보는 어머니와 어머님 친구들의 당황한 눈길에

 

제 자신이 더 당황스러웠던 기억들...

 

어쩌면 지금의 남편도 흙을 묻힌 그 얼굴과 모습이 아무렇지 않은데

 

그걸 지켜보는 제가 더 아파하는 건 아닌지...

 

 

학교에서 돌아온 민재녀석

 

아버지를 도와 일 거들겠다고...나섰습니다.

 

 

역시나 아빠의 큰 장화를 신고

 

모를 심고 난 모판을 실어 창고로 나릅니다.

 

 

예전같으면 형이랑 누나랑 같이 했을 일들을

 

이제 녀석 혼자 있으니

 

녀석의 몫이 되어 버렸네요.

 

아빠가 하라고 시키지 않았는데도

 

농부의 아들답게 아빠의 일을 거들러 나선거지요.

 

 

다음다음날이 시험인데...

 

일하는게 더 좋다네요.

 

녀석또한 제 아빠와 나란히 저녁에 흙빨래를 벗어 놓네요.

 

 

가끔 공부하는 것보다 농사짓는게 더 좋다는 녀석들을 볼 때면

 

농사의 어려움을 설명해 주고, 직접 체험해 보라 합니다.

 

그리고 이제 농사도 씨뿌리고 거두기만 하면 되는게 아니라

 

연구하고, 노력해서

 

물 밀듯이 들어오는 외국 농산물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그리고 그 농사또한

 

사람의 맘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토양의 성질, 기후, 작물의 성질, 적절한 약의 사용등

 

그 모든 것을 다 터득해야 제대로 된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해 낼 수 있다고

 

말해주곤 하는데...

 

농사일은 '도피'가 아니라 '선택'이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해주곤 하는데...

 

얼마나 이 말을 이해할런지요......

 

 

 세상 살아나가면서 좋은 옷을 입고

 

깨끗한 사무실에서 일을 해야만

 

성공하는 거라고 말하는 이 세상에서

 

이렇게 흙강아지가 되고, 시커멓게 그을린 모습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행복을 진정으로 누려본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며,

 

또한 누구나 그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이렇게 말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답니다......

 

 

자식에게 자신이 하는 일을 진정으로 물려주고 싶어한다면

 

그건 분명 행복한 선택이겠지만...

 

만나는 많은 분들로부터 회의섞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농촌은 혼자서 살아갈 수가 없고

 

또한 농촌마을 사업또한 혼자서 되는 일이 아니기에

 

많은 농민들의 단합을 필요로 하지만

 

때로는 정말 농심이 모래알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한때는 주변에서 명망있는 마을 지도자였다가

 

어느 순간, 몇 몇 목소리 큰 주민들과 갈등을 빚고 마을일에서 손을 뗀 분들을 만날때면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사람이 싫다구요...

 

사람이 너무 무섭다고까지 하십니다.

 

사업을 유치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일 할 때는 바쁘다고 모른 척 하고

 

막상 유치해오면

 

수고했다, 함께 해 보자 대신에

 

어떤 이득이라도 챙기지 않았는지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끊임없이 비난하고......

 

이득이 생긴다 싶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구요.

 

 

그렇게 정이 떨어져 물러난 후에 한결같이 하시는 말씀이

 

차라리 모두 손을 놓으니 편하다고......하시네요.

 

 그러면서 저희 보고도 이제 손을 떼고 물러나라구요...

 

더 늦기 전에 정신 차리고 자기 갈 길 가라구요...

 

가장 중요한 건 가족의 생계와 행복이지 결코 농민들의 삶이 아니라는 겁니다...

 

맘 고생을 겪었을 그 분들의 눈길과 표정과 한숨이 정말 가슴 아팠습니다.

 

 

저또한 작게나마 그 과정을 겪어 보았구요...

 

순수하게 정말 내 욕심 차리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좋은 일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하겠다고 했던 일들이

 

온갖 오해와 비난과 갈등과 원망으로 돌아오던 시간들...

 

겪어 보았으니깐요.

 

 

어쩌면 차라리 하지 않은게 더 나았을지도 몰랐다는 후회, 정말 절실히 했죠.

 

지금도 마음은 반반입니다.

 

 

상처입은 그 분에게...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 방울의 물이 바위를 뚫는다구요...

 

칡과 등나무를 말씀드렸습니다.

 

칡과 등나무를 일컬어 '갈등'이라 한다지요.

 

그 엉키고 꼬임이 보기 싫어 모두 다 쳐내버리면

 

그 나무는 죽고 말지요.

 

느리지만, 더디지만, 그래도 변하고 있지 않은가...라구요.

 

그치만...제 답 또한 확신없습니다.

 

저또한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해야하고,

 

자식으로서, 가족으로서 도리를 해야하고,

 

생활해야 하고...

 

그래서 농사일 외에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하고 살면서...

 

적어도 이담에 돌아보건대

 

자식에게 부끄러운 부모는 되지 말자고

 

좀 더 노력할 걸 이라는 후회는 하지 말자고 하면서요.

 

 

오늘...직장을 그만두고 농사를 짓고 싶다고, 귀농하고 싶다고 찾아온

 

젊은 부부를 만났습니다.

 

20년전, 저희 부부의 모습이 생각나더군요.

 

끊임없이 보채는 어린 아기를 보면서...

 

남편이 그 아기에게  "너도 쫌 있으면 촌놈되겠구나......"하더군요.

 

 

흙을 업으로 삼고자 하는 부부의 선택이 옳은 선택이기를,

 

후회없는 선택이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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