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마을 이야기

밤, 밤, 밤

삼생아짐 2008. 10. 17. 16:36
728x90

 누군가 문을 똑똑 두드려서 열어보니

 

뒷집아저씨가 들어오시지도 않고

 

현관문을 여시더니 시커먼 비닐 봉지를 쑤욱 들이미시네요.

 

 

 

뒷집 아저씨 ; 올핸 밤이 아주 벌레가 많이 먹었어.

 

그래도 좋은 밤이니깐...

 

다 먹지 말구 남겨뒀다 수향이 줘요.

 

열어보니...

 

 

정말 밤이예요.

 

벌레먹은 것도 있고...

 

 

배추벌레랑 옥수수벌레는 이제 어느정도 면역이 됐지만...

 

밤벌레는...

 

삼생아짐 ; 벌레 먹은거는 버림 안될까??

 

그랬더니 울 최후의 보루, 삶아서 벌레 안 먹은 쪽으로 파먹음 된다네요.

 

예전에 사과나 복숭아 먹다가 벌레 나오면

 

더이상 먹지 못하고 버렸었는데...

 

어른들이 벌레 없는 쪽을 발라서 드시는 거 보고

 

저걸 어찌 먹나...했는데...

 

울 최후의 보루가 그런 말 하니깐 갑자기 파악(!) 나이들어 보이는 거 있죠??

 

 

어쨌든 벌레 먹은거랑 안먹은거랑 골라서 따로 놔뒀어요.

 

벌레 안 먹은 거는 골라서 군밤 해줬더니 아이들이랑 울 최후의 보루,

 

참 맛나게

 

잘 먹더라구요.

 

 

그나저나 고다음날...

 

뒷집 아저씨가 또 문을 두드리세요.

 

그래서 열어보았더니

 

또(!) 밤을 주시네요.

 

 

뒷집아저씨 ; 이거 수향엄마 다 먹지 말구 놔뒀다 수향이줘요.

 

수향이 꼭 줘야돼, 알았지??

 

신신당부를......

 

삼생아짐 ; 저를 밤만 먹어치우는 밤벌레 취급하시넹...

 

아무렴 수향이 안 줬을까봐...

 

근데 생각해보니 정말 전날 군밤해먹을 때 울 수향이 없었네요.

 

 

 

예전에 저따라 나와서 바람 쐬다가...

 

밤 한 송이 따려다가 호미가 나무에 걸려서

 

고생했던 이넘...

 

어릴 때부터 온 동네 밤을 끌어모아오던 녀석이라...

 

녀석이 아빠닮아 밤을 무척 좋아하는 건 알았지만

 

뒷집 아저씨꺼정 울 수향이 밤 좋아하는 걸 아셔서...

 

 

 

 

밤서리하는 넘을 혼내기보다

 

방안에서 따놓으셨던 밤을 한봉지 내주셨던 아저씨가...

 

두고두고 밤을 내주시니 더욱 죄송한 생각이...

 

주시고 또 주시고, 또 주시고...

 

그 후로도 두 번을 더 주시더라구요.

 

덕분에 울 냉장고 한켠에 밤이 수북...

 

 

게다가

 

이건 면장님이 주신 밤...

 

이양훈 면장님댁에 밤나무가 있는데...

 

아마 주워서 보내셨나봐요.

 

잘먹을께요, 면장님.

 

인사가 넘 늦었네요.

 

 

이렇게 모아둔 밤들은 하나하나 칼집을 내어

 

불때고 재를 담은 화로에 구워먹으면 참 좋겠지만...

 

아쉬운대로 석쇠에 얹어

 

가스렌지에 구워먹어요.

 

 

불꽃이 탁탁 튀기며 밤굽는 구수한 냄새가 집안 가득 퍼지면...

 

울 녀석들 얼릉먹고 싶어 난리죠.

 

 

사실 저는 이 군밤을 까주다보면...

 

먹을 새가 없는데

 

가위바위보꺼정 하면서 순서를 기다려 먹던 넘들이

 

 그래도 한 두개 정도 입에 넣어 주어요.

 

그러면서 기다리느라 감질 난 녀석들이 자기들도 깐다고 설쳐대는데,

 

밤껍질 부스러기가 온 방안에 널리는 건 시간문제.

 

치우는게 더 힘들죠.

 

 

 

그래도 까보라 시키죠.

 

근데 이게 무지 뜨겁거든요.

 

집자마자 어마, 뜨거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뜨거울 때 까야 잘 까지니깐......제가 묵묵히 까주면...

 

녀석들, 감탄도 했다가 신기해하기도 했다가

 

어쩌다 하나 까면

 

자랑스럽게 제 입에 넣어주네요.

 

 

 

울 최후의 보루는 가만히 누워서 텔레비젼 보면서

 

제가 열심히 까놓은 거 아이들이 다람쥐마냥 날라다 주면...

 

한 입에 툭(!) 털어넣죠.

 

 

가끔가끔 그 모습 보면...살며시 신경질 좀 나는데...

 

(제가 어쩐지 하녀가 된 기분이...)

 

그래도 여름내 우리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으니깐 이정도쯤이야...

 

이해하죠.

 

(제가 원래 이해심이 많걸랑요.)

 

 

 

군밤 좋아하는 가족들을 위해 손톱 밑에 밤껍질 가시가 박혀도

 

열심히 까요.

 

그러다 가끔 심술보 발휘되면...

 

군밤은 쳐다보지도 않고 텔레비젼 화면만 보던 울 최후의 보루가

 

먹던 밤에 밤벌레 반쪽이 나와도...

 

전 책임 못져요.

 

먹는 사람 책임이니깐요.

 

 

 http://samsaeng.invil.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