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에 선 얼라같다“
이튿날은 객실 키를 잃어버려 가방을 모두 다 쏟았다. 둘숙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본다.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하롱베이 관광에 나섰다.
유람선을 타고 도는 하롱베이의 바다는 푸르다. 300여 개의 기암괴석과 바다 위의 석회 동굴을 견학했다. 한국의 동굴보다는 아기자기한 맛이 떨어지지만 바다위에 있는 동굴이라 신기하긴 했다.
베트남은 과일의 천국이다. 지난 여름 외국인 주부를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을 했을 때 김로안 이라는 베트남 주부를 가르쳤었다. 한국에 온 지 3개월, 임신 2개월의 가녀린 소녀같은 로안은 입덧을 하면서, 내가 베트남에 간다고 하자 눈물을 글썽이며 맛있는 과일 많이 먹고 오라고 했다.
한국의 과일은 너무 비싸고 맛이 없단다. 베트남은 과일이 많다고, 베트남 과일이 제일 맛있다고 했다. 람프탄, 밑, 얀, 망고스틴, 주먹 파인애플, 용과...
두리안은 과일의 황제라지만 냄새가 역하다 해서 결국 먹지 못했다. 로안을 생각하며, 나처럼 과일킬러인 우리 막내 녀석을 생각하며 한국으로 가져오고 싶었지만 공항 통관이 불가능하다 해서 대신 열심히 먹었다. 내 평생 처음으로 과일에 질릴 정도로.....
바다에서 물고기와 게, 새우를 잡아 관광객들에게 제공하는 수상가옥 사람들, 평생동안 단 한 번도 육지를 밟아보지 못했다는 잡종개 한 마리와 관광객들에게 막대 사탕 하나를 받아 제 오라비에게 자랑하며 맛나게 빨던 어린 소녀까지, 가인(지게)을 진 여자들과 도시 한가운데를 헤집고 다니는 씨클루(인력거)군들.
베트남의 모습은 변화의 모습이기보다 옛 것을 그대로 고수하는 모습이다. 자연을 개발하기 보다 자연에서 얻는 것을 그대로 누리면서 만족하는 삶, 안분지족의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얼굴에는 조급함이 없다. 대체로 선량하고 대체로 편안한 얼굴이다.
더 많이 갖겠다고 욕심내지 않으니 찌푸려질 일도 없다.
다만 우리 같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가서 물쓰듯이 돈을 쓰다보니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사람들은 다소 약삭빠른 표정들이 보인다. 작은 심부름 하나를 해 주고도 팁을 요구한다. 한국 돈 천원은 베트남에서도, 저 먼 중국 계림의 골짜기에서도 어린 소녀, 늙은 할머니에겐 익숙한 돈이다. 일 달러, 혹은 단 돈 천원. 한국인들을 보면 달려오며 내뱉는 그들의 첫마디다. 나중엔 우리끼리 농담으로 일달러를 외쳤다. 사진 찍는데 일달러, 가방 들어주는데 일달러, 노래 불러 주는데 일달러. 모자 빌려 주는 데 일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