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국외)

베트남여행기9

삼생아짐 2007. 11. 11.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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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롱베이에서의 마지막 날 밤, 문학의 밤을 열자고 했다. 느낌이 오지 않으면 글을 쓸 수도 없다. 모두들 다작하는 편이라 글쓰는 것에 부담이 없어 보인다. 나만 큰일났다.

한가롭게 코박고 즐기던 차창 밖 단상도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도 몰라. 느낌이 오면 쓰는 거구, 아님 말구. 돌팔매 맞지, 뭐.

잠을 자다가 과제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너무 일찍 잠이 깨버렸다.

습관이란 참 무섭다. 한국보다 두 시간 늦는데도 한국 시간 정확히  네 시 반에 잠에서 깨었다.

베트남 시간 두시 반.

어둠 속에서 글이나 써야지, 작정하고  불도 못 켜고, 창문 밖에서 비쳐 들어오는 호텔 불빛을 의지 삼아 가방 주머니를 뒤적뒤적 뒤졌더니 네모난 두꺼운 종이쪽이 손에 잡힌다. 이거다,수첩. 꺼내고서 창가의 테이블로 와서 앉았더니 통장 네 장이 손에 집혀있다.  남편이 여행 떠날 때 중요한 건 모두 놓고 가라고, 차열쇠며 보험 카드며, 그런 것들을 꺼내 놓았는데 정작 해외에선 아무 쓸모도 없는 통장만은 내 놓지 못했다.

너무 오랫동안 통장의 잔고만을 의식하며 살아왔던 내 자신이 보여 씁쓸했다.

지난 여름, 참 무섭게도 퍼부었던 빗 속에서 거의 50년된 저수지가 터진다며 짐을 꾸리라 할 때도 나는 참 막막했었다.

너무도 중요한 게 없었다. 값나가는 물건도 없었다. 결혼 패물도 지난 1997년 외환위기일때아이들 금반지와 함께 모두 금모으기 운동으로 팔아버렸고, 딱히 꼭 지켜야겠다는 중요한 것들이 별로 생각나질 않았다.

여덟 살 짜리 막내 녀석만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바쁘더니 양손에 검은 비닐봉지 한가득, 등에는 불룩한 책가방을 메고 일찌감치 길 밖으로 나와 섰다.

뭐 들었냐?

제 누나가 아이의 짐을 열어보고 나서 깔깔거리며 자지러졌다.

궁금해서 모두들 아이의 짐을 들여다보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에 한바탕 웃음이 벌어졌다. 왼손에 든 비닐 봉지에는 종이딱지며, 접는 딱지, 구슬등이 한 가득이었고, 오른 손에는 피아노 학원 가방, 그리고 등에 멘 가방에는 산에서 살아남기, 빙하에서 살아남기,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등 등 아이가 손에서 놓지 않던 서바이벌 시리즈가 스무 권이 넘도록 빵빵하게 들어있었다. 그 때 내가 챙긴 것은 달랑 통장 네 개와 긴 옷 가지 몇 벌 뿐이었다. 그 통장이 베트남까지 따라왔다. 참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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