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마을 이야기

산살림

삼생아짐 2008. 5. 10.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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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고사리와 고비도 구별을 못할 때

 

동네 형님들 따라 나물 뜯으러 따라갔어요.

 

나물 뜯으면 담는다고 커다란 쌀자루 끈으로 엮어서 배낭만들고

 

(그것도 형님들이 만들어 주셨어요...제가 커다란 등산배낭 메고 나오니깐...

 

기가막히다는 듯이 웃으시면서...)

 

 

옆구리에 다래끼도 차고, 장화도 신고

 

제법 모습을 갖추었죠.

 

 

울 최후의 보루 ; 그렇게 큰 거 필요없을 걸?? 원래 공부못하는 놈이 가방 크다고

 

하나도 못 뜯을게 뻔한데...

 

 

웬만하면 가지 말지.

 

 

그래도 제가 굳이굳이 따라나서니깐...

 

최후의 보루 ; 아무래도 형수님들 고생하게 생겼네.

 

나물 뜯으러 갔다 괜히 길이라도 잃어버릴라.

 

형수님들 뒤에 꼭 붙어다녀. 그리고 뱀조심해!!!

 

도대체 웬 잔소리가 그리 많은지...

 

신신당부를...

 

삼생아짐 ; (속으로) 그래도 내가 왕년에 꽤 등산다녔었는데...걱정은...


 

 

근데 남편이 왜 그렇게 말렸는지를 알겠더라구요.

 

예전에 제가 다닌 산들은 등산로가 개척되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산이라

 

길이 잘 안내되어 있는데...

 

이 산들은 길을 만들면서 가야 되더라구요.

 

 

 

게다가 동네 형님들은 산으로 올라가면서 길가에서도 연실 무언가를 뜯고 캐어서 넣는데

 

저는 뭐가 뭔지 도대체 모르겠더라구요.

 

제가 멍청히 쳐다보고 있으면...

 

 

형님들이 씨익 웃으면서 제 다래끼에도

 

 하나씩 넣어주는데

 

그게 바로 더덕, 산마늘, 산달롱...그런 거더라구요.

 

에라, 모르겠다...

 

기냥 열심히 쫓아서 올라가기만 했지요.

 

어쨌든 빈 보따리는 아니니...집에 가서 큰소리는 칠 수 있겠다 싶어서

 

 혼자 즐거워서요.

 

 

근데 산에서 눈알같이 동그랗게 말리면서 털이 부숭부숭한 무섭게 생긴

 

풀들을 본 거예요.

 

기겁을 해서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저게 뭐냐 그랬더니

 

형님들이 '고비'라고...

 

 

 

한가닥으로 올라오면 고비

 

세가닥으로 갈라지면 고사리

 

맛이 고비가 더 좋은데 제사상에는 고사리를 쓴대요.

 

고사리가 세가닥으로 갈라져서 자손 번식하라는 의미에서

 

고비보다 고사리를 쓴다네요.

 

(우리 조상들도 참 재미있죠??)

 

 

 고비가 퍼드러지면 고사리랑 비슷해지는데...

 

깊은 산 속에서 퍼드러진 고비랑 고사리는 꼭 아마존 정글 숲 같은게

 

으스스해요.

 

이끼 낀 바위 속, 시커먼 구멍에서는 꼭 뱀들이 쑤욱 머리를 내밀것 같구요...

 

 

사실 그 며칠 전 우리 뒷집 아저씨랑 남편이 산에 곰취 뜯으러 갔다가

 

살모사가 남편의 머리위 나뭇가지에서 고개를 쑤욱~~

 

기겁한 남편이 소리지르자 아저씨가 '아싸, 돈벌었다' 하면서 얼른

 

뱀 잡아서 그걸 팔아다가 통닭 사오셨더라구요.

 

울 남편, 아저씨가 잡아온 뱀이 수컷이니까 암컷이 나타날지 모른다고...

 

울 신랑 ; (손으로 뱀 흉내내면서) 내 신랑 돌려됴~~~

 

은근히 겁을...




 남편이 나물 뜯어와서 자랑하는거 보고 제가 기어이

 

동네형님들 따라 나선 거지요.

 

저보고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 갈거라고 놀리는 거 얄미워서, 제가 오기가 나서...

 

 

그날 날랜 다람쥐같은 형님들 따라다니느라고 온 몸에 알배고

 

벌 비슷하게 생긴 이상한 곤충(등에라던가, 벌보다 몸통 큰...)에 쏘였는데

 

집에 와서 보니깐 얘가 아예 제 등에 박혀있더라구요.

 

하여튼 그날 제 배낭부터 가득 채워준 형님들이 저보고 아래에서 기다리라 그랬는데

 

풀숲에서 바스락 소리만 들려도 화들짝 놀라고...

 

가만히 앉아 기다리다 무서워서 혼자 개울따라 내려오다...길 잃어버려서...

 

이끼 낀 바위에 미끄러져 발목삐고

 

개울에 빠져서 옷 젖고...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뻔하고...

 

바위 붙들고 헤매고 있는데...

 

나물 다 뜯어서 내려오던 형님들, 위에서 저를 내려다보며 ; 거기에서 뭐해?? 

 

삼생아짐 ; 산에서는 무조건 개울만 따라 내려오면 된다고 들어서...

 

형님들 ; 저런...여기 이렇게 좋은 길이 있는데??

 

개울따라 내려가면 한시간 길, 세시간 걸려.

 

 

근데 알고보니 바로 낭떠러지위에 우리가 올라갔던 길이 희미하게 있는데

 

제가 괜히 개울로 내려와서 헤맨거드라고요...

 

 

 그 후로 웬만하면 깊은 산 나물 뜯으러는 절대 안 따라가요.

 

동네 형님들이 산에서 나물 뜯어왔다면서 한웅큼씩 주고 가는 산나물들이

 

얼마나 고생해서 어렵게 뜯어온 건지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 후부터 그만큼 고맙고 소중하게 여기며 먹지요.

 

......

 

 

저 고비도 캐어다가 저렇게 조경수로 심어놓으니깐 그럴듯해 보이네요.

 

고비 볼 때마다 예전 생각나서 씁쓸하긴 하지만...

 

 

그래도 요즘 나물철이 되니깐 슬슬 따라나서고 싶은 생각도 들고...

 

산에 다녀온 분들이 어떤 산에 고비랑 고사리랑 곰취가 많다는 소리를 하니깐

 

그 광경이 눈에 그려지기도 하고...

 

그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