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져? 안까져!(1)
아아, 5월.
어찌 그리 행사가 많은지...
영농자금 받은 지 몇 달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통장은 잔고 제로, 아니 바닥을 파고들어 마이너스다. 들어오는 돈은 없고 두더쥐 구멍에 물 새듯 여기저기 쓰일 곳만 태산 같은 달.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결혼식, 환갑잔치 기타 등 등. 그나마 어린이날이랑 어버이날은 아이들과 거래해서 서로 뽀뽀 한 번 해 주는 조건으로 까고,
(엄마, 어린이 날 선물!)
(너 어버이날 선물 준비했어?)
(아니.)
(그럼 준비 할 수 있어?)
(설레설레)
(그럼 우리 비기자. 서로 뽀뽀해주기.)
아이의 표정은 뭔가 억울해 보이지만 어쩔 수 없다. 받으려면 줄 줄도 알아야지. 세상 이치가 그런걸.
하지만 시어머니랑 친정 부모님 용돈과 선물만은 챙겨 드렸다. 내가 효도해야 자식도 본받아서 나한테 효도한다는 어수룩한 속셈을 깔고. 그런 속셈 아니어도 사람이라면 마땅히 할 도리긴 하지만.
게다가 농사일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밭 갈고, 씨 뿌리고, 고추, 가지, 토마토, 옥수수 등 대량으로 팔 작물 말고도 텃밭에 이런저런 야채모종들 심어야지, 게다가 논에 모내기 마저 마쳐야지, 정말 정신없다.
지난 밤 늦게까지 천이백 평 밭에 단 둘이서 비닐 씌우고, 팔 다리에 알이 배고 온 몸이 나른해져 늘어지는데 남편이 커다란 보따리 보따리 양 손에 가득 들고도 모자라 두 번씩 나갔다 온다.
"이거 좀 손질해라.“
“이게 뭔데?”
좀처럼 집에 뭘 사들고 오는 사람이 아닌데 이게 웬일?
“오리야.”
“무슨 오리? 이게 다 오리야?”
평소에 떴는지 감았는지 모를 정도로 조그맣던 눈이 화등잔만해진다.
“내일 체험 때 쓸 오리.”
“체험에 무슨 오리를 써? 산거라야 논에다 풀어놓기 하지. 죽은 오리 갖구 뭘해?”
“점심 식사 하고 오후에 지게 깎기 하면서 숯불구이 할거야.”
“날보구 이거 다 손질하라구?”
“응. 그냥 닭갈비 재우듯이 양념도 하구...”
순간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 얼핏 봐도 삼십 마리는 넘어 보인다.
“몇 마리야?”
“사십 마리.”
100 명 분 이란다. 목욕탕 고무함지에 쏟아놓고 보니 더 엄청나다. 비린내하며 피하며, 함지가득 담긴 허연 오리들의 사체를 보니 욕지기가 절로 난다. 게다가 몇 년 전에 안 좋았던 기억마저 떠올라 더 끔찍하다.
이웃 마을에서 오리농법으로 쌀을 재배하고 난 후 사료 값도 비싸고 생명 가진 거 굶어죽일 수도 없고, 그래서 오리를 처치할 길이 없다면서 강제로 떠안기다시피 먹으라고 가져왔다. 그전에 닭을 기를 때 남편이 닭 잡겠다고 과도로 닭 가슴을 찔렀는데 그 닭이 살아나서 온 집안을 피를 흘리며 돌아다닌 탓에 아이들도 나도 기겁을 한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남편은 이웃집 아저씨를 불러 반타작하는 조건으로(한 마리 잡으면 그 아저씨 한 마리 가져가는 방식) 겨우겨우 기르던 닭을 다 처분하고, 다시는 닭 잡는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오리도 이웃집 아저씨를 불렀는데 아저씨는 오리는 깃털이 물에 젖지 않기 때문에 더운 물에 튀겨지지 않는다면서 살아있는 오리의 털을 뭉텅뭉텅 뽑아냈다. 무심코 지켜보던 나는 기겁을 하며 옆에 서 있던 아이의 눈을 황급히 가리고, 돌아서서 집안으로 들어오는데 뒤꼭지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끽끽거리는 오리의 비명을 듣던 남편도 마음이 안됐는지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에이, 형도 천당가긴 글렀수.”
주일 예배, 새벽기도, 속회예배 하나도 빠지지 않는 찰기독교 신앙인인 아저씨에게 천당가긴 글렀다니. 그에게도 어지간한 충격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날 저녁, 우리 집 밥상에 오르기는커녕 살아있는 오리도 몽땅 그 아저씨에게 주어버린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 후로 우리는 오리고기를 절대 먹지 않는데 이렇게 많이 가져와서 양념하라니... 해도 너무하다. 하지만 남편이 하라면 해야지 어쩌겠나. 올해는 체험을 시작해서 잘해보겠다는데...
전자상거래만으로는 마을의 소득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다고 몇 날 며칠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모습을 본 터라 남편이 하자는 대로 따르기로 했다.
마스크를 쓰고 비닐장갑을 끼고, 흐르는 물에 돌이랑 모래 가려가며, 껍질에 박힌 솜털 뽑아가며 씻는데 두 시간, 도마놓고 먹기 좋게 한 입 크기로 자르는데 세 시간. 오리고기 덩어리는 잘 안 익는다며 잘게 잘라야만 한단다. 미끈미끈한게 도대체 썰어지지도 않는다. 가위들고 자르다가 칼로 내리치다가 별 짓을 다한다. 어깨가 아프다 못해 쥐가 다 난다.
어제 밤 아홉시까지 트랙터랑 트럭이랑 나란히 세워놓고, 불빛 비춰가며 비닐 씌우자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이 찰농사꾼 됐다면서도 돌아서서 지독하다고 손가락질 해댔는데, 그렇게 무리하게 일한 것도 내일의 체험일정 때문이었는데, 그 피로가 풀리기도 전에 오리떼거지와 씨름을 한다.
내 팔자야... 절로 한숨 나온다.
마침 이웃의 재현엄마가 고추밭 만들다가 목마르다며 들렀다. 목욕탕에서 오리떼(?)랑 씨름하는 내 꼴을 보더니 안 됐는지 주방에서 식칼을 찾아들고 와 항아리 목에다 대고 쓱쓱 갈더니 척척 토막내서 거들어준다.
나보다 세 살이나 어린데도 2년 먼저 일찍 시집와서 정말 일을 잘 한다. 시골 아낙들은 정말 원더우먼이다. 농사일에, 식사 준비에, 집안 살림에, 육아에, 게다가 시부모 봉양까지. 순식간에 다 토막내더니 비오기 전에 밭 마저 만들어야된다며 가 버렸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한 시간 벌었잖아. 아직도 할 일이 태산이다. 토막낸 거 마저 잘게 자르고, 양파 한자루 까서 갈고, 소주 붓고, 고춧가루랑 고추장이랑 마늘이랑 생강이랑 배즙이랑 머루녹즙이랑 컴퓨터 교육생이 먹으라고 갖다 준 귀한 야콘까지 갈아서 양념장에 버무린다.
식당내고 싶다고 노래하던 거 말짱 취소다. 내깐에는 요리솜씨 괜찮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한 번 먹어 본 음식은 어떤 음식이든지 만들고자 하기만 하면 다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농담조로 식당이나 낼까 했었는데 이참에 고 생각 싸그리 사라진다.
재우자마자 통에 담기도 전에 체험 준비하며 바삐 오가던 이웃집 아저씨들 소주 댓병 사들고 들이닥친다. 술상 차리랴, 뒷정리하랴, 속으로 열이 뻗친다. 그래도 겉으로는 웃는다. 얼굴 찡그리면 그 집 안주인 인심 사납다고 단박에 소문난다. 열 번 잘해도 한 번 못하면 죽일 놈 되는 게 시골 인심이다.
점심도 굶고, 코끝에 남아도는 오리 비린내에 저녁 건너뛰고. 열 한 시 너머 파한 술자리 정돈까지 하는데 어지럽다.
남편은 전날 늦게까지 작업한 뒤끝에 술이 한 잔 들어간 터라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며 잠들고, 새로 한 시가 지나서야 청소까지 그럭저럭 일이 다 끝났다. 자려고 누웠는데 너무 피곤해서 잠이 안 온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감자박스 끄집어내서 굵은 소금 몇 알씩 넣어가며 호일에 싼다. 아무래도 숯불에 고기만 구우면 밋밋할 거 같다. 한 사람 앞에 두 개씩, 약 80명 온댔으니까 160개 정도 호일에 싸서 담는데 슬슬 잠이 오기 시작한다.
그나저나 걱정이 앞선다. 이렇게 많은 체험객을 맞이하긴 처음인데, 어떡해야 하지?
혹 실수라도 한다면......사람들은 많이 나오려나? 인터넷에 우리 마을 흉이 오르기라도 한다면...... 가지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에라, 모르겠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 그랬지.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
그날 밤, 내 꿈 속에선 목 잘린 오리들이 수 백마리 돌아다니고, 피 흘리는 닭까지 가세해서 그야말로 악몽 그 자체였다. 이튿날, 눈을 떴더니 눈에는 뻘건 핏줄이 선 게 아무래도 비몽사몽이다.
(추신 : 이웃집 아주머니들 어데가셨냐구요? --너무 바쁜 철이라, 게다가 체험도 시범 단계라 차마 부탁드릴 수 없었습니다. 남편들이 나와서 거드는 것만도 미안한데 두 내외 다 나오라 할 순 없잖아요. 저요? 저야 남편이 하라면 해야죠. 기라면 기고, 엎어지라면 엎어지고...어딜 가나 그렇죠. 그 놈의 책임이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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