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마을 이야기

어라, 돈 되겠네??

삼생아짐 2008. 1. 28.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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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돈 되겠네?


“내일 바쁘냐?”

“응.”

“약속 있으면 다른 날로 돌려라.”

“나무 심어야지. 식목일.”

“누가 놀러오겠대.”

“누가?”

“학습지 회사 이사인데, 회사 직원 가족들하고 아이들하고...”

“아는 사람?”

“아니, 모르는 사람.”

“근데 어떻게?”

“우리 홈페이지 보고.”

“그거 그냥 만들어 놓은 거잖아.”

“그래도 오겠대.”

“뭐하고 놀아?”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밥이나 같이 먹고 술이나 같이 마심 되지.”

그랬었다. 우리 마을의 첫 체험은 2004년 4월 5일 그렇게 부담없이, 우연히 시작되었다.

워낙 사람만나기를 좋아하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누구와도 쉽게 친구가 되고, 그렇게 안면을 트는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우리 집에 놀러 와서 며칠씩, 혹은 몇 달씩 묵고 가곤 했다. 농민회 사람들, 친척들, 친구들, 초,중,고등학교, 대학교 동창뿐만 아니라 농활 왔던 대학생들이며 이런저런 관계로 만난 사람들까지 우리 집은 하숙집 혹은 주막집 에 가까웠다.  

방 두 칸에 넓은 거실 하나, 손님용 이불이며 베개며 숟가락 젓가락까지 식구 다섯에 살림살이는 완전 대가족용이다. 결혼 전부터 시어머니로부터 남편 친구들 밥 해대는데 한 달에 쌀 한가마니가 모자르다는 말씀을 늘 들어왔던 터라, 그리고 가까이에서 본 그의 모습은 늘 이런저런 사람들로 둘러 싸여 있던 터라 그러려니 했다. 나가고 들어오고, 교대로 참 많이도 찾아왔다.

워낙 산골짜기라 길을 잘 못 찾겠다는 전화를 받고 남편과 함께 홍천과 서석 중간지점까지 마중을 갔다. 휴게소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하고, 새까만 그랜저를 선두로 승용차 세 대를 뒤에 달고 집으로 왔다.

우석이 엄마라는 여자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세련된 청자켓에 윤기 자르르 흐르는 단발머리에, 까만 선그라스를 머리에 얹은 모습이 훨씬 어려보이고 이쁘다. 은근히 기가 팍 죽는다.

도시에서 온 여자들을 만날 때면 그들의 티 하나 없이 하얀 피부에 말끔한 옷차림에 나자신을 비교하게 되곤 한다.

‘나도 예전엔 저랬는데... 대학 다닐 때 지나가던 남자들이 사귀자고 집에까지 쫓아오곤 했었는데...’

지금의 내겐 그런 모습이 하나도 없다. 오랜 시간 농사일에 시달려 기미와 주근깨가 얼굴을 덮고, 머리도 드라이 할 필요없는 어정쩡한 단발, 그냥 시골 아줌마일 뿐이다.

그래도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는 남편의 말은 어떨 땐 나 일 시켜먹으려고 꼬시는 감언이설같다.

어쨌든 그들을 모둘자리로 안내해 첫날은 자전거 하이킹을 하게하고, 보트도 타고, 고구마와 감자도 장작불에 구워 주고, 밤에 캠프 화이어도 하고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이튿날, 서석의 특산물인 옥수수를 이용한 옥수수 찐빵을 사주고, 서석 5일장을 구경시켜 주었다. 사실 장이래야 도시 아파트 주변에 항상 있는 할머니들 보따리 노상보다도 작은 규모이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돌아보는데 5분도 안 걸린다. 그래도 이 곳 산골 사람들에겐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 바로 이 5일장이다. 이 장이 서야 생선 구경도 하고, 과일 구경도 하고, 신발도 사고 옷도 산다. 어떤 아주머니들은 집에서 걸어서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걸어와 장을 보고 가곤 한다.  

그런데 방문객들의 표정은 역시나, 시덥잖은 얼굴이다.

시골 보리밥과 야채 쌈으로 점심을 먹는데 아이가 산나물을 못 먹겠단다.

겨우겨우 달래어 점심을 먹고, 집으로 데리고 와서 아이들에게 소의 여물을 주게 했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 소들이 볏짚을 먹는다는 사실 자체가 아이들에겐 경이로운 일이다. 저걸 어떻게 먹어?

그런데 소들이 너무 좋아한다. 너도 나도 달려와 아이들의 손을 핥으며 볏짚을 받아 먹는다. 처음엔 무섭다 하더니 이젠 우사 앞에 붙어서 볏짚 먹여주는 재미에 떠나려 하지 않는다.

트랙터 태워 준다고 꼬셔서 떼어냈다. 산 밑에 널따란 논으로 데려가 아이들에게 트랙터를 태워주고, 여자들에게 트랙터를 몰게 했더니 이번엔 아줌마들이 신났다. 한 바퀴 돌고 나더니 내리려 하지 않는다. 서로 경쟁하며 트랙터를 몰아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자동차와는 다른 시동에 기어에 엉키기도 하고, 왱왱거리기도 하고, 트랙터 위에서 사진도 찍고, 너무 즐겁다.

그런 모습을 쳐다보며 나와 남편은 사진도 찍어주고, 겉으론 활짝 웃지만 속으론 조마조마 하다.

저거 융자받아 꺼낸 지 석 달 밖에 안 됐는데, 아직 할부금 물어 주려면 태산같이 남았는데 망가지면 어떡하지, 머릿 속에서 할부금 붓는 횟수가 마구 왔다갔다 한다.   

 다행이도 아저씨들은 안 타겠단다. 얼른 트랙터를 창고에 모셔놓고(?) 남편 친구가 하는 느타리버섯 재배사로 일행을 안내했다.

겉에서 보면 볼품없는 시꺼먼 하우스 지붕 몇 동이지만 들어서 본 내부는 딴 판이다. 칸칸이 놓인 버섯 표본이며 종균이며 시설들이 입이 딱 벌어지게 한다. 하얗게 피어난 버섯들은 꽃보다도 더 아름답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처음 보는 아름다운 광경에 다같이 비명을 지른다. 주기를 맞춰 종균을 넣은 터라 생장 시기가 다 다르다. 까만 점처럼 싹이 트기 시작하는 종균과 어린 버섯, 딸 시기를 놓쳐버려 퍼드러진 버섯까지 다양한 크기의 버섯들을 따 보게 하고, 냄새도 맡아보고, 방문객들도 좋아했지만 시골 살면서 오이나 고추, 벼 등의 밭작물만 했던 나도 버섯 재배사에는 처음 들어와 본 터라 오히려 내가 더 신났다. 남편 친구의 부인이 준 노란 바구니에 버섯을 따서 담았다. 갓이 퍼드러진 것은 값이 없는지라 마음껏 따 가라 했다. 따다 줘야 하는데 시간이 없었다며 마침 잘 왔으니 실컷 따 가란다.

두 바구니 가득가득 버섯을 따서 담고, 재미삼아 길러 보라며 준 버섯 재배분까지 하나씩 들고 방문객들도 나도 신이 잔뜩 나서 그 집을 나섰다.

 우석 엄마가 일행들과 뭐라고 말을 주고 받더니 떠나면서 고맙다며 내 손에 돈을 쥐어준다. 얼핏 보기에도 십만원이 넘는다. 이걸 어떻게 받아? 순간 당혹스럽다.

지금까지 우리 집을 찾아왔던 손님들은 고추며 야채며 쌀이며 모두 가져가기만 했지 이렇게 손에 돈을 쥐어 준 적이 없었다.

남편의 눈치를 본다. 역시나 고개를 젓는다.

아무리 돌려 주려 해도 우석 엄마는 고맙다면서 받질 않는다.

아무래도 마음이 편칠 않다. 그냥 이틀동안 여기저기 안내하며 같이 놀아줬을 뿐인데, 어떻게 돈을 받아...

머릿속으로 재빨리 주판 튕긴다. 어제 밥값 우리가 냈고, 장에서 호떡이랑 핫도그 사 먹을 때 돈 낸 거, 옥수수 찐빵 값. 버섯 하는 친구 집에 음료수 사 간 것. 대략 7, 8만원 정도면 본전은 되겠다.

조카들에게 용돈 주듯 차에 타는 아이들에게 도로 만원씩 쥐어주었다. 우석 엄마는 결사 말리지만 그래도 밥값과 옥수수 찐빵 값은 건졌다.

손을 흔들고 떠나가는 그들의 차 꽁무니를 쳐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래, 이거 구체적으로 가격이 매겨져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소먹이 주는 거 삼천원, 트랙터 운전 삼천원, 밥값 오천원, 버섯 값 삼천원. 안내하고 놀아준 거 일당 삼만원.

이런 게 쫙 프로그램으로 정해져 있으면 얼마나 좋아?

농산물만 죽어라 팔 게 아니라 농촌의 정서를 팔아먹는거야. 무형의 자원.

어라, 이거 돈 되겠네?


2004년 4월 5일 우리 삼생 마을에 처음으로 다녀간 정재일씨 가족과의 이야기입니다. 아직 정보화마을에서 체험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가 홈페이를 통해 첫체험객을 맞았던 이야기입니다. 이 분들은 다녀간 뒤에 우리 삼생마을 홈페이지 여행 후기에 감사인사를 올려 놓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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