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외동딸인 진경이와 지은이네 가족은 부산과 서울에서 각기 왔다.
진경엄마도 진경이도 눈에 확 띄는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이다. 솔직히 기가 좀 눌리지만 어쩌랴, 타고난 생김새를... 성격으로 밀지, 뭐. 그랬는데 진경엄만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거침이 없다.
에이, 포기.
체험객들이랑 경쟁할 일 있나, 체험진행이나 열심히 해서 옥수수만 많이 팔면 되지.
되도록이면 돈을 적게 들이면서도 마을에 대한 깊은 인상을 심어주고, 체험객들이 즐거워할 체험이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인빌 캐릭터인 초롱이와 마을 특산물인 옥수수, 삼생마을 로고를 새긴 기차모양, 버스모양 판화를 네 개 만들었다. 먹물과 화선지만 있으면 끝. 아이들도 방학과제물을 제출해야하니까 어느 어느 마을에서 이런 체험을 했다 증거물로 제출하기도 좋고, 우리나라 목판본 팔만대장경의 유래도 설명하고, 역사공부와 미술공부가 아울러 되는 체험. 게다가 마을 알리기도 되고...일석몇조인지 모르겠다.
판화 찍고 영농체험으로 옥수수 따기와 감자밭에서 보물찾기 하는데 감자를 캐려는 순간 눈치없는 지렁이가 쑤욱 나와버렸다. 감자에 상처날까봐 손으로 조심조심 캐던 아이들이 조그만 뱀만큼이나 굵은 지렁이가 잡히자 비명을 지르고 도망가고 기겁을 하는 순간이었다. 왜 안 그럴까, 나도 밭에서 호미질하다 멀쩡한 감자를 찍곤해서 손으로 감자를 캐곤하는데 그만 지렁이 만지고 놀라서 주저앉은 기억이 나는데...미끌미끌 축축하고 차가운 감촉..으이그..생각만 해도 소름끼친다.
“땅이 살아있다는 증거예요.”
잔뜩 쫄아서 진저리를 치는 우리들에 비해 지렁이가 나올 때마다 남편은 입이 귀까지 찢어지며 의기양양하다. 그럴밖에.
무농약 유기농을 고집하는 남편은 밭에 소똥 거름을 잔뜩 내고, 땅심을 살려 약도 비료도 되도록 치지말자는 주의니 우리 밭에선 땅강아지와 지렁이가 우글우글하다. 지렁이보고 혼비백산한 도시아이들에 비해 우리 동네 아이들은 낚시 갈 때면 꼭 우리 집에 와서 지렁이 잡아가곤 한다.
그럭저럭 조카랑 아이들을 달래어 감자를 반바구니씩 캐서 드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 감자 지금 안 캐면 내 몫으로 남을 일이다. 더군다나 올해는 체험장 완공될 때까지 체험객은 조금만 받겠다고 공표했는데..
빈 리어카 끌고 사진 찍으며 좋아하는 진경이와 지은이를 꼬셔보았다.
“그냥 리어카 끌면 무게감이 없어 재미없어. 감자 가득 캐서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중심 잡으며 사진 찍으면 실감도 나고, 재밌는데...”
약은 진경이 눈 하나 깜짝도 않는다. 아님, 지렁이에 질렸는지...
이번에는 진경엄마를 꼬셔 보았다.
“왜 그렇게 욕심이 없어요? 다른 아주머니들은 서로 캐서 가져가려고 난리인데...”
“캐 봤으면 됐죠, 뭐. 식구도 없는데요, 그리고 파셔야 하잖아요.”
‘아이구, 조금 더 많이 캐서 창고에 들여놓음 내가 훨 편한데...아쉽다.’
옥수수 따기와 소 먹이주기, 피터팬 칼 만들기를 하는데 아빠들이 대답도 잘한다. 미리 예습하고 왔다는 증거이다. 예전에 아빠들은 주로 아내 손에 이끌려 못다 잔 일요일 낮잠을 그리워하는 기색이 역력한데 요즘의 아빠들은 엄마들보다 더 열심이다.
클났다, 너무 빤한 체험은 재미없다. 생각다 못한 남편은 아이들을 끌고 하우스 모상으로 간다. 입구에 조랑조랑 머루가 매달린 나무가 한그루 있다.
시퍼런 머루를 씹어보라고...
말 잘 듣는 순진한 진경이, 한송이 따서 씹어보래니까 씹기는 씹었는데 너무 셔 얼굴이 죽상이다.
“엄마, 이거 뱉어도 되요??‘
아마 내가 지난번에 위원장님 댁에서 시퍼런 풋고야를 맛나게 먹는 걸 보고 애보고 씹어보라 한 모양이다. 당황한 내가 얼른 나섰다.
“뱉어도 돼. 예전에 군것질 거리 없을 때 포도 순 씹으면 새콤하고 맛있어서 아저씨가 씹어보라 그런거야.”
이그, 과일귀신인 나나 되니까 시퍼런 과일도 먹지, 그걸 아무나 보고 먹어보래.
옥수수의 성장과정 설명한다고 기껏 부어놓은 아까운 모 하나 쑤욱 뽑아서 설명한다.
백문이 불여일견.
“보이지? 이 옥수수에서 이렇게 싹이 나오는 거야!!”
‘에궁. 칠백원 날아갔다!!’ 옥수수 한 대궁에 제대로 된 상품하나, 일 년에 딱 한 송이 딴다. 그 값이 택배비, 작업비 포함해서 정확히 칠백원이다. 지은엄마가 옥수수도 오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려서 여러 번 따는 줄 알았다며 옥수수 값이 더 비싸도 되겠네요 한다. 가슴이 뭉클하다. 옥수수 한 박스 더 팔아보려고 오는 전화 받아서 30분 응대하고, 아이가 먹기에 단단했다며 항의전화해서 처음에 보내준 네 박스 말고도 다시 네 박스 고스란히 리콜해주고도 배송이 늦는다고 전화로 10분을 욕을 해대서 결국은 환불해준 서러움이 싸악 씻긴다.
‘이래서 체험을 하나보다. 농촌이해 시키려고..’
왜 체험을 하는걸까 자문도 많이 하지만 그 해답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거다. 농촌과 도시가 서로 이해하고, 나누고, 함께 살아가는 거.
체험의 참의미를 새로 깨닫는다.
무지무지 더운 날, 새로 지은 저온 저장고 들어가기 체험, 즉석에서 만들었다.
시원한 저온저장고 들어가는 체험을 아이들이 제일 신나했다. 5분쯤 문 닫고 있더니 얼어죽겠다고 뛰쳐나온다. 실은 나도 더울 때면 전기요금이야 많이 나오건말건 하루에 열 두 번씩 들어갔다 나왔다 들락거리는데, 아마 남편은 내가 뭘 꺼내러 가는줄 알았을게다.
점심식사 후 물놀이를 계획했건만 날씨가 조화를 부려 천둥번개에 폭우에 정전도 되고 말도 아니게 난리다.
물놀이 대신 토종꿀 비누를 왕창 만들었다. 본전 생각이야 절실하지만 엄마닮아 벌써부터 미모가 훤한 진경이가 유난히 비누 만들기에 욕심을 냈다. 어쩔 수 없지, 젤 중요한 물놀이를 놓쳐버렸으니. 만들어진 비누를 꺼내자마자 모두들 아쉬움을 남기며 돌아가 버리고 다시 날씨가 거짓말처럼 화창하다.
며칠 뒤 찰옥수수 축제장에 강원도 정보화담당관 정영택 과장님이 방문해주셨다.
“백경숙씨, 신랑 단속잘해요.”
“예??”
옥수수 파느라 내 꼴이 너무 엉망인가??
“너무 이쁜 체험객들 와서 신랑 뺏김 안되잖아요.”
오시면서 건넨 첫인사가 이 말씀이더니, 점심 식사 다녀오신 후에도, 옥수수를 사가시며 카드결재 영수증에 서명을 하시면서도, 나중에 집으로 돌아가시면서도 신랑단속 잘하라고 신신당부 하신다.
나중에 집에 와서 자유게시판을 열어보고 알았다.
아마도 진경엄마에게 민고야를 먹어보라고 남편이 바구니채로 건넨 장면을 찍어 올리며 내가 울남편 진경엄마의 미모에 반한 모양이라 그랬더니 과장님이 그 사진을 보고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다.
혼자 막 웃었다. 우리 도청 과장님은 순진하신건지 아님 정말 나를 걱정해주신 건지, 어쨌든 미친 사람처럼 킬킬거리며 웃었다.
지난 번 우리 마을 담당 공무원은 체험 잘 하려면 아줌마들과 친해지라고 울 남편에게 충고하더니 과장님은 아줌마들이랑 너무 친해지지 않게 감시 잘 하란다.
아아, 어쨌든 체험 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웃을 일도 황당한 실수도 많지만 사람 사는 것 처럼 사는 건 모두 체험덕분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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