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국외)/이탈리아

꽃의 도시 피렌체 여행

삼생아짐 2023. 5. 2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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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내려와 다음으로 향한 곳이

이탈리아 피렌체 여행 중 빠질 수 없는 곳

 

바로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과 로자 데이 란치이다.

시뇨리아 광장은 베키오궁전의 다른 말

시뇨리아 궁전을 본따 만든 이름이라고...

 

 

피렌체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란다. 

특히 시뇨리아 광장에 있는 두오모와 조토의 종탑, 베키오 궁전은 너무나 유명하다. 

(작년에 저희 집안 문집도 직지심체요절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에 등재되었어요.ㅎ)

 

 

피렌체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 '전망좋은 방'과

'냉정과 열정사이' 등

영화속에 나온 피렌체는 그 배경만으로도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손꼽는 곳이다.

 

 

단테의 집 혹은 단테박물관

단테가 태어난 곳이라  추정되는 곳에

1865년 단테 탄생 600주년을 맞이하여 세웠다고...

 

그런데...벽만 쳐다봤다,ㅠㅠ

잠시 들어가보았어도 좋았을텐데...

 

 

그 유명한 피렌체의 두오모

 

 

두오모는 영어의 돔(Dome)과 같은 의미란다.

라틴어 Domus에서 유래했다고...

피렌체의 두오모의 정확한 명칭은 산타마리아 델피오레 대성당

 

 

 '꽃의 성모 교회'란다.

 

 

두오모의 돔 쿠폴라는 피렌체의 어느 곳을 가도 보인다고 하는데

높이가 106m라고. . .

좁다란 계단 463개를 올라 옥상 전망대에 도착하면

바로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가질 듯...

 

조토의 종탑에서 바라본 두오모 성당의 쿠폴라...

 

 

나보다 몇 년 전 이탈리아의 이모집을 방문해서 몇달간 머물렀던 딸이 보내준 사진

그러므로 나는 이 높은 계단을 올라보지 못했다.

 

단체 관광의 아쉬움....

 

꼭 이탈리아에 다시 와서 이 계단을 올라봐야지 했는데

몇년 전 동생네 집인 밀라노에 약 한달갈 머무르면서

피렌체의 두오모는 못 오르고

밀라노의 두오모는 지붕까지 올라가봤다. ㅎ

 

 

사람들...

당연히 많다. 

 

이탈리아는 모든 곳이 유적지므로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먹고 살 걱정 없다고 동생이랑 이 얼마나 좋은 자원이냐고 그랬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이곳도 힘들었을 듯....

 

밀라노의 두오모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손꼽히는 두오모로 꼽히는 곳이 

바로 이 피렌체의 두오모이기도 하다. 

 

 

조토의 종탑(GIOTTO'S CAMPANILE)

조토의 종탑 (naver.com)

 

캄비오의 뒤를 이어 두오모 건설을 지휘했던 조토 디 본도네가 1334년 설계했단다.

높이 85M, 폭 14.45M의 피렌체 대성당의 종탑

 

조토의 제자 피사노와 탈렌티가 1359년 완공했다는데

414개의 계단을 오르면 두오모의 모습과 

피렌체의 모습이 360도로 잘 보인단다. 

 

건물색이 장미색, 흰색, 녹색의 3색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겉보기에도 단아하고 이쁘다. 

 

 

피렌체 대성당 건축을 도맡았던 아르놀로 디 캄비오의 건축 기법인 폴리크롬(polychrome, 다채색)을 따랐다는데, 

기하학무늬의 색조 대리석이 매우 아름답다. 

 

완공 당시 ‘과거 그 누구의 작품보다 완전하다’라는 칭송을 받았다고.

조토는 이 종탑 덕분에 이탈리아 르네상스 건축의 선구자가 되었다고 한다.

 

종탑 최하단에 장식되어 있는 붉은색 패널 안에 있는 부조는 안드레아 피사노의 작품이다.

1348년 흑사병의 창궐로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후임인 프란체스코 탈렌티가 1395년 종탑을 완성하였다.

 

조토의 종탑은 단테의 ‘신곡’, 댄 브라운의 소설 ‘인페르노’를 비롯한 여러 곳에 언급되었다.

 

현재 종탑에 장식된 예술 작품들은 모두 복제품으로.

원작은 두오모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토의 종탑 [Campanile di Giotto] (저스트고(Just go) 관광지) 인용

 

 

조토의 종탑 앞 그림을 파는 상인들과

관광객들

 

 

또 그림을 그려주고 있는 화가들의 모습으로 

피렌체의 곳곳은 활기차다.

 

 

베키오궁전

 

베키오 궁전 (naver.com)

 

 

13세기부터 지금까지 피렌체의 중심으로 현재는 피렌체 시청사로 사용되고

일부는 박물관이다.

 

 

피렌체는 9명의 행정장관을 뽑아 '시뇨리아(Signoria)'라고 불렀는데

이 시뇨리아들이 업무를 보던 곳이 바로 베키오궁전이라고...

 

베키오궁전의 종탑에서 종을 울리면 시민들이 모여 정치에 관한 토론을 벌였고

또 공개처형이 이곳에서 이루어지기도 했단다. 

 

베키오 궁전 바로 옆의 로자 데이 란치(Loggia dei Lanzi)는

시뇨리아 광장에 있는 화랑으로, 15개의 조각상이 들어서 있다.

'로자'란 한쪽에 벽이 없는 복도 모양의 방을 뜻한다고 한다. 

 

 

이 로자데이란치에는 피렌체의 역사를 담은 조각상들이 있다.

 

<메두사의 머리를 든 페르세우스>  벤베누토 첼리니 작   

 

메두사는 원래, 머리채가 특히 곱기로 소문난 아름다운 처녀였는데,

아테나 여신과 그 아름다움을 겨루려 해 아테나를 노하게 했다.

 

아테나는 메두사의 아름다움을 거두고 머리채를  쉭쉭 소리를 내는 뱀으로 만들어 버렸는데,

메두사의 무서운 시선은 워낙 강렬하여 한번이라도 쳐다본 사람은 누구나 곧 돌로 변했다. 

 

어렸을적에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읽었던 기억...

 

페르세우스는 쥬피터와 다나에의 아들로서

아르고스의 왕인 아크리시오스는 장차 자신의 딸인 다나에가 낳은 아들(외손자)에게 죽음을 당한다는 신의 계시를 받고

다나에를 청동방안에 가두고 어떤 남자도 접근할 수 없도록 한다.  

 

그러나 다나에와 사랑에 빠진 쥬피터는 황금 빛 소나기로 변신하여 지붕으로 스며들어온다. 

황금빛 비는 다나에 공주의 무릎 위에 걸쳐진 천으로 떨어져 그녀를 수태시키는데

거기에서 태어난 아들이 페르세우스.

 

화가 난 아크리시오스 왕은 다나에와 페르세우스 모자를 상자에 넣어 바다에 띄워 보내나 

세리포스 섬에 도달하여 목숨을 건지고 성인이 될 때까지 이 곳에 머무른다.

 

그러나 페르세우스가 청년이 되었을 때

그의 어머니인 다나에를 사랑하고 있던 세리포스 섬의 왕은 페르세우스를 죽일 목적으로

괴물 메두사의 머리를 베어 오라고 명령한다. 

 

페르세우스는 아테나와 헤르메스의 총애를 받아 

아테나로부터는 방패를,

헤르메스로부터는 날아다닐 수 있는 신발을 얻어 메두사가 잠자고 있는 동굴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메두사의 얼굴을 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빛나는 방패에 비치는 메두사의 모습을 겨냥하여 목을 잘라 이 메두사의 머리를 아테나에게 바쳤다

 

이후 원반 던지기 경기에 출전한 페르세우스의 원반에 맞아 이를 관람하고 있던 아크리시오스 왕은 끝내 죽음을 맞는다.

 

< 사비니 여인의 납치>   

                                             

로물루스는 로마를 세운 뒤에 왕국이 꾸준히 성장하려면 믿음직한 혈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새로운 동맹을 맺고 미래의 결혼을 보장하기 위해 인근 주민들에게 사절을 보냈다.

 

그러나 인근 도시들은 로마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사절을 환영하지 않았다.

 

로물루스는 포세이돈을 기리는 축제를 열기로 하고 사비니 사람들과 인근 주민들을 초청했다.

 

축제 도중에 젊은 로마 남자들은 사비니 여자들을 일제히 납치했고

그들의 일가친척을 몰아냈다.

 

이 일로 인해 사비니 사람들의 반발이 거세어졌고 로마에 대해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로마와 사비니의 전투 중에 사비니 여자들이 뛰어들어 무기를 버리고 화친을 맺으라고 간청했고

그들의 간청을 듣고 양쪽의 주민들은 함께 뭉쳐 로마를 수도로 삼았다.

 

< 켄타우루스를 죽이는 헤라클레스> 쟘 볼로냐 작

 

 

근육질의 남자에 곱슬머리, 곤봉을 든 남자는 헤라클레스다.

 

머리는 사람이고 하체는 말인 반인반수는 켄타우루스.

 

켄타우루스는 테살리아의 펠리온 산에서 날고기를 먹으며 살고,

성질이 난폭하고 호색적인 종족이지만

켄타우로스족의 현자 케이론은 영웅들의 스승으로도 유명하기도.

헤라클레스는 에우리스테우스로부터 부여받은 12가지 과업중 하나로

 '에리만토스산의 멧돼지'를 잡으러 가는 도중에 켄타우로스인 폴로스의 접대를 받았다.

 

갖가지 맛있는 음식을 먹었는데,

헤라클레스는 켄타우로스 일족이 공유하고 있던 술을 마시고 싶다고 폴로스에게 말했다.

 

폴로스는 다른 동료들이 화내는 것을 두려워해서 그 청을 거절했지만,

헤라클레스는 그에 아랑곳없이 술이 든 솥의 뚜껑을 열어버렸다.

 

 폴로스가 걱정하던 대로 다른 켄타우로스가 무기를 들고 많이 모여들었다.

 

헤라클레스는 화살을 쏘아서 켄타우로스들을 거의 전멸시켜버렸다.

 

그때 우연히 그 화살의 하나가 케이론에게 맞았다.

케이론은 불사신이었기 때문에 죽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 화살에는 레르네의 히드라 독이 묻어 있었으므로

평생 아물지 않는 상처로 괴로워해야만 했기 때문에

케이론은 신에게 애원하여 자신의 생명을 프로메테우스에게 양보하고 죽었다.

 

네소스는 헤라클레스 때문에 아르카디아의 땅에서 쫓겨나고 동료들을 거의 다 잃은 켄타우로스의 마지막 생존자였다.

 

 어느 날 헤라클레스는 아내인 데이아네이라와 아들 히로스와 함께 여행을 하다가 네소스 강변에 다다랐다.

헤라클레스는 아이를 안고 강을 건널 수 있었지만 데이아네이라와 함께 건널 수는 없었다.

그러던 참에 켄타우로스인 네소스가 다가와서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헤라클레스를 증오하고 있던 네소스는 데이아네이라를 유괴할 생각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이 음모을 알아차리고 네소스를 활로 죽여버렸다.

 

그는 죽으면서 데이아네이라에게 자신의 피와 정액을 섞으면 매우 뛰어난 미약(媚藥)이 된다는 말을 남기는데,

사실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고 그렇게 배합하면 오히려 맹독이 되는 것이었다.

 

헤라클레스는 훗날 네소스의 피가 배인 윗도리를 입었기 때문에 그것이 원인이 되어 죽기에 이르렀다.

 

[네이버 지식백과] 켄타우로스 [Kentauros]에서 옮김 

 

 

         < 폴릭세네의 약탈> - 피오페디 작  

 

폴릭세나는 영웅 아킬레우스를 죽음으로 이끈 트로이의 공주이자 트로이의 마지막 왕 프리아모스의 막내딸.

 

폴릭세네와 아킬레우스의 만남에 관해서는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전해져온다.

그 중 한 이야기에 의하면 친남매인 트로일로스가 샘터에서 말에게 물을 먹이다 아킬레우스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폴릭세네가 복수를 결심하고는 자신에게 마음을 뺏긴 아킬레우스로부터 그의 치명적 약점이 발뒤꿈치에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폴릭세네는 결혼을 약속하면서 아킬레우스를 아폴론 신전으로 유인하고,

미리 신전 안에 숨어있던 파리스가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를 독화살로 쏘아 죽인다.

 

그런데 또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폴릭세네 자신도 아킬레우스에게 마음이 있었고, 따라서 그를 죽일 의도는 없었다고 한다. 이밖에도 폴릭세네와 아킬레우스의 만남에 관해서는 또 다른 이야기들이 전해져 내려온다.

 

그러나 폴릭세네에 관한 이야기는 아킬레우스와의 만남보다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한 폴릭세네가 죽음의 순간에 보여준 용기와 의연한 태도 때문에 더욱 유명하다.

 

트로이가 망하고 아킬레우스가 죽은 후에 그리스 군인들이 트로이 여인들을 전리품으로 나누어가질 때 아킬레우스의 망령이 나타난다. 그리스의 승리에 가장 큰 공적을 세웠지만 이미 죽은 아킬레우스가 그리스인들 앞에 그의 망령으로 나타나자 폴릭세네를 자신의 “전리품”으로 요구하면서 그녀를 자신의 무덤 앞에 제물로 바치라고 말한다.

 

“전리품”이 된다는 것은 노예의 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전리품이 되어 “제물”이 된다는 것은 노예의 몸으로 죽는 것을 의미한다.

 

폴릭세네는 이제 모든 것을 다 잃고 비참한 죽음을 당해야 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의연한 태도를 잃지 않고 당당하게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한다.

노예로서가 아니라 자유인으로서, 공주로서 죽게 해 달라고, 그리고 죽어서도 순결한 몸을 지키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그리스인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고,

아킬레우스의 아들인 네오프톨레모스조차도 폴릭세네를 차마 죽이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녀의 가슴을 칼로 찔렀다.

그녀는 쓰러져 죽어가면서도 공주로서, 자유인으로 죽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평온한 표정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는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에도 가슴이 풀어진 채 쓰러지지 않으려고 옷깃을 여미었다.

이처럼 폴릭세네는 모든 것을 다 잃고 제물로 바쳐져야 하는 순간에도 마지막까지도 모멸감만이 남아있는 순간에도 품위와 명예를 지키고자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광장의 조각은 1800년대 조각가 피오페디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네오프툴레모스가 칼을 들고 폴릭세네를 내려치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 넵튠 분수

 

1574년에 완공되었으나 도난과 손상 등으로

이곳에 설치된 포세이돈 분수는 1800년대의 사본

 

 

바다의 신 포세이돈 넵튠 분수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의 로마식 이름이 넵튠이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흔히 긴 수염에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모습으로 연상되고

그의 힘을 상징하는 삼지창을 들고 있다.

 

그는 삼지창으로 바다에 폭풍을 일으키거나 대지에 지진을 일으키고, 혹은 하천과 샘을 솟아나게 한다. 

 

포세이돈에 관한 그림이나 조각상에는 다른 바다의 신들도 등장하기도 한다. 

포세이돈을 상징하는 성스러운 동물은 말이며 그를 '말의 신'이라고도 한다.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에 있는 넵튠 분수는 1575년 조각가 바르톨로메오 아만나티가 투스카나 해전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피렌체를 통치한 코시모 1세 청동기마상

 

이탈리아 예술과 문예부흥에 큰 힘을 쓴 피렌체의 위대한 정치가 코지모 1세의 동상이다.

1594년 잠 볼로냐의 작품이다.

 

 

점점 어두워져가는 피렌체의 거리...

 

 

상점가...

 

 

 

어두워져서야 돌아온 숙소

 

 

피렌체에서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