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에와랜드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다.
“내가 비를 몰고 다니나? 울 아버지 여행가시면 늘 비오더니 모처럼 내가 여행 할 때마다 비가 오네.”
몇 년 전 중국에 갔을 때에도, 얼마 전 이장 협의회에서 대만 갔을 때에도 화창하던 날씨가 여행 내내 비가 내리더니 우째 이런 일이...
“비 몰고 다니는 것도 유전인가보다.”
“재수가 없는 사람이죠.”
아니, 이럴 수가. 통역관 아저씨. 남편과 나의 대화에 끼어들어 나보고 재수가 없다니.
여행 끝 무렵에 회사에 평가서 내는 게 있을 텐데, 어디 두고 봅시다.
버스가 들어갈 수 없는 길이라 하얀 우비를 입고, 간밤에 잔뜩 웅크리고 자다가 종아리 근육이 뭉쳐서 쥐가 난 다리가 풀리질 않아 절뚝거리며 에와랜드를 향했다.
교토부 미야마초 현의 관광농원 에와랜드 주인은 우체부 출신으로 그린투어리즘제도가 시작될 때 자금을 받아 이 농원을 창설했다고 한다. 스포츠 머리에 작은 몸집이지만 짧은 콧수염탓인지 전체적인 인상은 다부져 보였다.
왼쪽이 사장 오노씨, 오른쪽이 통역관 지화영씨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낀 도시민들의 휴식 공간이자 자연과 공생하는 공간으로 이 관광 농원을 설립했다고 하면서 농민으로서 도시민을 접대하는 것이 아니라 대등한 교류를 추진해오고 있다는 그는 문부성의 농업 프로그램 지도 없이 농업 환경을 놀이로서 업그레이드 시켰다고 했다.
식품에 대한 안전한 먹거리 제공, 무농약 자연농법으로 짓는 농사, 그리고 여러 채의 방갈로를 운영하며 야채와 쌀도 판매하면서 식물 심는 법, 악기 연주, 가족 노래 자랑, 줄타기, 물놀이, 산천어 낚기, 반딧불 관찰, 잡초를 아는 모임, 크로스 컨츄리, 노적가리 쌓기 등 그 곳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 등은 다양하고 흥미로웠다.
게다가 회원들을 대상으로 꾸준히 소식지 등을 발행하며 요금을 정하지 않고 내고 싶은 만큼 내게 해서 운영하는 방법 등은 독창적이고도 신선했다. 그가 직접 만들어냈다는 책자는 물론 일본어로 되어 있지만 간단한 삽화와 사진 등이 첨부되어 있고 창설 당시부터 지금까지 10여 년이 넘는 동안 진행해 온 농원의 어제 오늘이 모두 담겨 있어 그의 정성을 느낄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
겨울철에는 사냥으로 멧돼지나 사슴 등을 잡아서 식자재로 활용하고 또 사냥을 체험 프로그램으로 넣어 사시사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도시락으로 제공된 사슴고기도 바로 그가 어제 잡은 것이라 했다. 소고기처럼 쫄깃하면서도 냄새가 나지 않아 먹을 만 했다.
에와랜드 사장 오노씨가 전날 잡은 사슴으로 조리한 도시락
집 옆으로 맑고 푸른 강이 흘러 나가고 울창한 산림숲을 끼고 있어 경치 또한 아름다웠다.
장금이 팬이라는 아주머니를 위해 조령산 위원장님이 민 정호 종사관과 만날 때면 흘러나오던 노래를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불러드리자 아주머니는 카메라를 가지고 나와 찍으면서 황홀해했다. 이렇게 깊디깊은 일본의 산골짜기에까지 우리나라 드라마가 알려진 걸 보니 문화민족으로서 자긍심을 느낄 만 했다.
일찍이 백범 김구 선생이 경제력도 약하고 영토도 좁은 우리나라가 전 세계를 제패할 길은 문화의 힘밖에 없다고 하더니 수 십 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에 휩쓰는 한류 열풍이 바로 우리 민족이 문화로 우뚝 선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의 농업도 선진 농업으로 우뚝 설 길이 언제인지, 비교 우위 산업에 밀려 천시되지 않고 농민들이 대접 받고 사는 세상이 언제나 오려는지, 언제쯤 사람들이 국민의 먹거리가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으려는지, 오랜 세월 평생을 농업에 종사하시면서 하얗게 백발이 센 해바라기 마을의 이상문 어르신을 뵈면서 저분들이 존경받는 세상이 언제쯤 되려는지 그런 안타까운 생각들을 했다.
농사꾼한테 시집간다고 무척이나 속상해하시던 친정어머니 생각도 났다.
“야, 제발 운전 좀 조심해서 살살해라.”
“보험이나 빵빵하게 들어.”
“이 여자가?”
나의 거친 운전 습관 탓에 남편이 내 옆에 탈 때마다 잔소리를 하더니 어느 순간엔가 잔소리가 쑥 들어갔다.
“웬일이야?”
말도 없이 턱으로 가리키는 곳에 보니 현수막이 여러 장 붙어있다.
‘베트남 처녀, 캄보디아 처녀, 필리핀 처녀와 결혼 중개합니다.’
‘베트남 처녀와 결혼 시 200만원 지원하여 드립니다.’
“아니, 이 남자가......”
결국 과속하는 버릇 못 고치고 쌩쌩 달리다 멀쩡한 차 들이받고, 정신 차려 지금은 운전할 때 조심하지만 그래도 씁쓸한 기억이었다. 얼마나 한국 처녀들이 농촌에 시집오기 싫어하면 외국에서 여자들을 데려다가 결혼할까. 나라에서 지원까지 할까. 딸 가진 부모님들이 결사반대할까.
농촌이 잘 살면 이렇게까지 여자들이 시집오기를 싫어하진 않을텐데......
물론 국제결혼해서 자리 잡은 여자들이 아들 딸 낳고 잘 살긴 하지만 그래도 농촌에 사는 여자로서 가슴 아픈 일 중의 하나였다.
“오까네 짭짤 데스까?”
오까네는 우리 말로 수입이란다. 오노씨에게 질문할 시간이 주어지자 유머 넘치고 활기 넘치는 조령산 위원장님이 역시 좌중의 배꼽을 빼놓으며 질문을 한다.
농원을 운영해서 아들들 대학 다 가르치고, 인재 양성도 하며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으니 그 정도면 성공한 거 아니겠냐고. 방송도 타고 신문에도 나왔단다. 드라마 출연까지 했단다.
자신의 살아온 삶이 성공이냐 아니냐는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법.
역시 우리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 서 있는 오노씨와 에와랜드를 뒤로 하며 가슴이 더 무거워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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