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국외)/일본

일본여행-카와부키촌

삼생아짐 2014. 11. 17.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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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미야마촌 5개의 마을이 모여서 회의를 했단다. 

날로날로 줄어드는 마을의 인구와 태어나지 않는 어린아이들. 유치원도 보육원도 없이 점점 마을은 생기를 잃어가니 어쩌면 좋으냐고. 

주 소득원인 목탄만 만들어서는 도저히 생활도 되지 않으니 어떻게 살면 좋겠느냐고.

그러다가 한 노인이 아이디어를 냈단다.


      왼쪽이 마을 발전의 아이디어를 낸 분(이름 까먹었어요, 죄송해요)

     가운데가 카야부키 촌장님

 

마을의 전통 가옥을 보존해서 민속촌으로 건립하자고. 

일본의 원풍경을 지키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작된 이 사업은 그들의 조상이 지역의 자원인 억새를 이용하여 지붕을 얹고 목조로 가옥을 지어 내부 공간 그대로를 예전에 조상들이 살던 모습 그대로로 재현하여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부가가치를 가져왔다.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에는 다다미를 깔았지만 주인 내외가 거주하는 곳에는 차가운 마루바닥 그대로에다 가끔 볏짚을 깔아 손님에 대한 예우를 나타내고, 거실 한 가운데 차지한 조그만한 화로가 집안의 온기를 유지하는 유일한 난방장치로 쓰였다. 나무 외양간과 주방, 화장실 농기구 보관 창고 등이 모두 한 공간 안에 이어져 있고, 해를 거듭하면서 두텁게 쌓아올린 억새풀 지붕이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욕조로 이용되었다는 항아리 모양의 물통이 사랑방 바깥쪽에 그대로 보존이 되어있고, 절구와 키 등 나란히 전시된 농기구 등은 우리나라의 농기구와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였지만 그들에겐 조상들의 불편한 삶의 흔적을 개량하지 않고 오늘날에도 그대로 이어 사용하고 있는 점이 놀라웠다.

 


                                     집 우측에 놓여진 목욕통과 농기구들

 

1년에 70만 명의 방문객을 받아 입장료 수입이 90%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관광사업을 더욱 발전시켜서 지금은 미야마 정착민을 위한 토지를 조성하여 목재로 만든 집을 분양하고, 미야마 고향 재단 지원본부를 두어 후계자까지 양성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까지 250호 약 650명의 후계자가 정주를 요청하고 있을 정도이며, 일본 문화청의 ‘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선정되어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었다.

미야마 일대에서 나는 야생초를 산나물로 활용하고, 된장과 버터 만들기, 사과 따기, 죽마 만들어 타고 놀기, 연과 공기 만들기, 은어잡기, 종이 만들기와 초목염색, 짚신 삼기 등 체험객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지역에서 나는 각종 농산물을 가공 포장하여 판매하는 사업까지 원시림을 배경으로 그들이 일구어낸 마을의 발전은 놀라울 정도였다.

 

     체험객들의 작품

 

마을 특산물 판매점에서 우리나라의 검정콩과 비슷한 콩으로 간장설탕 조림을 해서 만든 것을 먹어 보았는데 그런대로 고소한 게 먹을 만해서 시식용으로 놓여있는 이상한 열매 짱아찌를 집어먹었다가 구역질나서 뱉지도 못하고 죽을 뻔 했다. 그래도 공짜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한바퀴 둘러보니 된장이 시식용으로 놓여있다. 

한 숟갈 퍼서 맛보았다가 역시나 비위가 상해서 차를 타는 내내 속을 진정시키느라 고생 꽤나 했다.

“공짜 좋아하더니.....”

사지 않을 거면 손대지 않는 남편에 비해 호기심 강한 나는 일단 맛보고, 만져보고, 저지르고 보는 편이라 후회도 많이 하지만 천성이라 어쩔 수 없다. 

실패하더라도 해보고 싶은 건 해 봐야 직성이 풀린다. 

게다가 워낙에 덜렁거리는 편이고 잊어버리기도 잘해서 남편은 늘 나를 볼 때마다 불안해한다. 

그래서인지 하나부터 열까지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많이 하지만 늘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리니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다. 결혼기념일을 챙기는 것도 남편이요, 생일을 기억해내는 것도 남편이다.

바느질도 뜨개질도 못하고, 다림질도 잘 못해서 으레 남편이 알아서 다 한다. 역시 남편은 여자하기 나름이다. 

“너 여자 맞냐?”

“그럼, 남자가 아기 낳냐? 그것도 셋씩이나?”

그래서일까, 딸 같은 아들 둘과 아들 같은 딸 하나를 키우고 있다. 

자식이 많으니 집안일 분담이 잘 이루어져 남편이 세탁기 돌리면 딸아이가 널고, 큰아들 녀석이 걷어오면 작은 아들녀석이 개서 치운다. 

가끔 내 옷이 남편 서랍에 들어가 있고, 남편 옷이 내 서랍에 들어가 있을 때도 있긴 하지만.

방 청소도 각자 나누어 하고, 현관 청소는 막내 녀석이 맡았는데 너무 깔끔하게 잘 해서 칭찬을 해 줬더니 어느 날

“엄마, 나 이러다 환경미화원 되면 어떡하지?”

하고 가슴을 철렁하게 해서 도로 내가 맡았다.


밖에서 미야마촌을 바라보며 참 불에 타기도 좋게 생겼구나 했더니 아니나다를까 화기엄금이고 다리 난간에 언제든지 물을 끌어다 뿌릴 수 있도록 소방 호스가 길게 늘여져 있다.   

입장료로 300엔을 냈다는데 조금 본전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도 민속촌 있는데, 초가지붕 있는데......

 


                                                                              카야부키 촌 전경


3박4일 동안 돌아본 일본 마을의 공통점은 목적의식이 투철하다는 것이다. 

농민을 위하고, 농촌이 잘 살게 하는 것. 물론 우리 또한 공통의 목적의식이 있으니 비싼 돈 내고 이곳까지 온 게 아니겠는가.

지역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관광객에 대해 세심한 배려와 관심을 보여주어서 좋은 인상을 남기고, 체험 상품이 다양해서 사계절 내내 지속적으로 사람을 끌어들인다는 것 또한 본받아야 할 점 중의 하나이다. 

무 농약 친환경 상품의 개발, 마을 자체 가공으로 판로를 확보하고, 생산에서부터 판매에까지 체계적인 짜임새를 보는 듯해서 전체적으로 안정된 농업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국민들의 생활이란 얼마나 검소해보이는지. 어찌보면 우리나라의 6,70년대의 살림살이들을 그대로 쓰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그 촌스러움이 자산인지도 모르겠다. 시골다움을 그대로 유지하고, 도시에 지친 도시민들을 편안하게 끌어들이는 것. 눈깔 사탕과 색소가 가미되지 않은 밋밋한 과자, 구식의 시커먼 다이얼 전화기까지.

현대식 건물로 반듯반듯하게 변해가는 우리의 농촌이 도시를 지향해서 겉모습만 화려하고 속을 들여다보면 빚더미 투성인 채 멍들어가는 것은 아닐런지.

저축 제 1위인 부자나라가 생각보다 가난하다고 느꼈지만 대신 그들은 빚이 없다고 한다. 3박 4일의 짧은 여정으로 지역 아카데미에서 보여주는 곳들만 이끌려 다녔지만 차창 밖으로 스치며 본 일본의 모습과 일본인들의 모습에서 나름대로 많은 교훈을 얻은 여행이었다.


추신 ; 통역관 지화영씨 골탕먹이려던 계획은 남편 때문에 물거품 되어 버렸다. 

설문조사표 받자마자 남들은 열심히 쓰는데 나는 일부러 맨 앞에 앉아서 한 글자도 안 쓰고 찬찬히 읽고 있었는데, 이를 눈치 챈 남편이 뺏어가서 나대신 다 표기해 버렸다.

그래도 재치 있고 유머 넘치며 일본어가 유창하고, 일본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분이어서(본인 말로는 조경사 되려고 원예, 조경 공부하다가 너무 어려워서 조경사 포기했다고 함) 지루하지 않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여행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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