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주차할 곳을 찾는 동안 버스를 타고 돌며 아스카무라 지구를 둘러보았다.
잘 정비된 공원, 곳곳의 쉼터, 다리 난간, 버스 정류장 등이 모두 삼나무로 되어있다.
자연친화적인 느낌. 나무가 주는 느낌이 강철이나 알루미늄에 비해 그나마 따스해 보인다.
경지정리 되지 않은 다랑이 논과 곳곳의 과실수 등이 농촌임을 알려 줄 뿐 논이나 밭의 면적이 우리 농촌에 비해 작고 아담하다.
거대한 트랙터가 아닌, 작고 귀여운 포크레인, 잘 정비된 논과 밭이 아닌 텃밭 형태의 논과 밭이 많다. 도시 분위기를 띠면서도 아파트나 고층 건물이 없고, 집도 이층 이상의 집이 없다. 담조차도 목아래 내려올 만큼 낮고, 지붕은 새카만 기와로 되어있고 벽이나 처마는 삼나무로 되어있다.
집집마다 동백나무 한 그루 씩은 있어서 겨울인데도 화사하고 빨간 동백꽃(!)이 눈에 들어온다. 일본 사람들은 동백을 좋아한다고. 지저분하게 낙화하지 않는다고. 한몫에 져버린다고.
그게 무사의 기를 상징한다나. 할복자살하는 무사의 검에 묻어 솟구치는 피와 피눈물처럼 뚝뚝 저버리는 동백의 이미지가 겹치자 정나미가 떨어진다.
무궁화가 훨 낫지. 피고지고 또 피고 왕성한 생명력이 얼마나 좋아. 외국 나와서 정말 애국자되나 보다.
거의 모든 집마다 문 앞에 심어진 소나무 가지 하나가 문을 가리는데 일본말로 '몬카바나스‘라고. 몬은 문, 카바는 영어의 커버, 나스는 나무. 문을 덮는 나무. 행운을 가져다준다는데 가정집이나 관공서나 몬카바나스는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목을 주로 심는데. 줄기의 붉은 색은 귀신을 쫓고 사철 푸른 잎은 변함없는 지조를 상징한다고 들었다. 나라마다 사고방식의 차이는 있어도 복을 구하는 민간 기복 신앙은 다 똑같은가 보다.
오른쪽 가지가 문을 덮은 몬카부나스
일본인들은 영어를 가져다가 제나라 식으로 고쳐 부르는데 우리 생활에 무심코 쓰이는 일본식 영어가 얼마나 많은지는 이곳에 와서 더욱 실감한다. ‘바스킷’의 ‘빠께스’, ‘슬리퍼’의 ‘쓰레빠’, ‘펑쳐puncture’의 빵꾸, ‘퍼머넌트 웨이브’의 ‘빠마’, ‘포크 커틀릿’의 ‘돈가스’, '계단'의 '가이당', ‘백back’의 ‘빠꾸’ 특히 건축이나 공업, 기술 계통에서 쓰이는 말들이 많은데 아마도 일찍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제 것으로 소화한 일본의 전문서나 기술서 같은 책들을 우리가 뒤늦게 가져다가 번역해서 그런 영향도 클 듯 싶다. 물론 일제 식민지 36년간의 잔재이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그런 식의 일본 영어와 한자와 일어가 뒤섞여 있어서 약 30퍼센트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겠다. 글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눈에 띄는 한자공부는 참 열심히도 했다.
아스카지역진흥공사 건물의 개관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주변 지역을 둘러보았다. 논이 있어도 우리처럼 수로는 크지 않다. 조그만 도랑정도?
“저기 서 봐.”
“여기 서 봐.”
열심히 사진을 찍어 아이들에게 보여주고자 남편은 색다른 풍경만 있으면 사진사노릇에 정신이 없다. 모델 노릇이 지겨운 나는 등 뒤에 서 있는 탐스런 귤나무에 정신이 팔려 어떻게든 하나 따고 싶어 안달이고.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 했던가. 우리나라 귤의 딱 세 배 크기인 귤이 노랗게 익어 주렁주렁 매달린 걸 보니 욕심난다.
“이거 따면 안 될까요?”
“여기 남고 싶어요?”
통역아저씨가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일본은 법이 엄해서 함부로 따면 안 된단다. 개관시간이 되어 입장하면서도 시선은 계속 나무에 가서 머문다.
“저거 못 먹는 거예요.”
“거짓말. 따주기 싫으니까.”
아스카 지역진흥 공사는 아스카 지역 주민들이 지역 발전을 위해 자치적으로 결성한 마을 발전기구이다.
아스카 촌장님.
자부심이 대단하셔서 자그마차 세 시간 동안 꼬박 강의를......
우리 마을은 언제 그래보나......
아스카 지역은 1미터만 파도 어디에서나 유적이 출토될 만큼 옛 일본 고대국가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은 곳이라 한다. 따라서 건축의 높이나 재질, 색 등을 비롯한 각종 개발에 제재를 받아왔고, 그런 국가적 차원에서의 규제가 새로운 농업 환경을 만드는데 기여를 한, 그야말로 난관을 지혜로 극복한 대표적인 그린투어리즘 성공모델 지역이다.
아스카 촌장은 자그마치 세 시간에 걸쳐 자신들이 계획하고 실천해 온 농업 농촌 살리기 사업의 성과와 추진 방향, 배경에 대해 설명을 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성공한 농촌모델의 촌장으로서의 자부심이 뚝뚝 묻어나는 듯 했다.
아스카 지역은 오사카에서 차로 약 40분 정도 걸리는 도시의 인접지역으로서 도시와 농촌의 경계지역이라 할 수 있다. 일본문화의 시발지라는 자부심이 그들로 하여금 도시보다는 농촌을 선택하게 했고, 마을 자체를 지붕 없는 박물관 형태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말에 처음 내가 본 인상이 그릇된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도시 반 농촌 반의 평온하면서도 안정적인 그런 분위기는 결국 철저한 계획하에 조성된 마을이라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그들은 우리 조선이 일본에 우수한 문화를 전래해 준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들 언어에 고구려를 ‘구라이 (쿠라다 즉 큰 나라)’라고 부르고 신라를 ‘시라이’라고 부르면서 1300여 년 전 일본은 미개한 지역으로서 도시를 만들기 위해 한국과 중국에서 문화를 전래 받았다고 하는, 역사시간에 배웠던, 우리가 일본 문화를 전수해 준 문화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그 촌장의 입을 통해서 직접 확인하니 자부심마저 느껴졌다.
그들은 아스카 지역 진흥 공사 일명 ‘꿈을 가꾸는 몽정사’ 라는 이름으로 단체를 설립하여 지역의 문화적 자원을 활용하고 역사적 공부 환경, 자연환경을 살려 마음이 평화로운 마을, 아름다운 마을 조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고 한다. 그리고 나무 한 그루 오너제, 죽순 오너제, 흙묻은 당근오너, 고구마, 쌀 오너제 등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 오너제는 다랭이논과 같은 휴경논을 회복하고, 흙을 만지고 싶어하는 도시인들이 시간 날 때마다 와서 농사를 짓고 일정량을 수확해가게 하면서, 농민들을 농사기술의 전수자로 보람을 느끼게 만들고, 농가수입도 증대시켜 지역에 정착하게 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했다.
그 밖에도 토끼풀 밟기, 지역에서 생산한 쌀로 청주빚기, 허수아비 만들기, 백일장, 염색, 공동모내기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계발하여 일년 내내 점점 늘어나는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는 통계표를 보니 일회적인 체험에 그치거나 체험객을 지속적으로 끌어오지 못한 우리의 체험 형태도 변해야겠다는 자극을 받기도 했다.
그 밖에도 농산물 특판장을 설치하여 연중무휴 영업을 하는데 신선한 농산물을 공급하게 하고, 농가 스스로 자율 가격을 책정하게하고, 다른 농민이 생산하지 않는 생산물을 만들어내게 하는 등 농민들끼리의 선의의 경쟁을 유발시켜 농업을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발전시켰으며 농가 레스토랑을 경영하여 100퍼센트 마을 수확 상품으로 재료를 쓰는 등 생산에서부터 판매에까지, 그리고 특산품 제조 기업에 지원을 하는 것 까지 지역 자체내에서 유기적인 연결고리를 완성시킴으로써 회사를 그만 두고 농사짓는 사람까지 생겨날 정도로 성공적으로 사업을 끌어오고 있었다.
해마다 봄이 되면 무슨 작물을 심어야 할지 선택하는 작목에 따라 한 해 수확량이나 가격 등락이 큰 우리농업의 형태와는 달리 농업 생산량이나 가격 조절이 안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부러웠던 점 중의 하나이다.
물론 우리도 요즈음은 지역마다 토양에 맞는 특산 작물을 명품화시켜 수출도 하고, 전자 상거래도 하며 차츰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출하량 조절과 농산물의 가격 등락폭이 큰 점은 농사에 대한 불안심리로 작용하고 있다.
아스카 지역을 떠나는 버스에 오르는데 그렇게도 탐을 냈던 그 귤 하나를 선물 받았다. 입이 함박꽃만큼 벌어진다. 용감한 일행 중의 한 분이 슬쩍했던 것. 대부로 시작하는 섬마을 분이다. 맞나? 귤을 들고 남편을 째려보았다. 그렇게도 갖고 싶다고 했는데 안 따주다니.
위원장님들이 놀려댄다.
“여기 잡혀간대잖아요.”
어딜, 내가 눈 하나 깜짝할까.
“버스 출발했어요. 사정거리 밖이에요.”
한국에서 사 간 인삼차를 선물했으니 귤 하나 쯤이야... 물론 내가 산 건 아니지만. 어쨌든 훔쳐 먹는 과일이 맛있다고 얼른 까서 먹었는데 으이구, 통역 아저씨 말이 맞다.
못 먹는 귤이었다. 못 먹는 건 아닌데 어쨌든 시큼털털하고 쓰고 아리고, 무늬만 귤이었다. 그래도 남편대신 따다 준 성의를 생각해서 꾸역꾸역 다 먹었다. 과일 귀신이 이정도도 못 먹으랴. 평생 과일만 먹고도 살라면 살 나인데.....
그날 저녁, 게와 굴과 도미와 오징어와 조개 등 풍부한 해산물로 나베요리를 해서 다들 신나게 먹는데 난 쫄쫄 굶었다. 갑각류 귀신인 남편이 그 귀한 대게 살을 발라 내 밥그릇에 놓아준다.
“왜 이렇게 못 먹어?”
“회로 먹어도 되는 줄 알았는데......”
“오사카 가면 초밥 사줄게.”
회 생각은 무슨 회 생각. 미련하게 무늬만 귤인 그 사이비 귤 먹고 울렁울렁 배탈 나기 일보직전인걸......
그래도 숙소는 전날보다 훨씬 낫다. 삼나무로 지어진 아늑한 건물에 벽난로도 있고, 거실 한 가운데 우리나라 강원도를 상징하는 반달곰 박제가 우뚝 서 있다.
강원도의 상징인 반달곰,
우리 딸 별명이라 두 배로 반가워
저랑 닮았나요??
“아, 우리 딸 보고파라.”
곰의 발톱도 만져보고 머리도 쓰다듬어 본다.
남편이 씨익 웃는다. 우리 큰 딸 별명이 주로 곰과다.
키가 175센티미터를 훌쩍 넘는 게 문제 풀면 일차적으로 틀렸다가 다시 풀면 다 맞아서 ‘반달곰’, 얼굴이 하얘서 ‘백곰’, 느긋하다가도 가끔은 한 성질 한다고 ‘불곰’, 어쩌다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 ‘미련곰탱이’, 게다가 참을성 강하고 행동이 느리다고 선생님들이 요즘은 ‘웅녀’라고 까지 부른단다.
“작전이 좋네요.”
통역을 보고 남편이 말을 건넨다. 어제보다 훨씬 나아진 잠자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내일은 호텔이죠?”
“잘 아시네요.”
네 시간이 넘게 걸려 공중화장실이나 휴게실 하나 없고, 핸드폰도 안 터지는 산골 구석으로 찾아 들어왔지만 여행이 아닌 연수에 찬 밥 더운 밥 가리랴. 이렇게 산골일수록 더 많은 노하우를 갖고 있을 게 아닌가.
강 한 가운데 숙박동이 달랑 있지만 온천시설에 외국인 지배인까지 두고 있다.
서빙하던 여종업원이 거실에서 마주치자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웃는다.
저녁 식사 시간에 속이 울렁거려서 초고추장 만들어 먹으려고 식초 좀 달랬더니 그 여자가 식초를 맥주컵으로 한가득 따라왔다. 내가 기겁했더니 통역하시는 분이 낄낄거리며 내가 식초를 한 컵씩 마시는 게 취미라고 그랬단다. 나를 별종 보듯이 바라본다. 짓궂기도 해라. 이 웬수를 어떻게 갚지?
작고 귀여운 농기계(짐을 나르는 데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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