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단풍 가지 끝이 한 잎 두 잎 물들기 시작하고......
들판에 벼들이 누렇게 황금색으로 익어가기 시작하면
지난 봄부터 지금까지 처마끝에서 동거동락하던 제비들도 서서히 떠날 준비를 합니다.
참 신기하죠?
제비들은 정말 예의를 아는 녀석들이랍니다.
찾아올 때와 떠날 때, 반드시 인사를 하거든요.
요란한 지저귐과 함께 무리를 지어 집을 서너바퀴 돌고, 제 머리위를 낮게 빙빙 돌면서 마치 부딪힐 듯 다가와서 날아올랐다가 뚝 떨어지듯이 비행을 하면 비로소 녀석들이 돌아왔구나,
그리고 떠나는구나...... 알게 됩니다.
지난 봄에 돌아온 녀석들은 작년에 부화시킨 자기 새끼에 새끼꺼정 데리고 돌아와서 자신들이 머물던 집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집이 모자른지 또다시 남쪽으로 향한 처마밑에 두개나 더 지어서 처마밑을 뺑뺑 돌아가며 녀석들 집이 여덟개나 되어버렸답니다.
모처럼 들어온 우리 아이들이 도대체 왜 이리 제비집이 많은거지?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제 서방님, 자기가 흥부라서 그렇다네요.
흥부까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해인가, 집수리 하느라 물청소하면서 녀석들 집이 본의아니게 물에 젖어 떨어지는 바람에 무지 미안해하더니 그 후부터 녀석들 둥지 때문에 집수리도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네요.
제비 녀석들, 그 사정을 아는지 점점 그 집수를 늘려가니 자연 흥부네 집이 되고 마네요.
때로는 이렇게 보수공사도 하고요......
저 작은 부리로 진흙 한 모금, 지푸라기 몇 개씩 물어나르느라 얼마나 많은 날개짓 끝에 둥지 하나를 완성시키는지를 알기에 불편하다고 함부로 허물어 버릴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집 주변에 허옇게 응가무더기를 뿌려 놓아도, 심지어는 잘 마른 빨래에도 자동차 지붕위에도 마구 실례를 해버리고, 이른 새벽마다 창가에서 시끄럽게 모닝콜을 울려 새벽잠을 방해해도...녀석들의 동거를 눈감아줄 수 밖에 없지요.
이 턱이 낮으면 어린 새끼들이 어미가 물어다주는 모이를 받아먹으려고 서로 경쟁하며 상체를 내밀다가 바깥으로 떨어져버리는 경우도 생깁니다.
동네 아저씨들은 그렇게 말하더군요.
새들의 세계는 맹수의 세계처럼 냉정하기에,
날개힘이 모자르고 먹이를 제대로 받아먹지 못해 제대로 크지 못하고 날지 못하는 녀석들은 어미가 둥지에서 밀어내어 도태시켜 버린다네요.
그래야 가을이 되어 강남으로 먼 여행을 떠날때, 날개힘 모자른 어린녀석때문에 온가족이 뒤쳐지고 위험에 처하게 되는 일은 없을터이니까요.
하지만 맘약한 저는 끝끝내 이녀석들을 둥지에 넣어줍니다.
하루라도 더 많이 자라라고, 하루라도 더 많이 연습해서 먼먼 강남으로 함께 떠나고 내년에 다시 돌아오길 기약하면서요......
예의바른 인사 후, 막상 제비들이 떠나고 나면 조금쯤은 맘이 허전해지고, 매일 보이다 안 보이는 그녀석들이 그리워집니다.
그러던 어느 해부터인가, 제비들이 떠나고 나면 그 빈 둥지를 박쥐들이 채워버립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제비들이 열심히 짓고 살다 간 그 빈둥지에 박쥐들이 가을부터 봄까지 세들어사는 건 알았지만, 이녀석들은 걸핏하면 집안으로 쳐들어옵니다.
밤잠이 없는 관계로 새벽 한두시까지 컴을 앞에놓고 거실에서 깨어있는 날들이 많은데,모두가 잠든 밤,갑자기 천장에서 무언가 후두둑 후두둑 두들기는 소리가 나더니 거실 천장을 커다란 새 한 마리가 이리저리 부딪히며 날아다닙니다. 그것도 꼭 밤열두시에서 한시사이에요.
첫날은 농사일에 지친 남편이 너무 곤히 잠들어있어 깨우질 못하고 거실로 향한 문을 꽁 닫아버리고 피신해서 기냥 잤습니다.
분명 어딘가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있을터인데 낮에는 감쪽같이 사라져서 찾을 수가 없었지요
지난밤, 또다시 천장을 드르륵 긁는 소리가 나더니 방문을 두드리고 침실쪽 창가에서 무언가 바스락거리기도 하고 슥삭거리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모두 나가고 남편과 단둘뿐이라 남편은 제 옆에서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데 누군가 집안을 돌아다니는 기척에 못 참겠어서 남편을 깨우고 말았지요.
잔뜩 잠에 취해서 자던 남편, 제가 너무 무서워하니까 방문을 닫아주고 혼자서 드디어 양 손에 장갑을 끼고 고기잡는 그물을 들고 박쥐사냥에 나섰습니다.
그물로 물고기를 잡듯 녀석을 잡아서 밖에 내놓아 주었습니다.
그 후로도 자꾸만 쳐들어와 조금 면역력이 생겨 녀석 사진을 찍어보았습니다. 저만치 떨어져서 렌즈를 쭈욱~~당겨서요.ㅋ
위로, 아래로 커다란 날개를 펼쳐 요란하게 저를 위협하던 이녀석, 이렇게 천장에 매달려서 세상 모르고 자고 있습니다.
시골에서 자란 남편에게 박쥐란 그저그런 생쥐같은 존재겠지만 제가 벌벌 떨고 있으니까 위로한다는 말이 박쥐에 한 번 물릴 생각이라네요. 박쥐의 침에는 피를 응고시키지 않는 성분이 있어 뇌졸증에 안걸린다구요.
그래도 제가 무서워하니깐 서방귀한줄 알라네요.
(하긴 며칠전에도 남편이 서울에 가 있는데 박쥐가 나타나서 이불 뒤집어쓰고 있다가 전화했더니 다른 방으로 가 있으라더니 가평 휴게소에서 한달음에 달려왔더라구요. 시골살이 시키니 이런 일도 생기지만 어쨌든 그 성의가 고마워 무지 고맙다고 했지요.^^;;)
어쨌든 밤만 되면 나타나는 박쥐란 존재가 달갑지않은지라 인터넷 검색에 들어갔지요.
박쥐는 동양문화권에서는 오복(五福)의 상징으로 경사와 행운을 가져오는 좋은 동물로 알려져있다네요. 그런데 서양문물이 들어옴에 따라 인식이 안좋게 바뀌어 갔다고 하네요.
이녀석이 오늘 밤에도 들어오면 어쩌나 근심스러우면서도 이 해석을 보니 조금 마음이 달라지긴 하네요. 차라리 제비들과 그랬던것처럼 이녀석들과의 동거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녀석들이 쳐들어오면 제가 다른 방으로 피신하는 것으로요.
참, 조그만 새 한마리가 무서워서 도망가는 삼생아짐이라니......
하지만 어쩔 수 없죠. 녀석들도 생명가진 존재니 그냥 눈감아줄 밖에요.
제비도 박쥐도 둘 다 날개가진 새인데...왜 이리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른건지...아마도 어려서부터 읽던 책들의 영향인듯도 싶습니다.
박쥐가 착하고 선량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책은 왜 없는건지......어쨌든 오복을 주는 존재라니 그렇게 믿으며 살아가렵니다.ㅠㅠ
그나저나 이 박쥐녀석 들어오고 난 후부터, 우리집은 흥부네 집이 아니라 드라큐라백작집이 되는건가요?? 제 서방님 펄펄 뛰겠네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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