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살아가는 이유가 있듯 모든 여행에도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회의로 인한 출장 등 업무에 관한 것이든, 심란한 마음을 비우기 위한 것이든, 혹은 재충전을 위한 것이든, 놀고 먹고 즐기기 위한 것이든 저마다 그 여행의 출발 전에는 일상을 벗어나는 자유로움과 작은 설레임이 있기 마련이지요.
그러나 점점 나이들어 가는 지금 가장 좋은 여행은 조용한 여행입니다 .
때로는 오월까지 눈이 내리기도 하는 강원도 산골마을,그래서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가는 기분은 더욱 좋습니다.
3박 4일의 여정이었지만 최소한의 짐을 꾸려 달랑 배낭 하나메고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
비행기가 이륙할 때 잠시 느껴지는 몸의 부유력, 땅을 떠나 지상으로 연결해주는 비행기의 이륙 느낌이 참 좋습니다.
공항에서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남편이 묻습니다.
"저 사람들이 왜 손을 흔드는지 알아??""
"음......무사히 이륙하라고 안내해주는 신호 아닌가??"
"아니야, 지상을 떠나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까 잘살아 남아라" 라는 뜻이야.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하긴 앞날을 알지 못하니 내가 선 지금 이 순간이,삶과 죽음의 경계인지 그 누군들 알까요?
내가 지금 이순간 숨쉬고 있으니 그저 살아있음을 알 따름이겠지요.
비행기 꼬리가 보이는 곳에 앉아 지상을 내려다봅니다. 아파트도 강도 산도 길도 모두다 자그맣게 보입니다. 내가 살던 그 깊은 산골도 초록의 모형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 많던 사람들과 차의 존재란 아예 보이지도 않습니다.바다위에 구름이 떠있고 그 구름위에 내가 있습니다.
구름속의 산책, 더 높은 곳의 구름을 헤치고 비행기가 가고 있고, 구름조차 보이지 않는 곳, 햇살만이 찬란한 곳에 내가 있습니다.
한없이 평온해지는 마음,어딘가에 도착하지 않아도 이 고요함이 마냥 좋습니다.비행기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 모습에 빠져 비행시간동안 많은 생각을 하곤합니다.
내 아이들, 가족들, 내가 하고 있는 일들, 만날 사람들, 내가 도착할 곳의 모습들......
역시나 제주 공항의 모습은 내가 살던 침엽수지대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마치 동남아 쪽 어딘가 혹은 남태평양에라도 도착한 듯 공항 밖으로 보이는 열대수들의 흔들거림이 잔뜩 움츠렸던 어깨를 풀어지게 합니다.
택시를 타고 40분정도 달려 선착장에 도착, 우도로 향하는 배를 기다리는데 우도의 양희진 위원장님이 차를 몰고 마중을 오셨습니다.
우도로 향하는 배에는 사람도 차도 함께 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먼 육지에서 차를 가져오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요즘 제주 렌트카 회사도 많이 늘어서 하루 10만원 정도의 렌트비로 제주 일대를 모두 돌아볼 수 있으니 굳이 차를 가져오지 않아도 될 듯 싶습니다.
우도에 도착하자마자 양희진 위원장님의 안내로 우도 탐험에 들어갔습니다.
썰물시에만 볼 수 있다는 한반도 지형,"여'를 보려면 지금 시간이 가장 알맞다네요.
신기하게도 바다속에서 솟아난 바위모양이 한반도를 쏙 빼닮았습니다.
남쪽 바다 끝에서 바다에서 솟아오른 한반도의 모양은 왠지모르게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양구 배꼽마을에서 볼 수 있는 한반도 지형,영월에서 볼 수 있는 한반도 지형,이곳 남쪽 제주도 건너 우도에서 바라보는 한반도 지형
우리나라 모습을 닮은 그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애국자가 되게 하나봅니다. 역시 나는 대한민국 사람이 맞습니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우도 섬의 모습,소가 길게 드러누운 모양이어서 우도라 한다고 합니다.
바다에서 보면 그 모양을 더 잘 볼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다음날 배를 타고 바다에서 우도를 돌아보기로 약속하고 첫날은 양희진위원장님 차를 타고 우도순례를 했습니다.
돌, 바람, 여자가 많은 제주도답게 바람 세기가 장난이 아닙니다. 하지만 트럭 뒤에 타고 돌아보는 우도 곳곳의 모습은 좀 더 색다를 듯 싶습니다. 감기 걸린다고 여자인 저는 조수석에 타고 남편과 함께 한 일행은 트럭 뒷칸에 타고 그야말로 오픈카의 드라이브를 즐겼습니다.
우도의 등대봉 아래 차를 세우고 등대봉을 향해 올랐습니다.
일명 우도봉이라 하는 곳인데 우도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멀리 성산 일출봉도 보이네요. 예전에 왔을 때는 이곳에서 말을 타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는데 오늘은 쌀쌀한 날씨 덕인지 관광객이 그리 많아 보이질 않습니다. 덕분에 호젓하게 우도의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습니다.
고개를 내려보면 바닥도 돌담도 건축물의 벽도 모두가 화산활동의 산물인 현무암으로 되어있습니다.
제주도의 돌들은 중요한 자원이기에 외부로 반출이 금지되어 있다고 합니다.
등대봉을 오르는 계단도 현무암으로 되어있습니다.
현무암을 잘 활용한 생활시설들은 도시사람들에겐 어떤 부러움 같은 것으로 비쳐지지만 섬사람들이 살아가는데에는 어쩔 수 없이 요긴한 자원이 될 수 밖에 없었을겁니다.
역시 사람은 지역의 자연 환경에 맞게 살게 되어있습니다.
등대봉에서 내려와 입구에 있는 작은 매점을 찾았습니다.
우도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땅콩 막걸리,고소하고 달콤한게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가며, 혀끝에 땅콩특유의 고소한 향이 기분좋게 감돕니다.
사양하는 척 했다가 한 번 맛본 뒤 내가 정색하고 거드는 바람에 한병이 두병이 되고 말았습니다.
술 술 넘어가는 술이라는게 바로 요런 술인가봅니다.
제주도의 거센 바람에 시달려 잠시 움츠러들었던 어깨마저 활짝 펴지는 듯 싶습니다.
땅콩막걸리로 새참(?)시간을 보내고,양희진이장님의 땅콩창고로 향했습니다.
작년 태풍때 땅콩밭이 휩쓸려나가 땅콩수확이 형편없다며 태풍이나 수해의 피해가 없는 넓은 들판에서 마음껏 농사지어보는게 소원이라십니다.
그래서그런지 넓은 창고안에 쌓인 땅콩자루와 껍데기는 생각보다 적은 양이어서 같은 농민으로서, 애달픈 농부의 마음이 느껴져 순간 가슴이 아릿해집니다. 힘들고 어려운 농사일, 그 어려움을 떠나 인간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잦은 자연재해와 싸워야 하는 섬농부의 애환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저물어가는 우도에서의 첫날,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학교로 뽑혔다는 우도초등학교를 찾았습니다.
육지에서 보는 학교의 모습과는 정말 느낌이 많이 달랐습니다.
싱싱한 식물들의 싱그러움과 내부에 연못이 조성되어있고 마치 갤러리처럼 학생들의 작품이 오밀조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딱딱한 학교라기보다는 풍성한 아트센터 같은 느낌의 초등학교
이제 갓 입학한 꼬마가 물고기 밥을 주느라고 집에 갈 생각을 잊어버렸습니다.
떠나기 싫은 학교, 오고 싶은 학교, 그것만으로도 이제 학창시절을 마악 시작하는 꼬마에겐 추억의 학교가 될 듯 싶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우도의 초등학교인지라 이장님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의 학교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지역이든 그 지역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아이들의 모습에게서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국가는 미래가 없는 나라겠지요.
우도 주민들의 사랑방 천진리 마을회관옆을 돌아나오는데 남편이 현금을 찾아오겠다며 농협인출기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마악 웃습니다.
육지에 있는 농협의 현금인출기 시설들의 문은 강도들이 돈을 인출해서 쉽게 도망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안으로 당겨야만 열리는데 이곳은 밖으로 밀고 나올 수 있다며 신기해합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하긴 강도가 발생해도 사방이 바다라서 도망갈 데가 없을거야 하네요.
그래서일까, 평생 이 곳 우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도둑도 사기도 없을 듯 싶습니다.
저녁시간에는 산호장식품으로 내부를 꾸민 산호횟집에 들렀습니다.
우도의 해안은 화산활동의 잔재인 현무암 알갱이들로 모래를 이룬 검벌래해안과 자잘한 산호들이 깨어져 이룬 하얀 산호모래사장 두 곳이 유명하다고 하네요.
생각보다 산호장식품이 많아 채취한거냐고 했더니 펄쩍 뛰면서 모두 샀답니다. 덕분에 아기자기 다양한 모양의 산호들을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싱싱한 바다회와 맑고 시원한 지리국, 전복 등으로 저녁을 먹는데 모두가 해녀들이 건져낸 자연산이랍니다. 그러면서 양희진 위원장님의 사모님도 해녀라 하시네요.
제주도 특히 우도에서 사는 여자들은 대개가 해녀들이라고 합니다.
해녀생활 3년 정도면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할 수 있을 정도로 수입도 괜찮고 바다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거의 모두 물질을 해서 자식도 키우고 살림살이도 보태서 80이 넘어서까지 대부분 해녀일을 하신답니다. 그래서 육지에서 시집 온 여자들도 자연스레 해녀일을 배워 바다로 나가고, 그래서인지 제주에는 해녀 학교도 있습니다.
낮에 우도로 들어오면서 만났던 해녀분들의 얼굴이 침울했던 생각이 나 조심스레 여쭈어보았더니 바로 엊그제 바다에 물질을 나가셨던 80넘은 해녀 한분이 심장마비로 물속에서 돌아가셨답니다. 그분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네요.
한평생 물질로 살아오셨을 분인데...... 해녀분들은 육지에 오르면 이곳 저곳이 다 아프고 쑤시다가도 바닷물속에만 들어가면 그 증세가 싸악 없어져서 다시금 물질을 한다고 들었는데......평생을 함께 해 온 바다에서 돌아가셔서 행복하셨을까 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 봅니다.
남겨진 사람은 그 마음을 알 길이 없네요.
첩첩산중 강원도 깊은 농촌 산골마을의 농부의 아낙의 삶과는 또다른 바다아낙들의 삶의 신산스러움이 느껴져 어쩐지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젓가락질, 숟가락질 한번에도 해녀들의 목숨값이 담겨져 있는 듯 싶어 허투루 넘어가질 않습니다.
밤새도록 거센 바닷바람 소리를 들으며......객창감마저 느껴지는 밤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 못 이루며 우도에서의 첫 밤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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