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정보센터에 나와 운전면허 시험 준비를 했던
캄보디아 출신 주부 트리시브메이가 울먹울먹 전화를 했다.
"선생님, 어떡해요, 저 좀 도와주세요!!"
깜짝 놀라 무슨일인가 물어보았더니
"저 시험 못 봤어요. 시험 보러 갔는데 글자가 다 안 보여서 못 봤어요."
그런다.
시험장에서 컴퓨터로 시험을 보는데
캄보디아어 글자가 깨어져 두번이나 시험을 못 보았다는 것이다.
추운 겨울 내내, 집에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걸어나와
버스를 타고 센터에 와서
내내 컴퓨터로 시험공부를 했는데......
cd 한권을 거의 베끼다시피 한자한자 써서 공부를 했는데...
그리고 춘천에 있는 시험장까지 다녀오려면
하루해가 꼬박 걸리는데
춘천에 시험을 보러 두번이나 갔건만 두 번 다 못 보았다면서
학원에서 연락해 준다고 했는데
한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고 도와달라고 생각다못해 내게 전화를 건 것이다.
메이의 전화를 받고나니 마음이 영 편칠 않았다.
차가 없는 사람이
이곳 시골에서 춘천까지 시험을 보러 다니려면
얼마나 힘든지를 알기에 일단 홍천에 있는 운전학원으로 전화를 했다.
대학입시를 치룬 수험생들과 농한기에 면허를 따려는 농촌주부들로 업무가 바쁜지
운전학원에서는 춘천 시험장에서 연락이 안 와서
자기네도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달이나 기다리게 하냐고 했더니
알아보고 다시 연락을 해 준다더니 역시나 연락이 없다.
재차 전화를 했더니 어떤 남자가 짜증을 내며 바쁘다고 끊어버린다.
한 두 명의 외국인 수강생 일로 시간을 내는건 어렵다는 건지...
한 명의 수강생은 수강생이 아니냐고 화를 내고 싶었지만
꾹 참고 이번에는 춘천에 있는 시험장으로 직접 전화를 했다.
두번이나 시험에 응시한 건 맞지만
캄보디아어를 아는 사람이 없어
시험문제가 깨졌는지 어떤지를 알지 못하겠다고 한다.
홍천에 있는 다문화가정센터에 연락하니 캄보디아 통역원은 없어서 힘들다길래
시험장 인근의 다른쪽의 다문화가정 센터와 연결하여 해결할 방법이 없겠냐고 했더니
국가시험이라서 자기네는 시험장에 들어갈 수 없단다,
그러면서 운전시험장의 잘못이니
그쪽에서 정식으로 공문으로 요청하면 자기네가 움직여보겠단다.
"뭐가 이렇게 복잡하고 힘들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무리 한국말을 잘하는 트리시브메이라 하더라도
혼자서 이 과정을 다 하려면 꽤나 힘들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어떻게해서든 트리시브메이가 시험을 치루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운전면허 시험장과 연결하여
시험문제가 준비되면 보게 하고
두차례에 걸쳐 시험을 못 본 것은 시험장측 과실이므로
응시료를 돌려주라고 요구하고
운전면허 준비를 위해 샀던 CD에도 깨어진 글자가 있어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으므로
시험문제를 출력할 수 있는 파일형태로 제공하거나
cd 값또한 환불하거나 교환해 달라고 하니
새것으로 교환해 준다고 했다.
한국인이 나서서 챙기기전에
알아서 챙겨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나중에 트리시브메이에게 확인하니
돈은 돌려받고 세번째 응시한 시험에는 응시료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운전면허 시험장에 계신 분이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손을 잡고 사과하면서
돈도 돌려주었다고 기뻐한다.
세번째 시험을 치르고 나서 전화를 했더니
트리시브메이는 역시나 시험문제가 깨져있었다고 한다.
이번에는 춘천 경찰서 외사계에 근무하고 계신 친척분께 연락하여
상황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드렸더니
시험문제에는 이상이 없었다고 하신다.
그런데 메이는 깨져있었다고 하고...
어떻게 이 일을 해결해야하나 고민하고 있다가
나도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엊그제 메이가 전화를 했다.
"선생님, 저 합격했어요."
드디어 시험에 합격했단다.
그런데 서울까지 가서 시험을 보았다고 한다.
시험문제가 깨지질 않아서 잘 보고,
붙었다고 고맙다고 전화를 했다.
얼마나 기쁜지......
아마도 메이의 그 힘든 노력과 착한 마음씨덕에 붙지 않았을까 싶다.
지난 겨울내내, 센터에 와서 공부하는 동안
첫날은 도시락을 싸 왔길래 집으로 데리고 가서 점심을 함께 먹었다.
내가 밥을 차리는 동안
상 닦고, 수저놓고, 반찬도 놓고
자신이 싸온 도시락의 밥을 우리 밥솥에 달랑 부어넣는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말릴 새도 없이 그렇게 하는 메이를 보니
남에게 신세지지 않으려는 그 마음씀이 보여 그렇게 이쁠 수가 없다.
밥을 먹고 나니
설거지를 하겠다고 해서 못하게 했더니
상도 치우고,닦고, 싱크대도 닦고
밥솥까지 닦아준다.
그 후로도 늘 우리집에 와서 점심을 먹거나
마을 운영위원분들이 점심을 사주시는 날
함께 가서 먹곤했는데
그 때마다 점심값을 내려 해서 못 내게 했더니 내내 미안해한다.
어떤날은 메이가 간 뒤에
이렇게 까만 봉지에 싼것이 놓여있어 무언가 보았더니
컵라면이다.
가끔 둘이서 라면을 끓여먹기도 했는데
그런 다음날이면
가고난 뒤 역시나 라면이 두개 살며시 놓여있어 혼자서 웃곤했다.
마음 씀씀이가 너무 이쁘고
동생같기만 한 트리시브메이
메이가 공부하는 걸 본 주변분들은
한국사람도 어려운데 다문화가정 주부가 딸 수 있겠냐며
고개를 저었는데
보란듯이 합격한 메이가 너무 기특하고 이쁘다.
이제 실기시험이 남았는데
실기시험도 무난히 합격하리란 생각이 든다.
메이의 노력과 정성이면
왜 아니 그렇겠는가......
외국에 나가 있는 동생도 이렇게 어려움을 당한다면
누군가 현지인이 도와준다면 얼마나 힘이 될까...라는 생각도 들면서
나라, 인종, 지역, 성별, 학력...
그런 차별없는 세상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도 나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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