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생활을 접고
이제 이탈리아로 영영 떠나는 제부를 위해 송별회를 하고
오랫만에 친정집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새벽에 소 밥을 주기 위해 돌아오려는데....
(요즈음 소값이 떨어지다 못해 아예 거래가 중단되어
한숨만 푹푹 나옵니다.
여름내 땀흘려 벌어 소 사료값으로 몽땅 들이밀어도
감당이 안되지요.
이젠 소가 많은 집들은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라 빚만 늘어가는 집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생명가진 짐승...굶길 수 없어 농가에선 사람보다 먼저
끼니를 챙겨야하지요......)
엄마가 굳이 아침먹고 가라면서 주방을 바쁘게 오가십니다.
너무 새벽이라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렸지만
엄마는 홍어를 졸이고, 밤과 완두콩을 넣어 따뜻한 밥을 지으시네요.
새벽에 돌아가서 밥 지어 먹으려면 어설프다고......
전 엄마의 새벽잠을 깨워 밥 짓게 하는 것이 죄송한데......
그리고 물 한모금도 넘어갈 것 같지 않은 새벽이라 극구 말렸건만
엄마는 기어이 밥상을 차리십니다.
얼마전에 저희 밭에서 뜯은 무청으로 담으신 김치와
하나하나 일일이 까서 재운 더덕무침
김장했는데 왜 굴이 들어간 쌈이 없냐는 둘째아들의 한마디가 걸려
무를 썰어넣은 굴무침을 하시고,
그리고 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밥식혜...를 놓으셨습니다.
너무 새벽이라 한 숟갈도 넘어갈 듯 싶지 않던 처음 마음과는 달리
정말 오랫만에 맛난 새벽(아침?)밥을 먹었습니다.
엄마가 차려주신 밥을 든든하게 먹고 나서니 세상은 아직도 춥고 어두운 새벽
하지만...안개 자욱한 그 새벽이 하나도 춥게 느껴지질 않습니다.
이런게 바로 '엄마의 힘'이구나...라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제자신이 많이 부끄러워집니다.
저희가 자랄때부터 몸에 해롭다면서 단 한번도 인공조미료가 들어간 음식을 만들지 않으신 엄마
인스턴트 음식도 일체 저희에게 먹이지 않으셨지요.
대신에 새우와 다시마와 멸치를 말려 가루를 내고
입는 속옷이나 덮는 이불꺼정 모두 면으로 장만해서
일일이 손빨래를 하고 삶아 형광빛이 비칠 정도로 하얗게 만들어서 입히고 덮게 하셨지요.
엄마의 모든 목표와 삶의 방향은 저희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서 잘되는것
오로지 그것 하나뿐이었는데...
저희들은 엄마의 그 배려를 때론 짜증내고, 귀찮아했지요.
자식들을 위해 새벽밥을 차리시는 엄마의 그 마음을 읽었기에
얼릉 가자고 서두르던 그이가 밥을 먹고 가자고 먼저 주저앉네요.
그이의 마음씀이 고맙습니다.
그리고 저의 무심함과 무정함이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내가 내 아이들을 낳고 기르면서 가졌던 그 마음들은
그래도 나를 어느정도 사람답게 만들었다고 스스로 자부했는데
우리 엄마의 사랑과 희생, 그리고 그 정성에 비하면
아직 까마득히 멀었다는 생각도 들고...
내 아이들을 위해 나는 엄마가 해주신 사랑의 백분의 일도 못 베풀고
또 엄마에게도 그 사랑을 천분의 일도 못 갚는다는 죄송함이 가득해집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힘들거나 춥고 외로울때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그 맛깔스런 한 끼가
무한한 힘이 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또한 내 가족을 위해 그런 새벽밥을 짓는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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