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성장일기)

잊지는 않으셨겠죠??

삼생아짐 2010. 3. 28.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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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님께서  병원에 입원해 계신동안 가족 모두 돌아가며 어머니의 곁을 지켰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정성스레 어머니를 돌본건 바로 어머니의 첫손주 수향넘이었지요.


어머니의 소변을 갈아드리고 또 받아내고, 양을 재어 간호사에게 알려주고...

수술후 목과 코에 연결한 산소호흡기 탓에 가래침을 뱉기 힘들어하시자 돌아 누우시게 하고 등 두드려 가래침도 받아내고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는 어머니를 위해 가제수건을 수시로 적셔 입술에 대어드리고,

열을 내리기 위해 물수건으로 찜질해 드리고,

화장실 거동을 못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두시간마다 깨어 그 수발을 다 들었다는데...

자신도 잠결에 한 일이라 기억이 나질 않는다네요.


옆에서 간호하는 모습이 너무너무 척척이어서 식구들 모두 무척 놀랐답니다.

제자식이지만 넘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고, 수향넘보다 익숙치못한 제가 좀 부끄럽고 미안하기도 하고...

어머님께서도 수향이가 옆에 있는 게 제일 편하시다며 수향이에게 많이 의지하셨지요.

 

삼생아짐 ; 어머님, 수향이 길러주신 보람 있으시죠??

 

어머님,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며 딸을 낳아주셔서 고맙다고 몇번이나 하시네요.

평소에 저희 어머니, 아들만 둘 있고 딸이 없다고 늘 딸을 부러워하셨거든요.

제가 시집와서 수향이를 제일 먼저 낳았을 때, 첫손녀 보셨다고, 집안에 경사났다고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것도 모르고 남존여비 사상이 뿌리박힌 울 친정아버진 딸낳은 죄인이라고 미안하다고 울 최후의 보루 불러서

비싼양주 사주시면서 자네 어머니 뵐 낯이 없다고,

면목없다고 거듭거듭 미안하다고 그랬다네요.

 

울 최후의 보루는 시침 뚝 떼고, 심각한 얼굴로 그 술 다 받아마시고 떡이 되서 들어와서,

코 드렁드렁 골며 곯아떨어지고...

밤새도록 토해대는 수향넘 뒤치다꺼리 하느라 전 죽을 고생 했는데... 

21년만에 딸 낳아줘서 고맙다는 소리를 시어머니로부터 다시 들으니 감개무량하네요.

 

수향이 중학교때 춘천으로 나가서 생활할 때 어머님이 뒷바라지 해주셨는데,

녀석이 공부 안 하고 뺀질거래길래 도로 시골로 불러들여 정신개조 시켜서 대학보내고,  

대학에 가자 다시 어머님께서 그 뒷바라지를 다 해 주셨는데...

늘 수향이를 연세드신 어머님께 맡기고 죄송하다 생각했는데

이번에 수향넘이 할머니 옆에서 정성스레 병간호를 해서 그동안 어머님께 죄송했던 마음을 조금 갚았지요.

 

수향넘 ; 엄만 이런거 잘 못하지?

 

제가 교대한다고 병실에 있으면서 뭘 어찌해야할런지 잘 몰라서 어머니 옆에 가만히 앉아있자,

능숙하게 일회용장갑을 꺼내 어머니의 소변을 갈며 저를 쳐다보며, 놀리는데......

녀석, 시어머니 앞에서 저를 구박해도 녀석의 그런 모습마저도 그렇게 이쁠 수가 없네요.


게다가 가제수건을 여러장 적셔서 컵 주위에 쪼르륵 돌려걸쳐 놓으며 할머니가 수시로 입술을 적실 수 있게 해드리면서

'병 간호는 멍청히 옆에 앉아있는 게 아니고 이렇게 하는거야'하네요.

고등학교때 홍천에 있는 노인요양원이랑 장애우 공동체 등에서 자원봉사 해 본 덕에 어떻게 하는 지 잘 안대요.

 

그렇게 어머니의 시중을 들던 수향넘, 사랑니를 빼고 염증이 생겼다며 몹시 힘들어하고 아파하길래,

하루라도 편안히 재우려고 집으로 델구오라 그랬지요.

수향넘 아빠, 집으로 델구 오면서 저랑 연애하던 때 얘기를 해줬나봐요.

 

수향넘, 저를 보자마자 씨익 웃으며 : 엄마, 지금의 내 나이때 아빠 만나 연애했다면서??? 아빠한테 다아 들었어~~


이녀석이 또 뭔소리를 하려고 저렇게 느물거리나 하면서 녀석의 나이를 헤아려보니 정말 그렇긴하네요.

근데요, 왜 저는 이녀석 나이때 다 자랐다는 생각이 들고, 수향넘은 아직도 제눈에 어린애로만 보이는걸까요??

참 이상하죠??

 

하여튼 아니나다를까 수향넘 ; 근데 엄마, 아빠가 엄마 만나기 전에 사귄여자들 수가 하두 많아서 45인승 버스의 자리가 모자라서 보조의자꺼정 놨었다는데??

 

삼생아짐 ; 헐~~  그걸 지금 애 앞에서 자랑이라구 한거야??


내가 미쳐, 난 승용차 한대두 남는데, 그럴 줄 알았으면 승합차 정도는 되게 사귀어 볼걸.

 

제가 화가 나서 방방거리니깐 수향넘, 우스워 죽겠다고 깔깔거리고, 

할머니한테 확인해야징~~ 하더니 고담날 다시 병원에 가서 시어머니 앞에서도 이 이야기가 이어졌네요.

 

수향넘, 자기 아빠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해 본다며 할머니께 결국 여쭈어 본거죠. 


울 시어머니, 피식 웃으시더니 ; 니 아빠가 여자친구들을 집으로 엄청 델구 오긴 했어.

울 최후의 보루, 의기양양해서 ; 45인승 버스 좌석이 모자라서 통로에도 보조 의자 쭈르륵 놨었다니깐.

 

그소리에 모두들 박장대소하고, 시어머님, 제가 조금 안되어 보이셨는지 ; 근데 결혼은 니네 엄마랑 했잖아.

하고 웃으시네요.

 

하여튼 제가 열받아서 씩씩거리니깐 울 최후의 보루 ; 근데 말이야, 아빠가 엄마랑 결혼한 건 그 많은 여자들 중에서 라면 끓여먹고 설거지 하고 간 여자는 늬 엄마밖에 없었어.


이러는 거예요.

 

수향넘; 그니깐 아빠가 엄마랑 결혼한 이유는 엄마가 설거지를 해놓고 갔기 때문이야??우와, 아빠 짱(!)이야.

 

그 소리에 정말 모두들 배꼽쥐고 웃고, 울 시어머니, 수술한 자국 땡기신다면서도 마악 웃으셨죠.

열받은 저만 죽상되어버린거죠.

 

삼생아짐 ; 내가 다음 생에 태어나면 난 기차표 끊어놓는다.


말해놓고 나니, 아차, 울 시어머니 눈치 보이네요.

 

어머님, 저를 보시더니 ; 이번 주에는 꼭 교회나가라~~


그러시네요. 예전에는 토요일마다 전화하셔서 별일 없냐?? 하시면서 은근히 무언의 압박을 보내시더니...

이번에는 약속 지키라고...


에휴...

 

돌아오는 길에 제가 한숨을 푸욱 푹 쉬었더니, 울 최후의 보루 ; 그러길래 책임질 말을 해야지. 누가 나오는대로 말하래??

하며 피식 웃어요.

 

근데요, 자기두 까먹었나본데, 자기는 어머니 퇴원하시면 매주 일요일마다 춘천 나와서 어머니 모시고, 어머니가 다니는 교회 간다 그랬거든요.

잊지는 않으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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