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아들넘이 몹시 아팠어요.
밤새도록 열이 나고, 힘들어해서 녀석 간호하느라 저도 덩달아 잠을 못잤는데...
학교가서도 아픈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괜찮다네요.
그러더니 학교에서 돌아와서 녀석 하는 말 ; 엄마, 나 XX랑 헤어질거야.
삼생아짐 ; 왜??
민재넘 ; 아무래도 걔가 나랑 헤어지자 그럴거 같아서
채이느니 내가 먼저 차버릴래.
삼생아짐 ; 조금 기다려봐. 걔가 너랑 헤어지자 그래도
마음이 바뀔 시간을 주고, 기다려줘야 남자지.
그래도 여자가 남자한테 헤어지자는 말을 하는 게 낫지
남자가 먼저 그러는 건 너무 잔인하다.
민재넘 ; 그치만 난 채이는 거 싫어. 내가 먼저 차버릴거야.
너무나 단호한 아들의 태도에 당할 여자아이 마음이 안됐어서
달래려 했지만, 녀석 결심을 굳힌듯 싶네요.
삼생아짐 ; 근데 이제 화이트데이 다가오는데, 넌 걔한테 초콜렛 받고
아무것도 안 해줌 넘 미안하잖아.
민재넘 ; 그래서 오늘 사탕 갖다 주고 헤어지잔 말 할거야.
삼생아짐 ; 그건 더 잔인해. 사탕 주면서 헤어지자는 말 하는 사람이 어딨어.
그래도 녀석은 이미 마음을 굳힌 듯 별 표정의 변화가 없네요.
두녀석이 공개적으로 부부(=서방과 부인)사이임을 선언한 후
가끔가끔 온 식구가 아들의 연애를 놀려먹는 재미로 살았는데
이젠 그 재미도 없어져버렸네요.
가령 녀석이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을 보면서
민재넘 ; 난 이런거 너~~무 좋아.
하면서 텔레비젼 앞으로 바짝 다가 앉으니깐 울 최후의 보루; 부인보다 좋아???
민재넘 ; ......
녀석이 공부 안하고 만화책이나 텔레비젼을 볼 때면
삼생아짐 ; 이담에 부인 먹여살릴려면 열심히 공부해서 돈 많이 벌어야지.
민재넘 ; ......
녀석이 양치질을 3분이상 안 하면
삼생아짐 ; 부인있는 넘이 깨끗해야징~~~이담에 뽀뽀할 때 이가 누렇게 보임 어떡해???
하여튼 매사를 부인과 연결지어 녀석의 나쁜 버릇들도 잘 고쳤는데...
이제 그것도 못써먹게 됐네요.
사탕부케 사이에 아무렇게나 쓴 편지를 집어넣길래
못하게 말렸는데도
녀석은 기어이 집어넣네요.
삼생아짐 ; 너무 잔인하다, 김민재.
사탕부케는 사랑고백인데...그거 받고 좋아야 하는데, 어쩜 거기에 이별 편지를 넣을수가...
그것도 연습장에 대충 써서...
민재넘 ; 아냐, 엄마. 내가 15분동안 무지무지 심각하게 생각해서 쓴 말이야.
그리고 걔 맘 돌아오지 않아, 걔 행동이 계속 그랬어.
녀석, 아무래도 '부인'의 마음이 자기한테서 떠날 것 같다는 확신을 가진 듯 싶네요.
학교 끝나고 센터에 와서 아주머니들이 컴공부하시는데 타자연습 하던 녀석
아주머님들이 게시판에 올린 거 보고 민재 부인 잘 있냐고 하니깐
녀석, 이제 헤어질거라면서
자기가 먼저 찰거라고 당당히 말하네요.
그랬더니 아주머님들이랑 지용주 이장님이랑 울 최후의 보루마저
모두 남자가 여자를 차는게 아니라 여자한테 차여주는 거라고 말했지만...
녀석, 자긴 차이는 건 죽어도 싫다고 완고하게 자기가 찬대요.
녀석의 표정이랑 말투를 가만 지켜보니...
그리고
결국 지지난 밤에 그토록 아픈 것도 어쩌면 녀석, 이별을 예감한 열병이었다는 생각이 들고...
녀석 나름대로 얼마나 힘들게 생각하고 내린 결정인지 이제사 느낌이 오더라구요.
녀석의 말을 가만 들어보니 이제 이별은 피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녀석 나름대로는 이것저것 생각해보고
신중하게 내린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용주이장님 ; 얘네 나이때 이렇게 이별 연습을 해보는 것도 괜찮아.
이런것도 다 이담에 어른이 되어서 겪는 일들의 준비과정이 될 수 있어.
이렇게 어린 나이에 헤어지고 만나고 해봐야 어른이 되어서 충격이 덜하지.
그러게요...
일종의 연애 예방주사 같은 걸까요...
문득 이녀석 나이때의 제 연애사도 아스라이 떠오르고...
그치만 그 나이때에도 저자신 나름 죽을 것처럼 힘들고 진지했었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시절을 거쳐오는 동안
만나고 헤어지는 연습을 통해 여러 사람들을 알게 되고,
'이성'의 특성들도 나름 많이 파악한 듯 싶긴 하네요.
그러고 보니 제가 꽤나 연애대장이었던것처럼 비치는데...그건 아니구요...
다만
어른들이 항상 말씀하시던 한사람만 사귀지 말고, 여러 사람을 사귀어 보란 말씀이
지극히 공감이 가는 듯도 해요.
이제 우리 막내아들 녀석도 이별을 통해 한단계 성숙해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녀석의 진지한 연애를 놀려먹은게 미안해지기도 하고,
그치만 이 이별을 통해 민재란 넘도 조금씩 조금씩
'사랑'과 '이성'을 알아간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나저나 민재넘, 저한테 핸폰 보여주면서 ; 엄마, 나 얘 이름옆에 있는 하트 다 지웠어.
그리고 엄마만 사랑할거야, 내겐 엄마밖에 없어. 다시는 여자친구 같은거 안 사귈거야.
엄마, 내 맘 알지??
하면서 제 머리냄새를 맡으면서 볼에다 뽀뽀해주는데...
에휴, 요 빤한 배신자의 사랑을 어찌할까요......
또다시 맘에 드는 여자친구가 생기면 이번엔 그 여자친구를 무어라고 부를지 궁금하기도 하고
또 녀석의 마음을 떠보려고 물어봤네요.
삼생아짐 ; 민재야, 담에 너 여자친구 생기면 뭐라고 부를거니?
부인보담은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호칭으로 불러야 걔가 기분나쁘지 않을거 아냐??
민재넘; 몰라. 그딴 걸 왜 물어??
삼생아짐; 잘 생각해봐, 뭐라 부를지...
민재넘,귀찮은 듯 ; 기냥 걔 이름 부를거야.
그럼그렇지, 녀석 다시는 안 사귄다더니 금새 본심이 드러나네요.
역시 남자의 말은 믿을게 못된다는 말이 실감나요,
그 대상이 남편이건, 아들이건간에요^^;;
'우리 아이들(성장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굴 버려요??? (0) | 2010.04.12 |
---|---|
잊지는 않으셨겠죠?? (0) | 2010.03.28 |
비교하지마세요ㅡㅡ;; (0) | 2010.03.01 |
부인 따랑해??? (0) | 2010.02.20 |
고생문 (0) | 2010.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