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성장일기)

대한민국의 수험생 부모로 살아간다는 것은(2)

삼생아짐 2009. 12. 21.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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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고입 시험을 치러 가는 아들놈한테 결국은 신경질을 내고 말았다.

잘봐, 최선을 다해

이렇게 격려해야 하는데 그 말이 끝내 입밖으로 나오질 않고,

버럭 소리 지르고 신경질만 내고 말았다.

녀석이 얼마나 공부를 안 하고 뺀질거렸는지를 알기에 결국은 그 말이 입밖에 나오질 않았다.

 

녀석이 붙어도 짜증나고 떨어져도 짜증날 터였다.

운이 좋아 간신히 붙는다면 기뻐해야 할 터인데 녀석, 교만할 게 뻔하고

떨어지면 그도 망신인데 녀석이 차라리 정신이라도 차리면 좋으련만

도대체 마음을 어찌 잡아야 할런지 모르겠어서......

 

시험보러 가는 녀석 가방에 책가방에 필기도구와 책이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

근데 녀석은 책가방도 아닌 여행가방에  옷이랑 책이랑 몽땅 쑤셔넣고, 컴퓨터용 수성 싸인펜은 커녕 볼펜 한자루 없고...

전날밤에는 시험 끝나자마자 영화 볼 생각에 들떠 있고 벌써부터 시험 끝나면 놀생각에 마음이 잔뜩 부풀어있다.

도대체 뭐가 중요하고 뭐가 우선인지

아직까지도 그걸 모르는 것 같아 한심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어휴, 저걸, 콱...' 

정말정말 성질대로 마악 욕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게다가 모른다고 표시했던 부분들은 선생님을 찾아 질문하고 알아야 마땅함에도 모르는 채로 그냥 놔뒀다.

고입 시험 본다는 놈이 시험문제지 한권 갖고 내내 메대기를 친다.

 

녀석을 보면 짜증만 났었다.

내가 저 녀석을 사랑하지 않는걸까...

아님 내가 부모로서 정말 많이 부족한가

 

어찌 저렇게 인생의 목표도 의지도 끈기도 없는 것인지...한숨만 푹푹 쉬다가 

녀석을 시험보러 보내놓고 스스로 돌아보았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초등학교때 그토록 영특하고 재주 많던 아이가 왜 저리 변해버렸나.

중학교 입학 할 때도 정말 무지 많이 싸웠다.

조금만 노력하면 일등은 문제없는데,

그래서 녀석을 붙들고 공부를 시켰건만 나중엔 징징거리고 울기까지 하더니

어쩌다 운이 좋아(다른 놈들이 더 엉망으로 시험을 치뤄서...) 수석으로 들어갔다

잔뜩 의기양양한 넘

그다음은 정말, 내둥 개판이다.

녀석 잘못 될까봐 걱정도 되고, 싸우기 싫어 내버려뒀건만 

자기 아빠가 목표를 정해주고 알아서 하라 했더니 정말 알아서 무지 잘 놀아댄다.

 

학교는 거저 가는건가

평상시의 성실성이 그대로 반영되는건데

시험보는 날 시험범위도 모르고, 선생님들이 내준 힌트 시험지도 제대로 못 챙겨 시험보는 놈이

어찌 내신 점수가 나올까.

 

선생님들이 힌트 많이 준다고 욕할 것도 아니다.

내새끼가 못 챙겨먹는걸.

 

예비소집 하는데 같이 가자는데 가기 싫었다.

격려해 주고, 다독여줘야 부모인데

그게 될 것 같지 않았다.

 

녀석의 아빠가 떨어지면 최종학력은 중졸이라 말해도 심각성을 모르는 놈.

시험 전날까지도 텔레비젼에 넋이 나가  그거 보고, 동생 엠피에 음악 다운 받아주느라 인터넷 뒤진다.

 

어머님이 한단계 낮은 학교에 원서 쓰지 그랬냐며 시험날 아침에 전화하셨다.

 

그럴 생각을 안 한것도 아니지만

그럴 바엔 그냥 여기 시골에서 시키지 뭐하러 도시꺼정 내보내겠나

 

녀석도 자신이 없는지 원서쓸 때 희망학교를 낮추자고, 내신이 잘 나올거라며 슬슬 눈치를 보며 얘기하건만

얄밉고 괘씸해서 안된다고 했더니 시무룩이다.

그러더니 학교 떨어지면 아빠탓이란다.

저걸 그냥, 해가면서 마구 욕을 해주고 말았다.

 

고등학교를 자기가 공부해서 자기가 가는거지

어따대고 아빠 핑게인지

결국 이넘한테 '루저'소리꺼정 나오고 말았다.

 

루저들의 특징이 항상 핑게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남 탓으로 돌리거나, 변명거리를 만들어놓는거.

실컷 놀고 노력안하고 막판에 자신없으니 나오지도 않은 결과의 잘못을 남탓으로 돌리는거

저놈은 정말 인생의 쓴맛을 봐야돼,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거 내가 부모로서 정말 할 소리인가 싶기도 하지만...정말 아들놈이 미웠다.

 

그러면서도 자식이 잘되기만을 바라는게 부모인지라, 비록 노력이 좀(조금이 아니라 많이)부족했어도, 성실성이 떨어졌어도

그래도 운이라도 따라주어서 잘되기만을 바라는것.

그게 바로 부모의 마음 아닌가.

 

발표일을 기다리며 하루하루가 피를 말리는 듯 싶다.

녀석은 시험보고 온 날, 컴 앞에 앉아 채점을 해 보더니, 왜 고친게 다틀렸지?? 하더니,

고담부터 텔레비젼 시청에 야구에 교회 성탄절 연습에 나날이 천국이다.

발표날인 오늘 아침에도 김치부침개를 어떻게 하느냐, 자기가 라면 맛있게 끓이는 방법 알고 있는데 해줄까, 물어본다.

속도 안타나...싶은게 저녀석 머릿속엔 도대체 뭐가 들었지 싶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잘될거라 생각해도, 차라리 떨어져도 녀석이 기회로 삼아 정신 차리고 열심히 공부할거라 위안을 해도

불안한 마음은 가시질 않았다.

 

고입 시험을 치르고...오늘 아침 발표결과가 나온다더니 시험 문제 하나에 논란이 생겨 발표시간을 늦춘다 했다.

희망학교 홈페이지를 뻔질나게 들락거리며 발표 결과를 기다렸는데...맥이 빠진다.

교사로 근무중인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 볼까...어쩔까 하는데 남편은 벌써 친구들한테 전화를 했다.

어쩔수 없댄다. 발표 시간까지 기다려야 한댄다.

 

내내 조마조마하더니...

남편이 쪽지를 보냈다.

'수고했다'고...'합격했다'고...

 

어??

내가 이런 인사 받음 안될거 같은데...

 

그래도 내 눈으로 확인해야지 싶어 학교 홈피에 들어갔더니, 역시, 합격이다.

그순간 긴장이 쭈욱 풀리며...내내 아들녀석한테 성질 부리고, 남편한테 성질 부린게 조금 미안해진다.

 

부모란 그런가.

자식이 잘하면 나 닮아 잘하는거고, 못하면  상대방을 닮아 못하는 거라고, 서로 비난하기 일쑤인거...

녀석이 하두 뺀질거려서 알게 모르게 남편과 신경전을 벌였었는데, 그나마 한고비는 넘긴 듯 싶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더 중요한데...

또다시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녀석, 중학교 때처럼 내둥 뺀질거리면 저꼴을 어찌보나...

이번 시험치르면서 좀 정신차렸기를 바랬는데,

 

녀석 시험 치르고 나오면서 전화를 하는데

아무래도 자긴 리더쉽이 강한것 같댄다.

4번으로 줄을 잘 세웠단다.

결국 죄 찍었다는 얘기??

내가 열받아서 방방 뛰니깐,녀석, 엄마 농담도 이해못하냐고?

 

이판국에 농담이 나오냐고 소리를 버럭 질렀는데...

민재넘, 아무래도 형은 꼴통인거 같다고 옆에서 거든다.

영재넘, 자긴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얘기하는데,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던지는 농담은 정말 꼴통이란 소리밖엔 안나온다.

영재넘, 엄마, 쟤좀 한 대 때려줘. 한다.

하긴, 좀 지나친듯 싶어 민재녀석을 혼내주긴 했지만, 오죽하면 동생마저 그러겠나 싶어 한숨만 나온다.

 

그래도 어쨌든, 녀석 합격했으니, 오늘 하루만이라도 잔소리는 말자고 다짐하건만...

성탄 연습 한다고 교회간다면서 녀석, 또 한마디 보탠다.

 

영재넘 ; 엄마, 꼴찌로 붙은 애들은 얼마나 좋을까? 자기 뒤에 떨어진 애들 스물다섯명이 있잖아.

삼생아짐 ; 일등뒤에는 몇명이 있는데??

영재넘 ; 꼴찌로 붙으나 일등으로 붙으나 붙는 건 다 똑같은 거 아냐??

 

내가 말을 말아야지...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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