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아들이 학교에서 내주는 안내장을 가져왔다. 부모님들 학교에 모이시라는 회의 통지서였다. 날짜는 보지도 않고 치워버렸다.
"못가"
아들넘, 무척 서운해하면서 도대체 왜 못가냐고, 선생님이 부모님들 꼬옥 오시라 그랬단다. 고등학교 진학에 관련된 상담도 한다면서 꼬옥 모셔오라 했단다.
"체험객와"
그랬더니 녀석,시무룩한 얼굴로 할 수 없다는 듯 선생님께 그렇게 말씀드리겠단다.
녀석의 아빠, 안내장을 보더니 며칠전서부터 녀석의 학교에 가란다.
"싫어"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왜 안가냐고 묻는다.
"쪽팔려서 안가"
알겠다는 의미인지 어쩐지, 아무 말 않는다.
학부모 회의가 있던날 아침, 녀석의 아빠, 나더러 또 학교에 가랜다.
"싫어"
도대체 왜그러냐며 조금 신경질 나는 말투다.
"아들녀석이라곤 공부하는 꼴을 봐야 진학 상담도 하지. 지가 공부를 안 하는데 부모가 진학 상담해서 뭘해."
기냥 화를 버럭 내버리고 말았다.
그랬더니 녀석아빠, 한숨을 푸욱 쉬면서 그래도 웬만하면 꼭 가랜다.
"싫어, 당신이나 가"
버럭 화를 내면서 자기 몸이 몇 개나 되냐고 따진다.
그러고보니 원주에서 종합개발 관련 회의 있다고 했던 생각이 나서 '아차' 싶었다.
어쨌든 안 갈 거라 했더니...녀석도, 녀석의 아빠도 시무룩하게 집을 나선다. 올해 중 3인 장남녀석, 중학교 들어와서부터 넘 공부를 안해서 창피하기도 하고,자존심도 상하고...하여튼 녀석 볼 때마다 속 터져서 아예 학교에 발걸음을 안 했다.
게다가 녀석을 야단치면 울 최후의 보루, 자기가 생각이 있으면 알아서 할 거라고, 또 어떤 때는 때되면 한다고 나보고 가만 놔두란다.
회의당일, 센터에서 이일 저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아들녀석과 같은 학년의 딸을 가진 동네 형님이 전화 하신다.
학교앞에서 만나잔다. 갈까말까 내내 망설이다가 정말 가기 싫은 마음으로, 억지로 학교에 갔다.
울 남편 원주에 가서도 전화했다.
어디냐고 묻길래 녀석의 학교라 그랬더니 반가운 목소리로 이쁘단다.
"에궁, 이뻐라~~~, 잘했어.정말 잘했어."
옆에서 전화하는 소리 듣고 형님이 마악 웃는다.
아니나다를까, 입시 얘기가 나왔는데 녀석이 진학하고자 하는 학교 커트라인에서 따악 턱걸이하고 있다.
내신시험은 별론데 도에서 실시하는 시험 성적은 그런대로 괜찮다.
학교 시험은 선생님들이 대개 힌트를 주곤 했는데, 프린트 챙긴적도 없고, 시험보는 날 아침꺼정 시험범위도 모르던게 한 두 번도 아닌 녀석이라 아예 포기하다시피 했는데, 그나마 쬐끔 위로가 된다.
출장가야 한다고 상담 오래 못하겠다던 담임선생님이 '아차' 하더니 다시 주저앉아서 그 많은 학부형들 앞에서 콕 찍어서 말한다.
"아참, 영재어머니, 영재는 기대보다 성적이 안 나오네요. 생각보다 잘 못해요."
이럴까봐 내가 학교에 오기 싫었는데...정말 쥐구멍이 있으면 따악 들어가고 싶다.
아마도 초등학교때 수학영재교육원을 다니고, 입학할 때도 수석으로 들어간 녀석이라 학교에서도 내심 녀석에게 기대를 했던 모양인데 녀석의 성적이 내둥 개판이니 아마도 실망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많은 부모들 앞에서 그렇게 대놓고...내 이넘을 집에 가기만 하면...하고 별렀지만...막상 엄마 학교에 왔다고 활짝 웃는 녀석 얼굴을 보니, 무슨 말부터 해야될까 싶다.
"너보다 못하던 네 친구는 내내 일등이던데 넌 왜 성적이 그럴까??"
"엄마, 걘 밤 열시까지 야자하면서 공부해요."
"그럼 넌?"
"사실 제가 공부를 안 하긴 안 했죠.그래도 그 정도면 괜찮은거 아녜요?"
"그래서?"
"걘 노력한거보다 안 나오는 거구, 전 노력한 거보다 잘 나온다는 얘기죠."
"그게 지금 엄마 앞에서 할 소리야??? 너 불성실하다는게?"
"죄송해요, 엄마~~ 그치만 걘 엄마한테 마악 대들고 그래요. 엄마가 뭐라 그러면 아, 됐어. 고만해. 됐다구~~ 그래요. 엄만 제가 공부 잘하고 그렇게 함부로 했음 좋겠어요?? "
"그걸 지금 말이라구 하냐??"
"그니깐요. 그리구 걘 집안일 같은 거 하나도 안해요. 공부만 하지.저두 오늘부터 아예 집안일 하지 말아요??"
그러면서 녀석, 엄마가 빨래 개실래요? 엄마가 소 밥 주실래요? 해가면서 끝끝내 공부하겠다는 소리가 없다.
며칠전만해도 교회 다녀오겠다며 아침에 나간 녀석이 밤 늦게 양쪽 어깨에 기타 두 개를 나란히 메고 들어왔을 때,열이 머리끝까지 뻗쳤지만 아무말 하지 않았다.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적어도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악기 하나는 있어도 좋겠다, 그렇게 애써 위로하며...기냥 참았다.
그동안 기타를 배우기시작하면서부터 컴에서 온갖 악보를 다운받아 프린트철 한 악보집이 중학교 3학년 내내 학교에서 나눠준 프린트 묶은 철보다 더 두꺼워도 녀석의 아빠가 했던 말을 생각하고, 정말 암말 안했다.
그래놓고도 녀석이 컴에다 악보를 잔뜩 다운받아 놓았길래 눈에 거슬려 보이는 족족 매번 지워버렸더니,어느날 내이름으로 된 전용 폴더안에 이딴 폴더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다.
'기타프로 엄마꺼 아니라고 막지우지 마 완전 캐 이기주의 쩌는 우리 엄마야 절때 지우지마 진짜 생각하면 완전 열받네진짜 엄마꺼는 소중하고 내꺼는 소중하지도 않냐ㅡㅡ내가 착해서 이정도로 끝난줄알어'
자그마치 글자수도 세기 어려울만큼 긴 폴더명으로 악보집을 왕창 다운받아 놓은 녀석, 것도 당당하게 내 폴더안에...그래도... 참았다. 그래, 녀석 사춘기니깐. 하긴 자기꺼 건들면 싫을 수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애써 이해하려 했다.하긴...남 패고, 애꿏은 기물 파괴하고, 남한테 피해를 주기보다 피아노 치고, 기타 치면서 노래부르는 걸로 스트레스 해소하면 건전한거지. 그렇게 생각하며... 칠만큼 치면 싫증나서 포기하고 공부하겠지...
이제 내 인내력은 드디어 도인의 경지로 들어섰겠다 싶을 정도로 참고 또 참으며 이 시대에 나처럼 잔소리 않는 엄마도 없겠다 싶은 생각도 들고, 나도 참 대단하구나 생각하며...정말 그렇게 얼음물 들이키며 참아냈다.
어쨌든 주말 내내 어디선가 시간 보내고 밤 아홉시 넘어 들어온 녀석, 내 눈치를 흘깃흘깃 보며 기타를 꺼내든다.
"친구가 20만원주고 기타랑 앰프를 새로 샀는데, 내가 가르치고 있는 중이라서 줄 새로 매주고, 튜닝해줘야 해."
그런데...뭐시라? 이젠 웬만한 코드는 다 잡을줄 아니깐 친구넘 가르쳐준다고?
기냥 한숨만 폭 나온다.
배우는 경지를 넘어서서 이제 제자양성을 하고 있다???
중3넘이?
이제 고입 시험을 쳐야하는 넘이???
"참, 가지가지 다한다. 너 치는 걸로 모자라서 이젠 친구들 지도꺼정??? 공부는 언제하냐?? 고등학교 갈 마음은 도대체 있는거냐??"
정말이지 참을만큼은 참았다고 생각하며, 그렇지만 냉정은 잃지말자고 속으로 다짐하며 녀석한테 조용히 물어보았다.
아들넘, 씨익 웃더니, "할 때 되면 다 해요."그런다.
어디선가 많이 듣던 소리다.
"이넘아~~그건 네 아빠 레퍼토리잖아??"
영재넘,아니란다. 진리란다.
에휴... 말이나 못하면...
내가 또 한숨을 푸욱 쉬자, 녀석,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준단다.자기가 연주할테니깐 나더러 노래부르란다. 정말 눈치없는 녀석, 이 판국에 나더러 노래를 부르라고??
근데 녀석, '자탄풍'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을 연주하는데 제법 그럴듯하다.
"너 땜에 엄만 아마 제명에 못 죽을거야. 참고 또 참아서..."
했더니
"엄마, 자꾸 그러면 저 음악한다구 나서요?? 아예 진로 바꿔서??"
헐~~ 이넘이 이젠 협박을???
"맘대로 해, 이넘아!!"
드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랬더니 녀석,갑자기 기타를 집어넣더니 시험공부를 하겠단다.
중간고사 때도 아닌데 웬일인가 싶어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 맘 잡았나보네 해가면서 치킨도 시켜주고, 과일도 까주고 그랬는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든다.
"시험이 언젠데??"
했더니 바로 고 담날이란다.
그니깐 주말 내내 실컷 나가 놀고, 것도 밤 아홉시 넘어 들어와서 기타갖고 주물럭거리다가 밤 열시 넘어서 시험공부를 하겠다고 그제서야 시험공부 하겠다고 책을 폈다는 얘기???
내가 황당하고 어이없어 하니깐 녀석 씨익 웃는다.
"제가 예전에 엄마가 공부에 담 쌓았냐고 하셔서 제가 벽돌 쌓고, 시멘트 부어서 콘크리트 굳히는 중이라 했잖아요.이제 담장 부술 테니깐 엄마, 마음 놓으세요."
그런다.
"믿어도 되냐??"
했더니 녀석, 씨익 웃으면서
"그럼요, 대신에 나무 심었어요. 철책도 둘렀어요."
한다.
에휴...진짜진짜 얄미운 넘...이넘을 도대체 우찌해야 할런지...이넘하고 말 섞는 내가 바보지...싶다.
도대체 대한민국의 중학생 아들넘들은 다 이모양인지, 아님 내 아들녀석만 이런건지...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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