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성장일기)

무늬만 엄마^^;;

삼생아짐 2009. 6. 21.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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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장에, 교육에, 행사에...

 

꽈악 잡힌 일정을 치르고 나서 집에 돌아왔더니

 

 

옷장에 요런 메모가 붙어 있어요.

 

 

울 큰 딸, 수향넘...

 

동생들한테 써 놓고 간 편지네요.

 

요걸 읽는 순간...한바탕 웃음이 터지면서...

순간 피로가 싸악 가셔요.

 

 

녀석...

 

대학교 가더니

 

밴드 공연과 수업과 아르바이트 등 사생활(?)로 넘 바빠서 집에 못와서...

 

조금 서운하던 참에...

 

제가 지난번에 문자를 보냈죠.

 

 

금요일은 수학과외

 

 주말은 베트남쌀국수 집에서 하루종일

 

아르바이트 뛴다더니...그날도 아르바이트 중...

 

끝나고나서 늦게야 답장이 왔어요.

 



그러더니 지난 주 정말 집에 와서 동생들을 확실하게(!) 잡아놓고 갔어요.

 

수향넘, 오자마자 ; 엄마, 민재 요즘 왜이래??

 

왜 이렇게 군기가 빠졌어??

 

민재는 숙제도 제대로 안 하고

 

영재랑 나가 놀기만 하고

 

집안 정리도 제대로 안 하고

 

공부도 밀리고...

 

삼생아짐 ; ......

 

 

제가 입이 열개라도 할 말 없죠.

 

워낙 바쁜 한달이었으니까요...

 

 

 

지난주에도 강릉 출장에 주말 내내 체험객과 마을 방문객에...

 

하여튼 일이 끊이질 않아

 

 제가 집에 있을 새가 없어 녀석들을 제대로 관리를 못 했는데...

 

 

지난주말, 늦게야 집에 왔더니 민재넘 ; 엄마, 우리 제대로된 밥상 좀 차려줘봐.

 

그러는 거예요.

 

삼생아짐 ; ??

 

민재넘 ; 형이 차려주긴 하는데, 맨날 달갈후라이에 고추장 비빔밥만 먹으니깐

 

된장찌개가 먹고 싶어.

엄마도 힘들겠지만 우리들한테도 좀 신경써줌 안될까??

 

그순간 가슴이 뜨끔...

 

 

게다가 저도 준비하고 챙기느라... 식사를 제대로 못 했던 터라

 

넘 배가 고파 밥솥을 보니 밥이 하나도 없어요.

 

삼생아짐 ; 어휴...배고파...

 

했더니 민재넘, 엄마 내가 달걀 후라이 해줄까??

 

나 형한테 배워서 이제 잘해.

 

하더라구요.

 

 

민재넘 ; 내가 달걀후라이 하는 순서 말해볼께, 잘 들어봐.

 

첫째, 후라이팬을 달군다. 기름을 넣는다. 달걀을 깨뜨린다.

 

영재넘 ; 틀렸어, 기름을 넓게 골고루 펴야지.

 

민재넘 ; 기름을 넓게 편다. 달걀을 깨뜨린다. 흰자와 노른자를 잘 봐야해. 반숙? 완숙?

 

삼생아짐 ; 아무거나...

 

민재넘 ; 완숙은 시간이 두 배로 걸려.

 

그래두 완숙하지, 뭐.

 

달걀이 한쪽만 익으면 반숙이야. 이걸 뒤집어서 다시 익히면 완숙이 돼.

 

밥을 푸고, 달걀 후라이를 얹고 초고추장을 뿌리면 비빔밥 끝.

 

영재넘 ; 틀렸어, 밥을 푼 다음에 참기름을 넣어야지.

 

그래야 밥이 골고루 잘 비벼져서 맛있어.

 

민재넘 ; 자꾸 지적받으니깐 하기싫다. 

 

 

초등학교 4학년 아들넘이 이렇게 달걀 후라이 만드는 법을 설명하면서

 

엄마인 저를 위해 요리를 해 주겠다는데...

 

이러는데...제가 어찌 녀석들을 혼내겠어요.

 

 

 

그치만 한 카리스마(?)하는 수향넘, 동생들을 보더니 답답했나봐요.

 

 

민재책을 쭈욱 열어보더니 제대로 안 푼 문제집을 한보따리 들고 나가서

 

민재넘 코앞 바닥에 타악(!) 떨기며

 

수향넘 ; 너 이거 이번 주말꺼정 다 해놔. 알았어??

 

민재넘, 아무 소리 못하고 누나가 바닥에 떨궈놓은 책을 주섬주섬 챙겨 들어오더니

 

민재넘 ; 엄마가 시켰지???

 

하면서 제누나가 들을새라 조심조심 소리 낮춰서 눈 흘기며 말해요.

 

삼생아짐(고소~~) ; 어떻게 알았어??

 

 

민재넘이 원망스런 눈으로 저를 쳐다보건 말건

 

카리스마 강한 누나가 녀석들을 잡아놓고 챙기니 제가 얼마나 든든한지...

 

 

 

밖에서 일하고 늦게 들어와도 청소 깨끗하게 되어 있구요.

 

녀석들 밥도 알아서 다 챙겨먹이니 이렇게 좋을수가 없네요.

 

녀석 가고 나서 허전하던 참인데...

 

 

이 메모 보니 녀석의 흔적이 느껴져서 반갑네요.

 



게다가 요즘 한창 비행연습 중이라 아무데나 내려앉는 제비들 피해

 

행거에 빨래 널어놓고 잊지 말고 챙기라고 당부꺼정...

 

맏딸은 살림밑천이란 말이 따악(!) 실감나는 순간이죠.

 

 

 

 

학교에서 돌아온 영재넘,

 

샤워 후 옷을 갈아입으려고 옷장 서랍을 열다가

 

이 편지를 보더니,조심조심 떼어서 다른 옷장에 가져다 고대로 붙여요.

 

삼생아짐 ; 떼었으면 버리지 왜 안 버려??

 

영재넘 ; 기냥 버림 누나한테 혼나. 누나 올 때까지 이거 잘 간수해야해.

 

삼생아짐 ; (나 원 참...) 누나가 그렇게 무섭냐??

 

영재넘 ; 말도 마, 엄마아빠 없으면 누나가 완전히 조폭마누라야.

 

어제도 밥먹고 우리 공부만 했어,

 

화장실갈려구 일어나두 누나가 마악 소리질러.

 

그리구...누나 엄마같애.

 

있잖아, 누나가 민재한테 그러는데 자기가 시집가면 민재델구 가서

 

공부시킬거라 그러구

 

누나, 아르바이트해서 돈 받으면

 

민재 원어민이 가르치는 영어학원 등록시켜서 공부 시킬거래.

 

 

수민이랑 수정이는 토잌시험 봤는데, 영어 장난 아니게 잘 한대.

 

삼생아짐 ; 걔네야 미국가서 살다왔으니깐 그렇지.

 

영재넘 ; 누나가 요즘은 영어 못하는 애들 없다구

 

다음달에 우리 방학하면 춘천 델구 나가서 원어민 학원 보낸대.

 

엄마, 우리 안 내보낼거지??

 

녀석, 근심과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

 

삼생아짐 ; 아니, 방학하자마자 보낼껀데??

 

 

영재랑 민재넘, 사색이 되어서

 

제발 내보내지 말아달라고 사정을 하네요.

 

에휴...도대체 누가 엄마인지...

 

 

울  최후의 보루, 가끔 속썩이면

 

제가 '무늬만 최후의 보루'라고 투덜거리곤 했는데

 

아무래도 전...

 

'무늬만 엄마'인 듯 싶은 생각이 자꾸 드네요...

 

 

일하는 엄마들은 다 그런가요...

 

 

바깥일도 집안일도...

 

하여튼 가끔 최선을 다해 산다고 하는데도

 

제 손길이 미처 닿지 못하는 것들이 넘 많아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그럴 때가 많네요.

 

 

그래도 수향녀석, 제 빈자리를 채워주니...

 

이렇게 무늬만 엄마인 제가

 

좀 덜 미안해도 될런지요...

 

게댜가...어쨌든 저는 '삼생마을'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 거잖아요.

 

 안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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