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엄마가 보고픈 날...

삼생아짐 2009. 2. 1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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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을 먹으려고 집으로 오는데

 

밭 한 가운데 선호할머님이 앉아 계시네요.

 

지팡이로 돌멩이를 톡톡 치시기도 하고

 

작은 돌멩이를 주워 이쪽 저쪽으로 던지기도 하시고...

 

처음엔 이른 봄나물 찾으시나 했어요.

 

삼생아짐 ; 뭐하세요??

 

선호할머님 ; 그냥 심심해서...바람이나 쐬려고...

 

삼생아짐 ; 건강은 괜찮으시죠??

 

선호할머님 ; 나야 뭐 맨날 그렇지.....살만큼 살았는데 빨리 죽지도 않고...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오네요...

 

할머님의 쓸쓸함을 잘 알기 때문이죠.

 


우리 뒷집에 90이 넘으신 할머님이 사셨는데 늘 두분이 동무하셔서 왔다갔다 하시고

 

맛있는 거 하면 서로 가져다 주시고...

 

지난 여름에도 뒷집 할머님이 아파서 거동못하고 누워 계실때

 

애호박 가져다 주신다면서 들지도 못하시는 걸 끌고 가셔서

 

영재가 들어다 드린 적 있거든요.

 

(저희 집에도 두개 내려놔 주시구요.)

 

 

뒷집 할머님댁에 수시로 드나드시면서

 

가끔 기저귀도 갈아주시고, 옷도 갈아입혀 주셨대요.

 

그 할머님이 지난 겨울에 돌아가시고

 

동무를 잃어버리셔서 이렇게 혼자 밭한가운데 쓸쓸히...

 

삼생아짐 ; 할머님 사진 한 장 찍어드릴까요??

 

했더니 다 늙은걸 찍어서 뭘해 하시면서도 활짝 웃어주시네요.

 

할머님을 뒤로 하고 집으로 오면서 문득 엄마 생각이 나대요.

 

우리 엄마도 이제 허리가 정말 많이 휘셨는데...

 

그리고 요즘 쓸쓸하신지 가끔 전화를 하시는데

 

그때마다 제가 일이 있어 한가롭게 받질 못하고...

 


지나번에 조카들과 오셨다가 마리소리골 악기박물관 공연을 보시더니

 

너무 좋았다고...

 

그런 공연은 처음 보셨다는 말씀에 놀라고 말았어요.

 

삼생아짐 ; 정말 처음봤어요??

 

저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죠.

 

울엄마 ; 내가 그런거 보러 다닐새가 있었어야지...

 

 

 

정말 그랬네요.

 

종가집 맏며느리로 시집오셔서 우리들 4남매 길러내랴

 

집안 대소사 챙기시랴...평생 손끝에 물 마를새 없으셨어요.

 

우리들 학교 다닐 때 따뜻한 밥 먹인다고

 

고등학교 3년내내 따뜻한 저녁밥 지어서 학교까지 가져다 주시고

 

밤 12시에 집에오는 우리들을 위해 단 한번도 먼저 주무시지 않고...

 

새벽 네시에 일어나 새벽밥 지어주시고...

 

왜 시집오기 전에 엄마랑 연극 공연 한번, 음악회 한 번 같이 가 볼 생각을 못했을까요.

 

 

그러고보면 저는 참 나쁜 딸이었네요.

 

기껏 키워놓자마자 엄마에게  효도도 못하고 얼릉 시집와 버리고...

 

 

 

농촌으로 시집오겠다는 저를 말리고 말리시다

 

결국에 제고집 못 꺾어 서운해하셨으면서도

 

결혼초 아이땜에 힘들어하자 저희 집에 오셔서 아이도 다 봐주시고

 

살림정리도 다 해주시고...

 

외손주를 이뻐하느니 방앗공이를 괴랬다면서

 

딸네집에 드나드는걸 흉으로 여기시는 아버지의 눈치를 보시면서

 

바쁜 농사철 돌아오면 안절부절 못하셨던 울엄마...

 

 

잔뜩 휘어져버린 어머니의 등을 보면

 

우리들 4남매 때문에 저렇게 되셨지 싶어 가슴이 아파요...

 

그런데도 저는 살기에 바빠 어머니를 제대로 못 챙겨드렸죠.

 

 

요즘도 무릎과 손가락관절과 허리가 아파

 

힘들어 하시는데...

 

옆에서 모시는 동생네 내외에게만 맡겨버리고...

 

넘 무심했지 싶어요...

 

 

지난 여름, 찰옥수수 축제때

 

우리마을 판매대에 오셔서

 

부모님이 찰옥수수 좋아하신다고 선물하시는 자제분들이

 

참 많았어요.

 

그때에도 제가 반성하곤 했는데...

 

 

이제 마을에 고로쇠가 나온다 소리를 들으니깐

 

그리고 그 고로쇠가 뼈에 좋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양가 어머님들께 보내드려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부끄럽지만...저도 모처럼 효도 한 번 해봐야지 싶네요.

 

그리고 다음에 춘천에 나가면...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랑 음악회나 영화를 보러 가야겠어요.

 

우리 엄마도 그런거 즐기실줄 아는 분이신데 말예요.....

 

 

......

 

그나저나 울엄마, 요즘 인터넷 하시니까 이거 보면 그러실거예요.

 

"전화나 자주해라. 손가락이 부러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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