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에는 다들 자기 생활들이 있어 바쁘게 살다가
온식구들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하게되는 주말오후쯤 되면 녀석들 식단을 궁금해하죠.
영재랑 민재넘 ; 엄마, 오늘 저녁 메뉴는 뭐예요?? 삼생아짐 ; 응,'주는대로 먹자'야. (놀고있네, 우리집이 식당인줄 아남?? )
실망한 녀석들, 마땅한 메뉴가 나오지 않음 외식하자고 조르기도 하구요...
그래서 저도 되도록이면 닭볶음을 한다든가,
감자탕을 한다든가
아님 돼지고기 모듬구이를 한다든가...
나름대로 신경을 쓰는 편인데...
이번 주말에는 제가 좀 피곤해서 있는대로 먹기로 했어요.
육촌 형님쯤 되는 학기네 집에서
집에서 두부를 만들었다면서 먹으라고 두 모 보내주시고... 해마다 오이끝난 비닐하우스에 시금치를 재배하는
김영화어르신댁에서 맛보라며 보내주시곤 하셨는데
올해에도 영재편에 어김없이 한박스 정도 되게 보내주셨네요.
(알고보니...이거 민재 사교력이 발휘된 거더군요.
어르신이 하우스에서 농사일 하시면 민재녀석 지나다니다가 큰 소리로 인사하고...
재배작물에 관심을 보이면서 시금치 아주아주 좋아한다고...)
사실, 녀석이 시금치, 근대, 아욱, 비타민 같은 나물 종류를 무척 좋아하긴 해요.
그래서인지 아주머님께서 시금치 수확하실 때마다 한박스정도 되게 보내주셔요.
그래서... 시금치 무침과 콩나물 무침
그리고 두부구이로 식단을 짰지요.
조금 소박하긴 하지만...
그래도 맘 내키면 여러 재료 넣고 비빔밥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우리 농산물로 만든 건강한 식단이잖아요.
근데 수향녀석 : 엄마, 뭐야 이거?? 이거 완전 제사상이잖아??
영재녀석 ; 그러게말야. 시금치, 두부, 콩나물...너무했다.
그러고보니...제사상에 오르는 메뉴와 거의 흡사...
근데 이넘들이 요즘같이 힘든 때...
반찬투정 하나 싶어 열이 슬며시~~ 받는 거 있죠?? 삼생아짐 ; 느그들 지금 반찬투정 했냐???
기냥 주는대로 먹어!!!
녀석들이 그새 우리집 가훈을 잊어버렸나 봐요.
요즘은 제가 좀 바빠서 바뀌긴 했지만요.
"알아서 찾아먹자!!!"
녀석들, 제가 조금 화난 듯 싶으니깐 눈치 실실 보더니 암말없이 먹대요.
요기서 한마디 더 했다간 삼생아짐 ; 먹기싫음 먹지말어!!
할 게 뻔하니깐요.
거기서 조금 더 나가 지금 지구상에 먹을 게 없어
굶주리는 어린이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
지금은 식량위기다, 환경오염으로 물이랑 식량이랑 부족하다,
북한 주민들은 지금도 굶주리고 있다...
엄마, 아빠 힘들게 농사지어 너희들 먹여 살리느라 등뼈가 휜다...
기타 등등 일장연설을 늘어놓고 용돈 파악(!) 끊어버린다는 거 아니깐 조용히 먹대요.
그 와중에 민재녀석 : 엄마, 엄마 음식 솜씨가 좋은 거예요??
아님 제가 시금치를 좋아해서 그런가요??
시금치 나물이 넘 맛있어요.
해가면서 생글생글 웃으며 열심히 먹구요... (하여튼 녀석, 아부하는 데는 아무도 못 따라가요...) 얼릉 카메라 가져다가 사진도 찍어주네요.
반찬 투정하다 민재의 하는 양을 지켜보던 큰넘들은
숟가락 물고 벙~~ 떠서 쳐다보구요...
민재녀석, 얌얌팍팍 얼마나 맛나게 먹는지
쬐끔 틀어졌던 제 기분도 스르르 풀어지네요.
민재넘 ; 엄마, 내일 아침에도 이렇게 맛난 시금치반찬 해주실거죠??
전 이세상에서 엄마가 해주신 요리가 제일 맛있어요.
엄만 얼굴도 이쁘고 음식 솜씨도 좋은 일류 요리사예요.
근데 엄만 언제부터 이렇게 요리를 잘 하셨어요???
이 세상에서 엄마처럼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거예요.
전 엄마가 해주시는 요리는 아무거나 다 잘 먹을 수 있어요.
엄마의 사랑이 담긴 거잖아요.
이쯤되면...저도 좀 거북스럽기 시작한데...
수향이랑 영재넘 ; 그러셔?? 엄마가 해 주시는 거 아무거나 다 잘먹을 수 있으셔??? 하더니 두 넘, 밥그릇에서 검정콩을 골라 몽땅 민재 밥그릇에 수북이...
민재넘, 조잘조잘 떠들다가 검정콩으로 새까맣게 덮인
자기 밥그릇 보더니 한숨을 푸욱...
민재 ; 형이랑 누나는 왜 엄마가 해 주시는 콩밥을 안 먹지??
난 잘 먹을 수 있는데...
근데 표정은 여엉 잘 먹을 수 있는 표정이 아니네요.
민재넘; (곰곰 생각하더니) 근데 엄마, 이 콩 조금만 가져가시면 안될까요??
좀... 많네요.
수향이랑 영재넘, 밥상앞에서 앗싸하구...하이파이브하구요...
저도모르게 민재의 어쩔줄 모르는 표정을 보고... 그만 푸하핫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네요.
민재넘, 시커먼 콩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민재 ; 엄마, 누가 그러는데요...검정콩 많이 먹으면 머리가 까매진대요.
삼생아짐 ; ??
영재넘 ; 그러셔?? 그럼 완두콩 먹으면 머리가 파래지겠네??
수향넘 ; 강낭콩 먹으면 머리가 빨개지냐??
민재넘 ;......
수향이랑 영재넘, 동시에 ; 메주콩 먹으면 머리 노래지구??
염색약 필요없겠다, 그치??
민재랑 삼생아짐 ; 헐~~
녀석들, 도대체 누굴닮아 이렇게 말빨이 센지...
......
삼생아짐 ; 하여튼 동생 기죽이는덴 일가견들 있어.쯧쯧...
질색하는 큰넘들 밥그릇에 검정콩 도로 돌려주고
울 민재 머리 쓰다듬어 줬네요.
큰녀석들, 민재만 이뻐한다고 투덜거려도...
아직은 엄마말을 가장 잘 듣고 엄마생각을 제일 많이 해주니 관심과 배려가 더 갈 밖에요...
그나저나 민재녀석, 검정콩 많이 먹으면 머리카락 까매진다는 생각을
어찌 해냈는지...
날로날로 느는 하얀 머리카락에 차라리 백발로 염색한다 했더니
그 소리가 그렇게 듣기 싫었는지...
어쨌든 늦동이 울 막내덕에 마음대로 늙지도 못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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