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누나랑 형이 일주일치 용돈을 몽땅 털어 둘다 엄마 생일선물을 구입...
(큰넘은 육천원을 쓰고...조금 미안한지 2천원어치 쥬스 세병을 추가 구입...
둘째넘은 2천원짜리 빅파이 한통)
엄마에게 내미는 걸 보고...녀석...
뽀뽀와 노래만으로 때워넘긴 엄마 생일이 맘에 걸렸는지...
며칠이 지난 뒤 퇴근하는 제게
A4용지 두장을 위아래로 맞덮어서 싼
뭔가를 내미네요.
민재넘 ; 엄마, 생일날 제가 선물도 못 드리고...죄송해요.
서운하셨죠??
제가 용돈 모아서 이거 장만했어요.
열어보니 분홍색 머리띠 하나와
역시나...A4용지에 쓴 편지 한 장...
이 두개의 선물을 보는 순간 저도모르게 폭소가 푸하하......
분홍색머리띠도 머리띠려니와...
삼생아짐(속으로) : 내 나이에 분홍색 머리띠를???
매일매일 극구 부인하면서도 붙어다니는
자기 여자친구=지현이한테 주면 딱 맞을 수준...
게다가 이 편지를 읽다보니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구절들...
바로 며칠전 제누나인 수향넘이 내게 쓴 편지를 급조...
시작부분의 노랫말꺼정...
게다가 막내가 열살이잖아요=내가 열살이잖아요.
아줌마=국민주부
편지 옆에 듬성듬성 그려댄 하트꺼정...
참, 기분 묘하대요...
처음 받아든 순간 마악 웃음을 터뜨렸지만
이넘이 요즘 슬슬 매사에 요령을 피운다 싶기도 하고...
지적재산 침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난 번 제 형 어릴 때 쓴 일기장 베끼기부텀
일기장에 동시 베껴쓰기...(창작에 지쳤는지...)
오늘 이 편지는 누나의 편지 컨닝...
아무래도 이녀석, 한 번 짚어줘야겠다는 생각이 슬슬...
남의 글 베끼는 것도 일종의 도둑질이잖아요.
아무리 모방은 창작의 원천이라지만
어린 나이에 남의 것 마구 생각없이 베껴쓰고
그것에 대한 아무런 반성이 없다면
정말 잘못하는 거거든요.
제가 민재넘을 가만히 바라보자...
민재넘 ; (얼굴 빨개지며) 엄마, 내가 너무 성의가 없었지??
엄마가 생각보다 일찍 오시는 바람에...
삼생아짐 ; 아니야, 엄만 이것만으로 행복해. 근데.. 그것보다...민재야.
엄마는 누나것을 따라하는 것보다 민재의
생각이나 마음을 써주는 게 더 좋아.
그리고...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똑같이 따라해서 자기이름으로 하거나
비슷하게 고치는 것도 일종의 도둑질이야.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만 도둑질이 아니라...
네 친구가 네가 쓴 글짓기를 비슷하게 고쳐서
자기 이름으로 해서 자기가 쓴 거라 우기고 상받음...그럼 너 좋아??
민재녀석, 얼굴 빨개지며...고개를 푸욱...
옳고 그름을 짚어주는 건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의 역할이지만
나름대로 생일선물을 마련하고 편지꺼정 써서
주는 어린아들에게 고맙다는 말보다
잘못된 점을 짚어줘야하는 어미의 마음은...조금 아리네요.
그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던 울 딸 : 엄마, 민재가 컨닝한 거 아녜요.
민재는 제걸 조금 참고한 거 뿐예요.
그러자 민재녀석, 얼굴 다시 환해지네요.
저도 민재 꼬옥 끌어안아주고...
분홍색 머리띠 정말 맘에 든다고 했더니
녀석, 활짝 웃으며
민재넘 ; 엄마, 그거 가게에서 두번째로 좋은거야.
첫번째로 좋은 것은 2천원인데 그건 색깔이 별루였고
두번째로 좋은 것은 천오백원인데
엄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내가 이거 샀어.
삼생아짐 ; 돈이 천오백원 밖에 없었어??
민재넘 ; 아니, 이천원.
삼생아짐 ; 그럼 오백원은??
민재넘 ; 아츠크림...... 사먹었어...
다시 고개숙이며 머뭇머뭇... 얼굴 빨개지는 녀석...
어쩜 어린아이들은 이렇게 마음이 표정에 금방 나타날까요...
좋고, 싫고, 부끄럽고, 그리고...죄책감, 사랑, 행복...
조금씩 거짓말을 배워가고
조금씩 세상 쉽게 사는 요령도 배워가는 녀석을 보면서..
언제까지나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만 살아가라고 요구하는 것은 부모의 욕심이겠지요??
어린아이의 순수함 그대로 살아가다보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속고, 당하고, 그리고 아픈 기억들을 갖게 될런지...
그래서 어쩌면 조금쯤은 거짓말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조금쯤은 냉정한 마음도 갖고
또 조금쯤은...이기적인게 세상살이에서 덜 상처받는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약게 살아갔으면 하는 다른 한편의 마음 또한 부모의 욕심이겠지요??
세상살이를 앞둔 자식을 바라보며
옳고 그름의 기준을 세워주는 부모의 잣대가 이렇게 이중적이라는게
제가 생각해도...참 서글프네요.
그나저나 이녀석, 저를 볼 때마다 이 분홍색 머리띠 꽂아주며
제가 안 쓰고 있으면 금방 서운한 표정 짓는데...
미치겠네요, 정말.
마로니 인형도 아니고...
일곱살 소녀도 아니고...
마흔이 훌쩍 넘은 이 나이에 분홍머리띠라니...
그래도 민재녀석 볼 때면 얼릉 머리에 쓴답니다.
울 최후의 보루 볼 때면 얼릉 다시 벗구요...
썼다 벗었다 썼다 벗었다...참...바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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