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아이때는 조금만 열이나도 춘천에 있는 종합병원으로 달려가기 바빴는데...
(부모님들이 병원멀다고 제때제때 애 치료 안 함 안된다고 성화를 부리셔서...)
그래서 첫아이때는 병원입원기록이 꽤 많아요.
둘째아이부터는 쬐끔 요령이 생겨 웬만한 감기쯤은
기냥 '참으라'하죠.
약으로 감기기운을 잠재우기보다
평상시에 체력을 기르고,
그리고 감기가 왔을 땐 잘 쉬고 잘 먹음 낫는다는 걸 경험으로 알았거든요.
다행이도 이 셋째녀석, 일년에 병원에는 한 두번 갈까말까인데...
평상시에 자기 스스로 꾸준히 운동을 하고
이것저것 가리는 거 없이
'주는대로 먹자'라는 가훈에 길이 들어
아무거나 잘 먹어서 웬만한 감기쯤은 거뜬히 이겨내길래 병원에 안 갔었죠.
어느날...
학교에서 보건선생님이 전화를 주셨어요.
민재가 많이 아픈 거 같으니 병원에 데려가라고...
전화를 바꿔달래서 참을 수 없겠냐고 물었더니 도저히 못 참겠대요.
너무 힘이 들고 아프다고...
예전에 아프다 그래서 델구와서 보건소 갔더니 말짱하대요.
주사맞자 그랬더니 안맞겠다 그러더라구요.
운동기구에서 노는 폼이 전혀 아픈 거 같지 않아서 도로 학교에 가라 그랬더니 싫다고...
꾀병임에 분명했지만 모르는 척 그냥 하루 쉬게 해줬죠.
아무래도 이래서 막내들은 버릇이 나빠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거 성실성에 대단한 지장을 주는 일 아닐까...
버릇되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그래도 하루쯤은 괜찮겠다 싶어서
그냥 하루 쉬게 한 적 있거든요.
제가 근무하는 센터에서 책도 보고, 과일도 먹고, 소파에서 잠도 자고....
그렇게 놀다가 피아노 학원에는 가더라구요.
돈 버리면 아깝다고...
(한달에 내는 레슨비 일별로 나누어보고, 하루에 얼마쯤이다 계산하는 넘...)
어쨌든...이녀석 또 꾀병부리는 거 아닌가 싶어 이것저것 물어봤죠.
삼생아짐 ; 너 숙제 안해갔냐??
그랬더니 다 해가서 칭찬 듣고 스티커도 받았대요.
스티커 백장 모으면 선생님이랑 데이트하는데 이제 자긴 조금 남았대요.
자기가 일등으로 모았다고...
녀석이 지난 번에 효행록 못 찾아서 못 써갈 때
녀석, 찾다찾다 못 찾으니깐
학교 하루만 빠짐 안되겠냐고 저한테 애원한 적 있거든요.
(나중에 알고보니 선생님이 상주려고 안 돌려준 거였는데...)
삼생아짐 ; 그럼 병원가서 주사맞을래??
그랬더니 선뜻 맞겠다네요.
그럼 정말 아픈거 맞는 거 같다는 생각이 조금...들대요.
어쨌든 옷도 못 갈아입고 울 수향이가 젤 싫어하는
꽃무늬 단풍나무치마 차림으로 달려갔더니
교문앞에 나와서 길가에 힘없이 앉아 있어요.
그런데 저를 보자마자 활짝 웃는데
아침인데도 온 몸이 식은 땀 투성이...
머릿속꺼정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어요.
아마 열이 많이 났었나봐요.
삼생아짐 ; 야, 운동장 달리기 실컷하고 선생님한테 가서 열난다 그런거 아냐??
민재넘 ; 엄마!! 정말 아팠단 말이야.
배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토할 것 같았다구!!!
녀석, 억울하다구 방방 뛰네요.
근데 목소리가 쌩쌩...
아무래도 꾀병의 냄새가...
당장 주사맞으러 가자, 그랬더니 고개를 끄덕끄덕...
근데 엄마 얼굴을 보니깐 아픈게 조금 사라진거 같대요.
그럼 집에가서 조금 쉬었다 정 아프면 병원가자 그랬더니
녀석의 얼굴이 활짝 펴요.
집에 오자마자 이불 펴고 누우라 그랬더니
녀석이 좋아하는 만화책이랑 게임기랑 군것질거리랑 잔뜩 챙겨들고
리모콘 딱 끼고 누워 텔레비젼 보는데...
아무래도 또 속은 느낌이...
삼생아짐 ; 야, 텔레비젼이랑 컴퓨터 게임 금지야!!
잠만 자, 알았어??
녀석, 억울하다는 표정 짓더니 조금 있다 보니 잠이 들었네요.
곤히 잠든 녀석의 체온을 재어보니 정말 열이 38도가 넘어요.
근데 어떻게 제가 데릴러 갔을 때 멀쩡해 보였는지...
정말 꾀병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한숨 자고 난 녀석, 반찬도 없이 제가 비벼준 매운 열무김치 비빔밥을 맛나게 먹으면서
민재넘 ; 엄마, 난 엄마만 보면 안 아파.
그리고 우리집 냄새만 맡으면 아프던게 싹 사라져.
삼생아짐 ; 그러냐?? 근데 오늘 학교에서 폭찹이랑 요쿠르트랑 맛난 거 많이 주던데
아깝지 않냐??
지금이라도 데려다줄께 학교 다시 갈래??
아침에 냉장고에 붙은 급식 메뉴 보면서 폭찹 먹는다고 좋아했거든요.
민재넘 ; 아니, 난 엄마가 해 준 음식이 이세상에서 젤 맛있어.
엄만 우리나라 일등 요리사야.
서울로 보내도 돼.
아니 세계에서 최고의 으뜸 요리사야.
얼굴도 이쁘고.
삼생아짐 ;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걸??
민재넘 ; 그런 사람 있음 내가 쫓아가서 혼내줄거야.
주먹으로 이렇게 얼굴을 퍽!!!
갖가지 아부란 아부는 다 늘어놓고, 밥 한그릇 맛나게 뚝딱 다 먹고...
다시 들어가서 리모콘끼고 텔레비젼 딱 켜고 눕는데...
정말 정말 꾀병 냄새가 역력해요.
맘속으로 저걸 기냥 내버려둬야하나, 지금이라도 다시 학교로 보내야하나...
하여튼 무지 갈등 생기더라구요.
근데...
지난 번 운동회때 저랑 울 최후의 보루가 일이 생기는 바람에
부모님과 포크댄스 추는 시간에
녀석 혼자 추게 한 죄책감이랑...
다른 애들 다 부모님 손 붙잡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제가 점심도 같이 못 먹어주고...)
반도 못먹은 노란색 찬합 도시락 하나 달랑 들고 교문앞에서 양눈에 눈물이 글썽해서
엄마, 아빠 혼자 기다렸다던 모습 떠올리니깐...
마음이 스르르 약해져서......
그래, 이번 한 번만 더 봐주자.
녀석이 꾀병을 부리고 싶었다면 부리고 싶은 이유가 있었겠지...싶어서
기냥 눈 딱 감기로 했어요.
하지만 부모로서 한마디는 짚어주고 넘어가야겠다 싶어서...
삼생아짐 ; 김민재, 앞으로는 아무리 많이 아프더라도 참는 연습을 좀 해봐.
살다보면 아프고 힘든 일 많을텐데
그때마다 눕거나 쓰러지면 다른 사람에겐 물론 자기자신한테도 지는거야.
지금도 네 친구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걸??
민재넘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도) ; 정말 아팠는데...
혼잣소리 해요.
저녁에 집에 온 수향이랑 영재넘 ; 민재 오늘 뭐했어?
다들 물어보니깐 민재가 아무 말 안해요.
삼생아짐 ; 아파서 일교시도 안 하고 조퇴했어.
수향넘 ; 쌩쌩한데?? 하나도 안 아파보이는데??
민재넘 ; (얼굴 빨개지며) ...정말 아팠는데...
수향이랑 영재넘 씨익 웃더니 ; 엄마, 우리도 학교에서 마악 아파서 못 참겠는데
이상하게 집에만 오면 하나도 안 아픈 적 있어.
아마 민재도 그런걸거야.
삼생아짐 ; 그래?? 그런가??
생각해보니 저도 어릴 때 그랬던 거 같은 기억이...
그제서야 민재녀석, 얼굴 활짝 펴지며
제 형이랑 레슬링하고 누나랑 토닥거리며 신나게 노네요.
아마 녀석도 저처럼 환절기에 몸살기가 좀 있었겠지요.
쉬고 싶기도 했을테고...
어쨌든 제 옆에서 실컷 쉬고
제가 세끼 꼬박 챙겨주는 밥 먹고
고담날부터 다시 씩씩하게 학교에 다녀요.
하긴 어른들도 살다보면...마악 꾀병부리고 싶을 때 있지요.
어찌생각하면...그건 관심을 가져 달라는 표현일수도 있고..
아님 정말로 사는데 조금 지쳤거나...
그때는 몸이 아픈게 아니라 마음이 아픈거라는 생각드네요.
사람의 몸이 아픈건 약으로 치료하지만(치료가 아니라 병기운 억제지만...)
마음이 아픈데 치료하는건...
오로지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마음이 아플땐...기냥 참지 마세요.
가까운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어보이고...
그리고
그 누군가가 내게 아프다고 말하면...같이 아파해 줄 수 있는 마음...
그 마음들이 만난다면 세상살이가 좀 덜 외롭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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