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펜을 사러 서석면내에 내려갔다가 울 딸을 우연히 만났지요.
수향넘 ; 엄마아~~~~
언제나 저만 보면 반갑다고 멀리서부터 큰소리 지르고 쪼르르~~ 달려오는 넘.
덩치는 커다란 넘이...
삼생아짐 ; (마침 잘만났다. 차에서 내리기 싫은차에...ㅎㅎ)
야, 볼펜 좀 사와라. 열자루!!!
수향넘 ; 넵!!!
근데 잔돈이 없어 만원짜리를 줬더니 이녀석이 오천원을 쓱싹!!
삼생아짐 ; 야, 좋은 말 할 때 얼릉 내놔.
수향넘 ; 시렁~~ 심부름값!!
삼생아짐 ; 얼릉 가져오라니깐. 너 밥값에, 보충수업비에, 원서값에 허리가 휜다.
좋은 말 할 때 얼릉 안 내놔??
수향넘 ; 시렁~~~ 한 번 줬음 그만이징~~~
이녀석이 기어이 돈을 들고 학교로 줄행랑~~
것도 내 눈앞에서 천원짜리 다섯장을 살랑살랑 흔들면서...살살 약을...
삼생아짐 ; 좋아. 누가 이기나 함 해보자 이거지??
그래서 다짜고짜 차 경적을 빠앙~~~~ 1분간......
옆에서 구경하던 수향넘 친구들 실실 웃으며 누가 이기나 지켜보더니...
차 경적소리에 깜짝 놀래서 수향넘이랑 저랑 번갈아 쳐다보다가...
어이없는 듯 잠시 멍하더니...
쫌있다
배꼽쥐고 뒤집어지게 웃네요.
기겁한 수향녀석, 얼릉 도로 달려와서
수향넘 : 어휴, 내가 엄마같이 무식한 아줌만 첨봤어.
내가 졌다, 졌어.
어휴, 챙피해.
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오천원을 반납.
드디어 쟁취했지요.
사실 제가 오천원 줄라 그랬는데, 녀석이 먼저 쓱싹하는 바람에
괘씸죄가 적용돼서 끝꺼정 탈환.
왜 사람들 그런 심보 있잖아요, 청소할려고 맘 먹었는데
누가 "야, 청소해!!" 하면 마악 하기 싫어지는거.
저도 첨엔 줄라 그랬는데 이녀석이 혓바닥 내밀며 주머니에 쓱싹 넣으니깐...
심술보가 발동...
버릇 될까봐 끝꺼정 받아냈잖아요.
근데요...
저녁에 현금지급기 앞에서 통장정리를 하는데...
이녀석을 또 만났어요.
반아이들 수학여행비를 걷어서 이녀석이 관리하는데...
저녁시간에 돈 잃어버릴까 싶어 입금하러 왔더라구요.
뭐라도 사줄까...그랬는데
이녀석이 대뜸 제 얼굴을 보자마자 ; 엄마, 맛난 거 사주라, 응??
돈 좀 쓰지, 박호순??
에휴...
갑자기 사주고픈 맘이 싸악~~ 사라지니...이 무슨 조화일까요??
삼생아짐 ; 밥 금방 먹구 또 무슨 군것질이야??
저녁에 군것질함 살쪄, 배부르면 졸려서 공부도 안되구. 참어!!
수향넘 ; 치이~~
그러더니 어디론가 사라져서 학교로 들어간 줄 알았죠.
뭐라도 사줄걸 잘못했다 싶은게 조금씩 후회스러워지는데...
누군가 뒤에서 제가 사용하고 있는 현금지급기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귤주스를 슬며시...들이미네요.
수향넘 ; 엄마, 먹고싶지?? 줄까, 말까??
삼생아짐 ; 음...음...
수향넘 ; 엄마, 목마를텐데 이거 마셔.
엄마, 오렌지쥬스 좋아하잖아.
하더니 제 손에 꼬옥 쥐어주네요.
(제가 올해들어 체력이 딸리는지...몸살이 종종 나는데...
그때마다 아무것도 못 먹고 눕곤하는데
막 열이나고 앓다가도 이상하게도 오렌지 쥬스 세 잔만 마시면...
기운이 차려지더라구요.)
갑자기 가슴이 찡해오며... 마악 미안해지려는데...
수향넘; 엄마, 미안하지?? 그치?? 미안하잖아. 안그래??
삼생아짐 ; 이넘이...
미안하려 했던 마음이 도로 싸악~~
그래서 돌아서서 열심히 입금하는 척...했는데...
녀석, 키득키득 웃으며 놀려대더니...
제가 입금 마저끝내고 돌아보니 어느새 사라졌어요.
오늘아침...
녀석의 열아홉번째 생일이라...
미역국 올려놓고 잠시 컴 앞에 앉았는데, 문자가 뾰로롱~~깜빡깜빡...
아마 지난 밤에 자기전에 써놓았나봐요.
민재 아이디로 로긴해서...
(이녀석 아이디는 제 아빠가 쓰는 바람에...)
낳아줘서 고맙다고...
속썩여서 미안하다고...
작년 내 생일날 미역국 못 끓여줘서 미안하다고...
기냥 가슴이 짜안해지며...마악 감동이 밀려오는데...
녀석이 말 끝에 기어이 또 한마디를...
허벅지 굵다고 놀리더니 이젠 이따시만한 자기 낳느라 애써서 똥배나왔다고...
평소에 민재넘 저만 보면 곧잘 부르는
'엄만 너무 예뻐요...어쩌구 저쩌구...엄마예찬송' 닭살 돋는다고 질겁을 하더니...
'사랑의 세레나데'라고 표현......
그래도 민재, 영재 두노마보다 엄마를 더 사랑한다는 녀석의 이런 편지를 받으니
진짜진짜
눈물이 핑돌며...
저도 모르게 가슴이...울컥...
전날 늦게꺼정 공부하다가...핸폰 모닝콜 울려놓고 아침에 힘겹게 일어난 녀석...
머리감고 옆으로 오더니...씨익 웃으며...
수향넘 ; 엄마, 미안하지???
그치???
안 미안해?? 미안하잖아. 솔직히 말해봐, 정말 미안하지??
재우쳐 묻는 바람에...제가 그만 백기를 들고 말았지요.
삼생아짐 ; 그래, 이넘아. 미안하다, 미안해!!!
정말 미안하다, 이넘아.
근데요...
뭐라 그래야 하나요...
정말 미안하기도 하고, 농촌 경제 어렵다고 딸녀석한테 절약을 강조하며
쓸데없는 돈 쓰지 말자고...
밖에서 만난 녀석...오천원도 선뜻 주지 못한 옹졸함...
아이스크림도 선뜻 사주지 못한...인색함...
비록 심술도 좀 섞이긴 했지만...사실...제가 요즘 지나치게...
위기의식을 느끼는 듯 싶어요.
그래도 녀석은 민재를 서석에서 만나면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솜사탕도 사주고...
쫄병스낵 과자도 사주고...
일주일에 만원받는 용돈으로 어린 막내 동생한테 누나노릇 하는데...
엄마인 저는 오로지 절약, 절약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정말 미안하다는 생각드네요.
넉넉하지 못한 엄마라서요...
그래도 수향이, 영재, 민재 우리 아이들...사랑하는 마음...
그건 이세상 어느누구보다 젤 클거예요.
정말 정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