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똑바로 봐, 나 니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 아냐, 생각해봤어, 대단한 최은서한테 대단한 게 뭘까?
우습게도 돈이더라고,
아, 그거라면 나도 자신 있는데 말이야, 난 뭐하러 그 먼 길을 돌아온 걸까?
사랑? 웃기지 마, 이젠 돈으로 사겠어, 돈으로 사면 될거 아냐?
얼마면 될까? 얼마면 되겠냐?
ㅡ 얼마나 줄 수 있는데요? 나, 돈 필요해요, 돈, 정말 필요해요. 얼마나 줄 수 있는데요?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지금까지도 가끔 인용되거나 패러디 소재에 가끔 등장하곤 하는 가을동화의 대사입니다.
주인공 은서(송혜교분)를 향한 태석(원빈분)의 안타까운 외침이었죠.
그런 태석을 향한 은서의 넋두리 비슷한 원망, 그리고 병든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지 못하는 아픔들...
대한민국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 멀게는 동남아까지 떠들썩하게 했던 가을동화의 촬영지.
속초에 가면 꼭 들러보아야 할 곳이 몇 군데 있는데 그중의 한 곳이 바로 가을동화의 촬영지로 유명한 아바이마을입니다.
늘 차를 타고 지나다니며 다리 아래로 무심히 보았던 곳, 아바이마을.
함경도 일대의 피난민들이 1.4 후퇴 때 피난 내려와 움집을 파고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자 임시로 판자집을 짓고, 또 한가족이 늘 때마다 판잣집을 덧대어 붙여 피란민 촌락을 이루었던 곳, 바로 지금의 청학동이죠.
잠시 전쟁의 화를 피해 보고자 가족과 떨어져 홀로 내려왔던 피난민 중에서도 할아버지들이 많아 그들을 함경도 말로 '아바이'라고 부르고 그 함경도 사투리를 따서 '아바이마을'로 불리게 된 곳이죠.
아바이 마을을 속초 중앙시장을 사이에 두고 작은 바다를 건너야만 하는데 이 바다를 건네주는 배가 우리나라 유일의 무인 동력선 갯배입니다. 왕복 4백 원이면 작은 바다를 건너 속초와 아바이 마을을 오갈 수 있습니다.
가을동화에서 주인공들의 엇갈리는 안타까운 장면으로도 유명했던 갯배.
이 갯배는 배를 타고 건너는 승객들과 함께 끌어주어야만 하는데, 제가 타던 날은 아주 어린 꼬마 하나가 '아바이'와 함께 봉사했죠. 줄을 잡고 신나게, 열심히 이쪽에서 저쪽으로 끌어주는 꼬마 덕분에 유쾌하게 바다를 건넜습니다. ㅎ
요금은 아주 저렴합니다.
워낙에 건너는 거리가 짧기도 하거니와 전국에서 유일한 무동력선이기에 가능한 것이겠죠?
아바이 마을을 가로지는 다리는 남과 북을 형상화 하고 있는 상징적인 다리입니다.
빨간색은 설악대교, 파란색은 금강대교로서 바로 우리나라 태극기의 태극 색깔을 상징하고 있는데, 남북통일을 바라는 아바이 마을 실향민들의 염원을 담은 다리라 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이 두 개의 다리를 일컬어 '통일대교'라 부른다고 합니다.
늘 무심히 지나쳤던 다리에 담긴 의미를 알고 나니,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다리 아래에는 고향을 그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벽화와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박한 소망.
그리고 함경도의 민속놀이인 북청사자놀음을 상징하는 북청사자 조각이 세워져 있습니다.
고향을 버리고 피난 오던 때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있고요.
갓 피난을 와 어렵고 힘들게 생계를 이어가던 때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있습니다.
지금도 준서는 은서를 향한 그리움을 끝없이 담아내고 있네요.
벽화가 그려진 다닥다닥 집들이 붙은 좁은 골목길을 걸어나가면 비슷비슷한 모습들의 먹을거리촌이 이어집니다.
옛 함경도 사람들의 손맛을 담은 함흥냉면과
오징어에 속을 채워 동그랑땡처럼 불판에 지져내는 오징어순대.
그리고 속초의 맛을 담은 새우 튀김과 오징어 튀김, 막걸리 등을 거의 모든 집들에서 팔고 있습니다.
모 예능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덕인지 집집마다 발 디딜 틈도 없이 많은 사람들로 꽉 찼습니다.
추억의 불량식품(?).
제가 어릴 적 즐겨 먹었던 쫀드기와 캬라멜, 그리고 갖고 놀았던 종이 딱지와 계급장 등 어릴 적 놀잇거리들이 가득한 미니슈퍼. 이곳도 모 연예인이 다녀간 곳이라 역시 많은 분들이 방문하고 계시네요.
저희가 방문한 날은 비가 오던 날이었음에도 좁은 골목 골목마다 많은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시대를 따라가나요,
이렇게 작은 커피점들도 꽤 많습니다.
너무 많은 커피전문점들이 들어서 있어 옛 모습을 온전히 찾기 어려워 다소 아쉬운 감도 있습니다.
통째로 삭힌 가자미식해와 오징어순대, 그리고 일반순대 등 함경도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한 후, 다시 다리 아래로 나왔습니다.
여전히 갯배는 많은 사람들을 이쪽저쪽으로 실어나르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가을동화의 흔적을 찾아, 혹은 1박 2일의 맛집을 찾아, 혹은 그 유명한 아바이 마을의 순대를 맛보기 위해 이곳을 찾고 있습니다.
어떤 곳이나 그 지역 주민들의 애환을 담은 곳, 염원을 담은 곳, 살아가는 모습 등을 담은 곳들은 새롭게 부각되며 많은 방문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는데, 조금쯤은 관광지로서의 모습보다 옛 모습을 좀 더 고스란히 간직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해 봅니다. (정착민들의 생존을 생각한다면 이 또한 외부인으로서의 지나친 바람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렵게 살아남아 정착한 피란민들의 모습을 복원해 놓은 민속 마을도 보긴 했지만 이 아바이마을 내에 옛 모 습을 담은 작은 기념관 한 채라도 복원해 놓으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 한가지는 분명합니다.
속초에 가면 반드시, 꼭 들러보아야 할 곳으로 이곳 아바이 마을이 빠진다면 안될듯하다는 말 그리고 갯배는 꼭 한 번 타보시라는 말을 권하고 싶네요.
얼마 전에 이산가족 상봉식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이산가족들의 나이가 점점 더 고령화되어 만나기도 어려워지는데...아바이마을을 가로지르는 두 개의 대교처럼 남과 북이 하나로 연결되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도 새삼 해 봅니다.
<취재: 청춘예찬 어머니기자 백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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