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엄건식씨)
‘이 몸을 조국에 바칩니다’ 학도병 정신으로 자손에 이어진 나라사랑, 조국 수호에 앞장선 엄정현님 가문
병역명문가란 3代(조부, 부‧백부‧숙부, 본인‧형제‧사촌형제)가 모두 현역복무를 성실히 마친 가문을 뜻하며, 대대로 병역을 명예롭게 이행한 가문이 국민으로부터 존경받고 긍지를 가질 수 있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병무청은 2004년부터 병역명문가 찾기 및 선양사업을 역점사업으로 매년 추진해오고 있는데요, 2016년인 작년까지 총 3,431가문이 선정된 바 있습니다.
강원도에서도 해마다 병역명문가를 발굴, 시상해 오고 있으며 올해의 지원가문중 1대인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 모두 학도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하여 소중한 자유를 수호하였고, 2대, 3대에 걸쳐서는 해병대 중사와 육군 병장으로 각각 만기 전역한 가족을 둔 엄정현님 가문을 만나보았습니다.
(사진출처: 엄건식씨)
1대인 엄정현님과 양화주님은 춘천 사범학교 6학년 재학중 6·25가 발발하자 엄정현님은 제 6사단 수색대대에 입대하여 직접 전투에 참여하여 적군을 무찔렀고, 양화주님은 6사단 7연대에 입대하여 정훈부 요원으로 대북방송을 하며 전시에는 북한주민 선무계도 활동을 하였습니다.
두 분을 통해 듣는 한국전쟁의 참혹함은 생생하면서도 그 비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원래 학도의용군은 전쟁 발발 직후 서울에서 학도호국단 간부학생 200여명이 '비상학도대'를 결성하여 실전보다는 후방에서의 피난민 구호와 전황보도, 가두선전 등의 선무공작을 담당하는 것으로 출발했지만, 전황이 불리해지면서 실전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는데, 엄정현님은 1950년 10월에 입대하면서부터 하사계급(일등중사)으로 직접 전투에 참여하여 북진을 거듭하여 북창, 순천, 개천에까지 이르러 교전하였고, 1951년 벌어진 용문산 전투, 화천 오음리 전투 등에서도 중공군과 북한군에 직접 맞서 점령되었던 지역을 탈환하고, 적군을 몰아내는 등 혁혁한 승전을 거두어 6·25종군기장과 UN군 종군기장, 호국영웅 기장 등과 화랑무공훈장과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하였습니다.
(사진출처: 강원지방 병무청홈페이지)
또 전쟁이 끝난 후에는 남부지구 경비사령부에 전속되어 지리산 운봉지구 공비토벌 작전에 참여하여 매복하였다가 민가를 털러 내려온 공비 3명중 1명을 사살하고 2명을 포로로 잡는 전과를 올려 공비토벌 기장을 수여받기도 하였습니다.
(사진출처: 강원지방 병무청홈페이지)
할머님인 양화주님은 전쟁이 일어나기 바로 전날인 1950년 6월 24일 38선 부근 바로 남쪽 '깃대봉'에서 대북방송을 하다가 6·25가 발발하여 인민군의 기습공격으로 후퇴하였다가 1950년 10월 8일 7연대 정훈부의 요청을 받고 참전하여 화천,김화를 거져 원산에 도착, 원산 부둣가에서 뒤로 손이 묶인채 수장된 애국지사들의 주검을 목격하고 북진도중 북한군의 수많은 만행을 목격하였습니다.
(사진출처: 엄건식씨)
평양을 거쳐 순천,구개천, 희천을 거쳐 초산에 이르러 '속보'라는 손바닥만한 소식지를 통해 국군의 승전 소식을 들으면서 정훈활동과 북한주민 선무 계도활동을 계속하였으며, 중공군의 야습을 받아 부대가 흩어지는 바람에 몇 몇 부대원과 북한주민들의 피난대열에 끼어 남하하여 1951년 3월 중순경에 춘천으로 귀가하기까지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며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몸으로 겪고 목격하며 종군 활동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전쟁에 참여하였던 후유증으로 양쪽 발가락이 휘어져 발모양이 보기 싫게 변하고 19세 어린 소녀의 생애에는 잊지 못할 과거사로 남았지만 국민훈장목련장과 호국영웅기장을 수여받고 조국을 위해 애국의 일념으로 종군활동을 하였다는 것은 자손들에게 두고두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교훈으로 남았다고 합니다.
(사진출처: 강원지방 병무청홈페이지)
1대인 조부 엄정현님과 조모 양화주님의 뼈아픈 참전 경험은 자식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자유와 안보의 소중함, 국방의 의무를 강조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그 덕에 2대인 백무 엄태홍씨는 육군병장으로 군복무를 마쳤고, 아버지 엄태국씨는 해병대에 지원하여 중사로 전역을 하였습니다.
3대인 엄원식씨 또한 육군병장으로 2011년 만기 전역하였고, 엄건식씨는 현재 6사단 포병연대 27포병대대에 유선반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6·25전쟁의 산증인인 조부모님과 같은 6사단 소속으로 6사단 교육시간에 들었던 용문산 전투, 초산전투, 화천 오음리 전투에 조부모님이 직접 참여하여 몸 바쳐 싸우셨다는 그 업적이 참으로 소중하고 자랑스럽다는 소감을 남겼습니다.
한국전쟁당시 파죽지세로 몰려들던 북한군의 진격에 밀려 UN의 지원군이 도착하기까지 조국을 지키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교복을 입고 자원 입대했던 학도병들의 소중한 참전과 희생은 우리나라의 소중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는데 큰 기여를 하였고, 그런 학도병으로 어린 나이에 종군하셨던 조부모님이 정하신 가훈은 소박하게도 '웃으며 하루'라고 합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웃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웃으며 서로를 대하며 웃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전쟁을 직접 겪어본 세대에겐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그 참혹함을 겪어 보지 않은 지금의 세대들은 실감할 수 없을 것이겠지요.
(사진출처: 엄건식씨)
현재 최전방부대에서 부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손자 엄건식씨는 그런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뜻을 따라 부대원들을 지도할 때 형처럼 가족처럼 따스하고 부드럽게, 하지만 그 무엇보다 우리 선조들이 피땀 흘려 지킨 자유의 소중함을 알기에 그 소중함을 직접 전달하며 복무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입대를 앞둔 청춘들에게는 입대라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기피하지 말고 단체생활을 통해 또래의 청춘들과 고민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국가와 부모 형제를 지키며 사회생활의 전단계를 경험하는 소중한 기회로 삼아 줄 것을 당부하며 병역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건강한 대한민국은 바로 건강한 청춘들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달라고 하였습니다.
<취재: 청춘예찬 부모기자 백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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