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_DAUM->
어느해 부터인가, 저희가 살고 있는 지역의 연평균 기온이 살짝 올라가면서 그전에는 이모작을 꿈도 꾸지 못했건만 이제는 찰옥수수 베어낸 자리에 들깨와 김장배추,무 재배가 들어갑니다.
제 서방님도 저도 원래 낙천적인 성격인지라 땅도 좀 쉬어야 건강해진다고 일모작만 하고 말았었는데, 주변에서 땅 놀리는 거 보기 싫다고 자꾸만 저희 밭에 이것저것 심으셔서 그럴 바에는 우리도 차라리 이모작하자고 약 3년 전부터인가, 배추를 심기 시작했지요.
한여름의 무더위도 이기고, 무사히 모살이를 해서 이제 통만 제대로 앉음 되겠다 했더니 벌레들이 얼씨구나 좋다 하고 얼마나 달려들던지...
매일 아침마다 나가서 벌레 잡아주는 일이 큰 숙제였지요.
그래도 이렇게 속까지 파고 들어간 녀석들이 참 많습니다.
"아마도 난 다음 생에 배추 흰나비로 태어날지도 몰라. 너무 많은 애벌레를 죽였잖아." 했는데 제 서방님, 아무 대꾸도 안 하더군요.
묵묵히 일만 해요. 원래 서방님 성격 같음 "난 호랑나비로 태어나 줄게." 이래야 맞는데...(^-^)v
요즘 일이 너무 힘들었나 봅니다.
마을에서 절임배추를 생산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그전에는 그분들께 배추를 팔고, 또 절임배추 주문을 받아 드리고 우리가 직접 절임배추를 해볼 생각은 안 했었는데...
저희 지역 절임배추가 워낙 인기가 많아 다들 배추가 모자를 정도로 배송 고객이 많다고 하셔서 지난해부터 저희도 10년 동안 주문해주신 마을 고객들 놓치기 아까워 절임배추 전선에 뛰어들고야 말았습니다.
짧은 시간으로 절이면 소금치는 양이 많아 배추가 짜지기에 이틀간 저염으로 절였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은 산골 분지, 여름에 40도, 겨울에 30도 이하를 찍는 일교차, 연교차가 큰 산간 지역이라 고랭지 배추 품종을 재배합니다.
속이 노랗고 키는 별로 크지 않은, 통이 동그란 조선배추라 하나요?
배추 맛이 고소하면서도 감칠맛과 단맛이 나고 김치를 담으면 3년이 지나도 무르지 않아 묵은지로 먹기에도 참 좋습니다. 아무리 큰 녀석도 반으로 쪼개면 딱 맞고, 사등분 할 정도는 되지 않습니다.
하룻밤 연한 소금물에 담갔다가 풀이 좀 죽으면 그 다음날 줄기 갈피 사이에 소금을 연하게 쳐서 하룻밤을 더 재웁니다. 그러면 줄기도 이파리도 알맞게 절여지면서 짜지는 않고 맛난 절임배추가 되곤 하죠.
흐르는 물에 여러 번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충분히 빼고, 꼭지 부분을 다듬어서 한쪽 한쪽 박스에 담아 20킬로(약 12포기 내외)와 10킬로(6포기 내외), 두 가지 종류로 내보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 절임배추 작업이 꽤 만만치가 않습니다.
한 포기 한 포기 뽑아서 손질해 다듬고, 깊은 통에 다시 한 포기 한 포기 쪼개서 담그고, 얼음처럼 시린 소금물에 손을 담가야 하고, 다시 꺼내어 소금치고, 윗것은 아래로 아래것은 위로 자리를 바꿔줘야 골고루 절여집니다.
다 절여지면 한겨울임에도 흐르는 찬물에 여러번 헹구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물질이 나오지 않고 깨끗한 절임배추가 되어 어머님들이 받았을 때 헹구지 않고 바로 김치를 담을 수 있거든요.
사실 새벽 세시부터 물일 하고 나면 하루 종일 온몸이 덜덜 떨려오곤 하죠.
게다가 근육통은 어떻고요.
밤마다 파스 붙이고 약 바르고 끙끙 앓습니다. 서방님은 인대 늘어났다고 하는데, 전 테니스엘보우 진단받았습니다.
의사선생님이 테니스 잘 치냐고...대학교때 이후 잡아본 적도 없는 테니스 라켓, 이 병명은 고쳐져야 해요. 테니스 앨보우가 아니가 파머즈앨보우라고...
즉 농부병이요.
운송장 정리하는데 손가락 관절이 굳어서 주먹이 잘 안 쥐어집니다.
양팔과 다리,허리에 파스 덕지덕지 붙이고, 서방님이랑 마주 쳐다보며 누가 더 아픈가 내기하며 웃곤 하죠.
하지만 배추가 맛나다고 추가 주문해 주시고, 이웃집과 친척분들 집에 소개해서 연줄연줄 주문 들어올 때면 정말 보람을 느낍니다.
적어도 저희 지역 절임배추는 없어서 못 판다는 소리를 할 수 있거든요.
그런게 아마 농사짓는 농부들의 보람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절임배추로 내보내고 난 배추 외에 벌레가 너무 많이 파고들어 절임배추로 할 수 없는 배추는 여러번 배춧속을 벗겨 알배기 배추를 만들었습니다.
올해 가물은 데다 약도 안쳐서 벌레는 많지만 달콤하고 아삭한 맛은 끝내 주네요. 생배추와 초장만 있어도 한 끼 반찬 해결은 끝일듯싶어요.
게다가 저장하기에는 너무 많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많은 페친분들께서 주문해 주셨어요.
우리 서방님, 벌레 먹었다고 몽땅 버리려 하기에 제가 팔면 모두 제거라 했더니 알아서 하라 그랬는데, 덕분에 제 용돈이 쏠쏠하게 생겼어요.
올해 배추가 흉작인지라 워낙 가격이 비싸서 로컬푸드에도 알배기로 내는데 마트에서는 한 포기에 3,800원 하길래 그냥 저는 1,500원에 내는데 요것도 쏠쏠하게 팔리네요.
절임배추를 하다 보면 주문량보다 늘 조금 더 여유 있게 절이는데, 그때마다 김치를 해 넣곤 해요.
그래서 특별히 우리 집 김장은 김장 날짜를 잡아서 할 필요 없이 해치웠는데, 올해도 김치를 해서 친정엄마와 시어머니, 오빠와 동생네, 그리고 형님댁 등 친척들 것도 골고루 해서 보냈네요.
김치는 서방님이 했는데, 고맙다고 모두들 제게 화장품을 사주시고 인사는 제가 다 받았어요.ㅋ
게다가 김치로 보내달라는 분들도 계셔서 김치를 담아 보내고, 그럭저럭 올해 배추는 남기는 것 별로 없이 거의 다 치웠습니다.
다음 생에 배추 흰나비 애벌레로 태어나면...
잠시 동안이라도 제 생각 해달라고 농담했지만, 절임배추하다 배추처럼 절어서 떠나간 배추벌레 대신 환생했다고 여겨달라 했지만, 사람들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쉬운 일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정성과 노력, 그리고 하늘의 도움이 있어야 하죠.
초겨울, 유난히 힘든 한 달이긴 했지만 그래도 농부로서는 참 보람 있는 한 달이었습니다.
3년 된 묵은지로 말은 김치말이 국수입니다.
어때요? 출출한 겨울밤에 밤참으로 딱(!)이겠죠?
반찬거리 마땅찮을 때 들기름에 김장김치 쫑쫑 썰어 넣고 달달 볶으면 정말 맛난 김치볶음밥이 되죠.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김치, 내년에는 꼭 저희 마을 절임배추로 담아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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