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땅굴을 다녀오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 후,
한민족이 남과 북으로 갈리어서 대치한 지 벌써 반백년도 훌쩍 넘었네요.
우리나라에는 북한이 파놓은 네 개의 땅굴이 있다죠?
오래전부터 땅굴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으면서도 그동안 한 번도 땅굴을 견학할 기회가 없어서 내심 아쉬웠습니다.
작년에 철원에서 워크숍을 하고 철원군 안보관광 코스를 돌았는데
제2 땅굴이 견학 코스에 있어서 은근히 견학을 기대했지만
일정에 쫓겨 땅굴 견학만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강원도와 대한적십자사가 주최하는 철원 평화의 광장에
평화, 생명, 미래의 숲 조성 나무 심기에 다녀오면서
제2 땅굴을 견학하게 되었습니다.
보통은 백마고지역에서 출발하여 제2 땅굴을 견학하는데요.
평화의 광장에서 나무 심기를 마친 후 바로 이곳 제 2땅굴로 이동했습니다.
땅굴 입구에는 온 국민의 정성 어린 방위 성금으로 땅굴을 발견, 차단하였다는 표지석이 있네요.
땅굴을 견학하기 위해서는 먼저 입구에서 머리를 보호하는 헬멧을 써야 합니다.
땅굴의 높이가 2m밖에 되지않아
돌아보는 도중 자칫하면 천정에 머리를 부딪쳐서 다치는 경우도 있다네요.
땅굴 입구......대개의 동굴이 그렇듯이
지하로 내려가는 거라 음침하고
또 남침목적으로 북한이 파놓은 굴이라 그런지 좀 더 으스스하게 느껴집니다.
내려가는 계단, 어디선가 박쥐라도 한 마리 날아올 듯 하네요.
왜 헬멧을 써야 하는지를 알겠습니다.
고개를 최대한 숙이고 허리를 굽히고 걷습니다.
이 거리가 장장 3.5km!
내부에는 어디선가 물이 흘러 고이고, 이렇게 이끼도 구석구석 끼어 있습니다.
제2 땅굴은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이 있은 후 국내에 평화무드가 조성되어 국민들이 평화통일의 환상에 젖어 있을 때
당시 21대 사단장인 정명환 소장이 순찰 간 곳의 목책이 철책으로 바뀐 것을 보며
'내가 김일성이라면 철책선을 뚫기 위해 땅굴을 팔 것'이라는 점에 착안,
6사단이 전방 북한 인민국 지역의 활동을 중점 관측하면서 발견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1973년경 2~3초 간격으로 규칙적인 폭발음이 일 년 가까이 들려오자
한국농업공사(현 농어촌공사)와 함께 시추작업을 실시,
3개월간 45개의 시추공만으로 땅굴의 존재를 확인하는 쾌거를 이루게 되었다고 합니다.
서울 북방 106km 지점에 위치한 이 땅굴은 DMZ 일대에서 두 번째로 발견된 것으로
지하 50~160미터의 견고한 화강암층을 뚫고
군사분계선 남쪽 1.1km까지 파 내려와
높이 2m의 아치형 터널을 통해
한 시간 만에 북한군 무장병력 16,000여 명이 2열 또는 3열 종대 대형으로 침투가 가능하다네요.
제2 땅굴 수색작전 때 중사 김호영을 비롯한 7명의 대원이
북한이 차단벽에 설치해놓은 지뢰와 부비트랩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이 땅굴을 통해 병력을 침투시켜
국가의 혼란을 조장하고 국군을 무력화시켜 한반도를 공산화하기 위한 기습침공용으로 만들어졌다는데
사전에 땅굴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섬뜩하기도 합니다.
북한이 땅굴을 팠다는 세 가지 증거는 다이너마이트 장전공의 방향이 북에서 남쪽으로 향하고 있고
갱도 배수로의 방향이 남에서 북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
(즉 땅굴을 파면서 생기는 물을 북쪽으로 흐르게 했다는 점이죠.)
그리고 북한과 우리나라의 굴착 공법이 다르다는 점인데 북한은 폭발을 통해 벽면을 그을리나
우리나라는 대형 굴착기를 이용하기에 벽면의 변화가 없다고 하는데
다른 건 모르겠지만 물을 흐르게 하는 방향에서 땅굴을 어느 쪽에서 팠는가는 선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땅굴 견학을 마치고 나오면서
아직 우리의 전쟁은 끝이 난 게 아니구나...라는 서글픈 생각이 밀려드네요.
도대체 언제까지 남과 북으로 갈리어서 이렇게 대치해야 하는지
고향에 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이산가족들의 아픔은 얼마나 더 오래 지속되어야 할런지
이런저런 생각들로 마음이 심란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도 그저 잠시 빌려온 평화에 불과한 건 아닌지...
들어갈 때 흘깃 보았던 위령탑이
바로 이 땅굴을 발견하고 수색하면서 희생된 우리 국군의 안타까운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라는걸
땅굴을 직접 밟아보고 느끼면서
이렇게 희생된 젊은 용사들도 모두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었다는 생각에
아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국방의 의무,
땅굴을 와서 보니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습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도 그저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의 아들과 딸들이
밤잠 못 자가며 지키고 있기에 가능할 것입니다.
군대에 간 아들 생각이 더 절실해지는 하루였습니다.
(땅굴에 관한 설명들은 땅굴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을 참조하여 썼습니다.)
<취재: 청춘예찬 어머니기자 백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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