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청 SNS서포터즈

작지만 없는게 없는 산골마을 5일장

삼생아짐 2015. 3. 23. 23:46
728x90

 

처음 시집 왔을 때, 시골 살림 잘 모른다고 시어머님이 일년동안 함께 살아주셨어요.

농사일도 가르치고 시골 살림도 일러주신다고...

 

 그런데 어느날, 어머님이 장날이니 장에 다녀오라 하시더군요.

 


 

"장이 뭐예요?"

했더니 알고보니 시골은 도시처럼 상설 시장이 서질 않고

5일마다 한번씩 외부에서 장사하시는 분들이 들어와서 임시장터를 벌린다고 하시더군요.

 

저희 지역 장날은 4일과 9일인데

어떤 어머님들은 이날 장에 가서 머리 말으신다고

남의 집 일도 맡지 않는 적도 있으시더군요.

(알고보니 용돈 아쉬우실때면 집에 말려둔 대추나 밤 

그리고 다슬기를 잡아다 파시거나

고들빼기, 배추, 열무, 파 등 집에서 재배한 각종 야채들을 

 내다 팔아 용돈 마련하시는 날이기도 하더라구요.

 

 

그때만 해도 옛날인지라 약 4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시장터에 탈탈거리는 경운기타고 처음으로 장이란 곳엘 가보았지요.

 

그런데...


종가집 맏딸이었던지라 어렸을때부터 엄마를 따라 시장에 많이 다녔었는데

제가 도시에서 보았던 시장에 비해 생각보다 규모가 너무 작아 실망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시골에서는 지역 주민들에게 장날이 얼마나 기다려지는 날인지

시골에서 오랫동안 살아보니 잘 알겠더군요. 

 

 

저희 지역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분지라 평소에

생선이나 조개등의 해산물을 접하기는 쉽지 않지요.

 

이렇게 고개너머 동해안 쪽에서 상인들이 해산물을 갖고 오는 장날에라야 비로소 해산물 맛을 볼 수가 있답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마을 어르신들은 고개 넘어 동해에서 넘어오는 생선장수들을 만날 수 있는 5일장을

무척 기다리곤 했답니다.

 

장이 서도 사실 여자들에게는 장을 가 볼 기회가 별로없이

시아버지나 남편되시는 남정네들이 두루마기 차려입고 나서서 새끼줄에 생선 매달고 장을 봐다 주셨다고 하더라구요.

 

장에 간 김에 서로서로 만나 막거리잔도 기울이고

그렇게 거나하게 취해 저녁무렵에야 생선 사들고 오면 겉은 바짝 마르고

싱싱한 기운은 떨어져도 그나마 감지덕지

고맙게 받아 부랴부랴 화롯불에 구워 어르신들 진지상에 올렸다고 하더군요.

 

어렵던 시절의 추억을 얘기해 주실 때면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형마트나 집앞의 슈퍼마켓등을 접하는 도시여자들에게

시골 장날의 추억은 거리가 먼 남의 얘기일 따름이지요.

 



오죽하면 시골 5일장을 촌로들의 생일날이라고 했을까요?

그 말의 뜻이 실감나는 시골생활이지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곳

바로 호떡집입니다.


 

장날만 되면 '떡집에 불났다' 말을 실감하곤 하죠.

장을 보러 나오신 어르신들이나 촌댁들이나 모두 모두 호떡집 앞을 그냥 지나가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호떡집에서 튀겨주는 핫도그를 기다리고요.

 

순대도 돼지고기 머릿고기도 함께 파는데

점심무렵만 지나면 벌써 동이 나 버립니다.


 

어렸을 때 제가 살던 고장에는 방직공장이 있어서 거기에서 실을 뽑고 난 번데기가 시중에 나오곤 했는데,

사실 이 번데기도 알고보면 애벌레죠.

 

어려서도 잘 먹지 못했지만 어른이 된 지금도 잘 못 먹는데

주변분들은 너무너무 고소하고 맛나다고 잘 드세요.

 

하긴 요즘 곤충의 영양학적 가치나 대체식량으로 각광받고 있으니

일찌감치 우리 선조들은 이 번데기가 단백질 덩어리라는 걸 알고 계셨을런지도 모르겠네요.


아이들 자랄때 신겼던 실내화도

제가 일할 때 신는 빨간 장화도

겨울이면 요긴하게 신고 있는 두툼한 털슬리퍼도 모두 이곳에서 사고 있습니다.

 

옛날에 제 남편, 제가 장에서 무얼 좀 사다달라고 할 때면

그냥 한귀로 듣고 흘려버리기 쉽상이라 늘 저를 서운하게 하더니

제가 일한다고 빨간장화 사다달랬더니

얼릉 사가지고 와서 저를 더 서운(?)하게 만들기도 했었지요.


 

시식코너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만 있는게 아니랍니다.

우리 마을 시골 5일장에도 있어요.

갓 쪄낸 두부며 도토리묵, 올방개묵을 맛볼 수 있답니다.


 

봉지마다 원산지를 손으로 표시하여

 직접 농사지으신 것들을 들고나온 어머님들의 소박한 글씨체도 볼 수 있고요


 

보리로 직접 싹을 틔워 만든 엿질금도 살 수 있고

가마솥에서 긁어온 누릉지도 맛 볼 수 있습니다.



 

집에서 기른 닭이 낳아온 토종 달걀과 메추리알 

예전에는 이 달걀을 팔아서 수학여행비나 소풍비를 마련하곤 했지요.




뿐인가요, 직접 빚어 쪄내 나온 만두는 번거로운 김치 다지기를 생략해도 좋은 한끼 먹을거리죠.

겨우내 묵은 김치를 꺼내어 만두를 빚어도 좋지만

아쉬운대로 이곳에서 한봉지 사다가 끓여먹어도 좋답니다.

 



저희 지역은 워낙 추운지역이라 고구마가 잘 재배되질 못합니다.

그래서 고구마도 어머님들이 구입하시는 인기 품목 중의 하나지요.

 

 

시금치라 하더라도 섬에서 뜯었다 하여 섬초라 하나요

이 섬초는 데쳐서 나물로 무쳤을 때 시금치보다 훨씬 더 달콤하고 맛납니다.

봄만 되면 남쪽지방에서 올라오는 월동추와 봄동

그리고 가장 인기있는 나물 삼총사중 하나가 바로 이 섬초지요.

 



작년 가을에 수확한 찰옥수수를 가져다가 뻥튀기하는 뻥튀기 아저씨네 진열대인데

호떡 다음으로 인기가 좋은 곳이 바로 이 뻥튀기 아저씨네입니다.

 

 

저희 지역 분인데 방학때면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까지 온 식구가 나와 뻥튀기고 과자 팔고 사탕을 팔고 있습니다.

 



 

김, 멸치 등의 건어물과


 

프라이팬, 냄비 등의 그릇 장사 아저씨도 옵니다.

 

 

없는게 없는 만물상 아저씨도 오시고요.

 



이렇게 시골에서 할머니들이 재배하신 나물이나 버섯

말려놓은 호박고지등도 더러 팔고 계셔서

일부러 도시에서 이런 것들을 사러 오는 주부들도 있답니다.

 

 

적은 돈으로도 풍성한 장보기를 할 수 있는

전통시장인 5일장




점차 사라져가는 전통시장을 요즘은 새롭게 단장하여 많은 분들에게 홍보하고 있는데

이런 시골 5일장들도 지역주민들에게는 참 요긴한 장이라

사라지지 않고 오래오래 이어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