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국외)/이탈리아

세계에서 가장 큰 성베드로 성당(유럽여행기3)

삼생아짐 2014. 12. 4.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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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바티칸 미술관에서 전 세계에 알려진 몇 몇 작품만 한국인의 근면, 성실, 협동의 정신으로 

겨우겨우 보고,

아마도 이 말씀 하셨던 그 분, 후회할게다. 지금쯤....

윽2

 

내가 이렇게 두고두고 곱씹는거 알면......ㅋ

 

그나마도 이렇게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는 걸 감사해야지.

아니 언젠가는 꼭 다시 와야지...

그때엔 도시락 싸서 하루종일 개길거야...

하트2

 

 

하면서 

 

그  많은 인파에 밀려 밖으로 나오는 길. 

베드로 성당까지 입장권을 끊어서 밖으로 나가지 않고 곧바로 베드로 성당으로 입장한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돌아서서 아쉬운 미술관 한 번 더 찍어보고...

바이


 

 

 

 돌도 한 번 더 쓸어보고 만져보고...

바이

 

 

 

 

 

 

대성당 들어가기 전, 미술관과 이어지는 통로에는 역대 교황의 사진들과 성인들의 사진, 그리고 기념품 가게가 있다. 이 곳에서 한 눈 팔지 않고 조금 더 내려가 우회전을 하면...

고고

 

바로  그 유명한 성베드로 대성당입구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 들어가기 전, 잠시 내다본 성베드로 광장

꺄악~~ 의자......무진장 많다!!!

평화

 

늘어놓은 의자 말고도 겹쳐 쌓은 것들이 엄청나다.

알고보니 이곳은 3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란다. 30만명이 한꺼번에 모여서 이곳에서 미사를??

아무리 넓어도... 설마......싶다.

??

(이따가 혹 시간 남으면 의자 갯수 세어봐야지...ㅋ)

소풍

 

 

 

그 유명한 성베드로 대성당  일명  산피에트로대성당 [Basilica di san Pietro in Vaticano]

 

세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성당으로 27,000 명이 동시에 예배를 볼 수가 있다고 한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서기 90년에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자 나중에 로마의 초대 주교,

 

즉 교황이 되는 성 베드로의 무덤 위에 대성당을 건립했다고 한다.

 

 

성 베드로의 시신이 대성당의 제대 아래에 묻혀 있는 까닭에 지금도 교황이 선종하면 그 시신을 제대 아래에 안치해오고 있다는데 지금의 대성당은 1506년부터 1626까지 120년의 공사 끝에 건설되었다고 한다.

 


 

기둥도 웅장하다.

바닥도 벽면도 천장도 몽땅 다 대리석이다...

( 땅 속 깊은 곳에서 마그마가 굳어지면 화강암이 되고, 그 화강암이 높은 열과 압력을 받아 변성하면 대리암, 대리석이 된다고 했다. 맞을걸? 초등 5학년 과학 교과서에 나왔던듯...난 기억력도 좋아.ㅋ

라고 했는데...

 

헷갈렸다, 화강암은 편마암으로

석회암이 대리암으로 변성 된 듯,,,맞나?

(알아서 찾아보세요..ㅠ 숙제예요.ㅋ)

슬쩍...만져보기...난 왜 돌도 이렇게 좋은지 몰러...ㅋ)

아잉2

 

(헉, 이글 보면 울 서방님, 저한테 돌머리라 그럴지 몰라요.

예전에 제가 새랑 놀고 새 좋아한다고 새대가리라 그랬거든요.

우씨, 나쁜 서방.

부르르2

 

 

 

바닥도 대리석이라는데 바닥을 쓸어보진 못하잖아. 

그냥 기둥이라도 쓸어봐야지...

근데 붉으스르름한 수수팥떡 색깔, 회색깔(쥐털색깔...울 딸 내가 은회색 차보고 쥐털색깔이랬더니 배꼽 쥐더라.ㅋ)뽀얀 우유색깔, 누르스름한 치즈색깔, 각기 색깔이 다르다. 

어떻게 이렇게 바닥을 만들 수 있지? 

감사

 

정말 보는 눈만 없으면 철퍼덕 주저앉아 바닥 한 번 쓸어보고 싶다.

 

 

 

 

아, 이곳도 역시 인산인해로구나... 

어쩌면 이곳에서도 사람들에 밀려 미친 듯이 사진찍으며 그냥 한바퀴 휘익 돌아나와야 할런지도....라는 비참한 생각이 드는데 

 

어라, 이게 웬일? 

잠시 밖으로 모이라더니 알아서 돌으란다. 

정해진 시간까지만 나옴 된단다.

어? 가이드 아저씨, 목 아프신가?

호호

 

이게 웬 행운? 해가며 씩씩하게 돌아섰는데...

 

 

 

 

무지무지 신나서 씩씩하게 들어가기 시작했는데...무지의 소치 시작 

그냥 조각상......

그냥 그림......

멍2

 

 

 

 

그순간 한국에서 함께 동행한 이재권 전무님, 맨오른쪽 청동문이 "성문(Porta Santa)이라며 설명을 해 주신다.

베드로 성당 입구의 내부에는 5개의 청동문이 대성당과 연결되어 드나들 수 있는데, 가장 오른쪽의 청동으로 된 문이 바로 '성문'(聖門) 즉 거룩한 문이란다.

 

카톨릭 교회의 특별한 의미를 지닌 성년의 개막 미사전에 열리는데, 교황에 의해 일년간 열렸다 다시 닫힌단다. 

 

현재의 성문은 1950년 정기 성년식 선포를 기념하기 위해 스위스의 카톨릭 신자들이 기증했으며, 비코 콘소르티가 청동으로 제작했다고, 성문 표면에는 좌우 각각 8개 도합 열여섯군데의 패널위에 성서 이야기를 각각 소주제로 부조해놓았다. 

 

 

 

 

성문 옆의 문으로 드디어 입장!!

우와~~~~~~~~~~~~~~

평화

정말 크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라더니 들어서자마자  그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사방팔방이 모두 화려한 조각작품들과 그림과 모자이크와 황금칠과 사람들과 까마득한 천장과 수많은 제대와 길고 긴 통로와 기타 등등...

 

어마어마하다.(대성당이 세워진 대지는 모두 25.616㎡(약 85,000평), 중앙 통로의 길이 187미터, 폭 140미터, 높이 46미터, 중앙 제대 위에 있는 돔까지의 높이는 137미터, 크고작은 채플 즉 제대들 갯수 44개, 조각품 395개,모자이크로 된 그림 135개란다.)

 

1700년대의 건축 비평가였던 밀리아치는 누구든지 처음 대성당에 들어오면서 외부에서 받았던 성전의 거대함으로 인한 위압감이 내부의 잘 조화된 모습들로 인해 조금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는데, 

 

위압감은 위압감

내부는 내부대로 

한마디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냥 놀랍다.

평화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중앙통로 길이 187미터라고 했으니...

여기서 100미터 달리기를 뛰어도 두번이나 뛸 수 있다는 말씀...

아자

 

 

 

 

바티칸 미술관에서와는 또다른 엄숙함과 웅장함과 감동에 절로 숙연해진다.

샤방3

 

 

 

 

 

아, 여기선 잘하면 국제미아도 될 듯 싶다.

(내 나이가 얼만데...미아? ㅋ)

하이2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을 다니면서 느낀 건데,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은 무조건 널리 알려진, 무언가 볼거리가 있다는 사실, 아니 꼭 보아야 할 것들이 있다는 사실...ㅋ 

(삼생아짐의 예리한 관찰결과...)

생각중

 

대성당에 들어가자마자 오른쪽 맨 끝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에타 경당(Chapel of the Pieta)이다. 

 

 

 

 

아니나다를까, 방탄 유리벽 안에 예수를 안은 성모마리아의 모습을 담은 미켈란젤로의 그 유명한 작품 피에타(이탈리아어 : Pietà)가 전시되어 있다. 1499년 미켈란젤로가 교황청 주재 프랑스 대사 랑그로사이오 추기경의 의뢰를 받아 제작한 것이라고. 비탄 슬픔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피에타.

 

성모마리아의 슬픔, 그리스도의 수난, 십자가의 길, 예수의 처형과 죽음을 나타내는 주제로 그 비장미 때문에 수 많은 예술가들이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고 하는데, 기독교 예술의 주요한 주제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 김기덕 감독의 영화도 있다. 조민수 주연의...)

 

성모마리아의 얼굴은 예수보다 젊게 묘사되어 있는데, 이에 대해 미켈란젤로는 그의 전기를 쓴 제자 아스카니오 콘비디에게 '순결한 여자들이 순결하지 않은 여자들보다 젊음을 더 잘 유지하는데, 티끌만큼도 추잡한 욕망의 때가 묻지 않은 육체를 가진 동정녀라면 말할 것도 없다'라고 이유를 밝혔다고.

 

(우씨...미켈란젤로의 말에 무조건 찬성할 수 없어, 

유부녀는 욕망의 때가 묻어 더 빨리 늙어보인단 말야? 

그럼 동정녀(처녀)는 안 늙나? 

내 생각엔 욕망의 때보다 남편과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더 빨리 늙는 듯...

슬퍼2

 

 

미케란젤로는 자기가 만든 이 작품을 놓고 사람들이 누가 만들었는지 잘 모르자 밤에 몰래 들어가 성모마리아의 어깨띠에 

 

"MICHAEL·ANGELVS·BONAROTVS·FLORENT·FACIEBAT(피렌체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만들었다)"라고 새겨넣었다고.  

 

그가 남긴 유일한 서명이라는데, 

그의 인간적인 면을 볼 수 있어 재밌기도 했는데, 

아잉2

 

정작 본인은 두고두고 부끄러워했단다. 명예욕이라 이거지.

 

피렌체에 있는 다비드상과 로마 성베드로의 쇠사슬 성당에서 보관중인 모세상과 더불어 그의 3대 작품에 들어간다.

 

 

 

 

1752년 5월 21일 헝가리 출신의 지질학자인 라슬로 토트가 "내가 죽음에서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다!"라고 외치며 10여 차례나 망치를 휘둘러 성모의 얼굴의 한쪽 팔을 박살낸 사건이 발생, 부스러기를 수거해서 복원했지만 그 와중에 부스러기를 훔쳐간 사람이 있어서 코 부분은 후에 복원했다 한다. 

 

그 후부터 이렇게 방탄 유리벽안에 갇혀있게(보호받게)된 피에타상. 

그야말로 비극에 비극이 더해진, 비극의 피에타상이다.슬퍼2

 

 

 

두번째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

???

 

 

 

베르니니의 발다키노(Baldacchino)일명 천개(하늘을 덮는 덮개)와 제대이다.

 

닫집 형태의 구조물로 대성당의 중심이 되는 돔 아래에 위치한 높이 29미터에 37톤의 무게를 지닌 청동구조물.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돔과 함께 또 하나의 명물로 평가받는 베르니니의 작품이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예술의 상징으로 제작 당시 베네치아에서 약 211,427파운드에 달하는 금속을 모았는데도 양이 부족하자, 마침내는 로마에 있는 기원전 1세기 때의 신전인 판테온의 내부 천장의 청동을 떼어서 충당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과다한 청동금속의 사용때문에 비난을 받기도 했다고.

 

당시 로마 시민들은 "Quod non fecerunt barbari fecerunt Barberini(바르바로이(야만인)도 하지 않은 짓을 바르베리니(우르바노 8세의 가문)가 한다)"며 비꼬았다고.

 

 

 

대성당 내부에서 눈에 잘 뜨이는 위치에 있는데 중앙 제대를 중심으로 4개의 청동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덮개, 그리고 십자가를 세우고 이 제대 바로 밑에 성베드로의 무덤과 역대 교황들의 시신이 있다고 한다.

 

 

 

 

성안드레아의 석상(프랑수와뒤케스노이가 1639)

 

여기에서 사제의 단일성이 탄생한다
(HINC SACERDOTII VNITAS EXORITVR)

 

중앙제대를 사이에 놓고 쿠폴라를 받치는 네 모서리 벽에는 네 개의 커다란 대리석 상이 있는데, 

성론지노(베르니니작), 성녀 베로니카(프란체스코 모키작),성 안드레아(프랑수아 뒤케스노이의 작),성녀 헬레나(안드레아볼지작)의 석상들이다. 

 

이 석상들 위에 각각 두개씩 모두 여덟개의 대리석 원주가 있는데 이 원주들은 신축이전 옛 베드로 성당의 발다키노 기둥이었다고. 

 

 

 

 

성녀 베로니카(프란체스코 모치 1629)

 

여기에서 하나의 믿음은 세상에 빛난다

(HINC VNA FIDES MVNDO REFVLGET)

 

그 위의 경당에는 사순절 마지막 시기인 성주간 동안에만 예수의 땀을 닦았다고 하는 수건, 예수가 못 박혔다고 전해지는 성십자가의 나무 조각, 예수의 허리를 찔렀다고 전해지는 성창 등의 성유물이 일반인들에게도 공개를 허가하고 있다고 한다.

 

 

 

150여년의 성당 공사기간 동안 성베드로 성당 천국의 44개의 황금제대가 중앙에 새겨져 있는데 이 제대를 자세히 보면 위태로운 산모와 아이가 조각되어 있다. 교황 우르바노 8세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세 마리의 꿀벌이 새겨진 제대'이야기다.

 

 



17세기 교황 우르바노 8세는 질녀가 출산 중 위험하다는 소식을 듣고 만약 질녀가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수 있게 된다면 대성당에 제대를 만들어 후세에 물릴 것을 기도했다. 

 

결국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하게 출산을 마쳤고, 교황은 기도에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제대를 만들었고 제대를 만들것을 위임받은 베르니니는 교황의 세마리 벌이 그려진 가문을 중심으로 임신과 출산을 조각했다고 한다.

 

그나저나 이거 정말 황금 맞을까?

금도금일까, 황금일까?

깨물어 볼 수도 없고...

미안2

 

 

 

 

이 중앙제대 위에는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돔이 있는데 총 높이가 135.57, 지름 42미터의 돔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돔이라 한다. 

 

 

 

 

 

이 돔을 설계하기 위해 판테온과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참고했다는데 매우 역동적이고 화려하며 돔의 중앙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장식이 연출하는 환상적인 분위기는 마치 천국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 정도라고.

 

돔 밑에는 모자이크로 된 4복음서 저자인 마르코,루가,마태오,요한의 초상화가 네 방향으로 그려져 있는데 마르코가 들고 있는 펜은 무려 길이가 1.65미터나 되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성당의 돔의 위용에 압도되어 작게 보인다고.

 

 

 

 

베드로의 묘 앞에 꿇어앉아 있는 동상의 주인공은 교황 바오 6세이고 이 안쪽 상부에는 비둘기의 스테인드 글라스, 그 아래에 '성 베드로의 의자'가 있다.

 

 

 

 

베르니니의 "성 베드로의 의자"와 "영광"(Cathedra Petri)

 

로마의 그리스도인 사이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사도 베드로가 로마에 들어와서 선교 활동을 할 때 앉았던 나무의자의 조각들을 모아서 5세기경 의자형태를 만들고 그 위를 흰 상아로 장식하여 전해져오던 것을 교황 알렉산데르 7세가 베르니니를 시켜 그 위를 청동으로 장식하게 했다고.

이때 들어간 청동의 양이 75톤이란다. 과학적으로 사도 베드로가 이 의자에 앉았었느냐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사도 베드로의 무덤을 표시하기 위해 세웠던 기념비와 함께 사도의 유물로 경배되어 왔다고 한다.

 

청동의자 위쪽은 천연 대리석을 얇게 깎아 마치 유리처럼 보이는 타원형의 중심에 비둘기(날개의 폭이 약 1.75미터)가 자리잡고 있는데 이 비둘기는 삼위일체의 한 분이신 성령을 의미, 열두부분으로 나뉘어진 타원형은 그리스도의 열두사도를 상징한다, 

타원형의 둥근 모습의 세 부분은 삼위일체, 즉 3이라는 숫자의 종교적 의미로 모든 숫자 중 가장 완벽한 수를 나타낸다고.

 

청동의자의 네 다리를 잡고 있는 청동상은 앞쪽으로 미트라(Mitra, 카토릴 교회에서 주교들이 미사 중에 쓰는 모자, 일명 빵모자??)를 쓴 성암브로시우스와 성 아우구스티누스로 서방 로마 카톨릭교회의 대표적 4대 교부(동방방사)에 속하는 분들이고, 뒤쪽으로는 성요한 크리소스토무스와 성아타나시우스를 새겼다고 한다.

 

 

 

 

 

성베드로의 청동상 

 

역시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꼭 가봐야한다! 

오케이3

 

이 청동상은 아르노포 디 캄비오의 작품으로 현재 베드로 대성당 지하 무덤 출구 앞에 놓여있는 성베드로의 오래된 대리석상에서 영감을 얻어 청동으로 만들었다고, 

 

고대 로마식 복장을 하고 왼손에는 열쇠를 들고 오른손가락을 세우고 있는 이 청동상은 중세기때부터 이곳을 찾는 순례자들이 청동상의 발에 입맞춤하며 기도를 바치는 전통때문에 현재는 오른쪽 발가락이 거의 닳아서 그 원모양이 없어지고 발가락도 닳은 상태라고.

 

이렇게 하면 지은 죄를 씻을 수 있다는데...글쎄...

멍2

뉘우침 자체는 좋지만...성베드로는 죽어서도 많이 고달프겠다.흑...

 

 

1857년 3월 15일 교황 비오9세가 특별한 회칙을 통해 이날부터 50일간을 임시 성년으로 반포하며 베드로 대성당에와서 이 동상의 발에 입맞춤해야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단다. 

 

 

 

 

성 세바스티아노 경당(Chapel of St. Sebastian)

 

성베드로 성당에는 곳곳에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경당과 제대가 있다.

 

성 세바스티아노 경당의 제대 윗부분을 장식하는 성화는 3세기 로마 제국의 군인이었다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발각되어 화살형에 처해졌다가 죽지 않고 살아남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앞에서 그리스도교 박해를 비판해 처형당한 성 세바스티아노(Sebastiano)의 순교 장면을 

 

도메니코 참피에리(Domenico Zampieri, 1581)가 1628~1631년에 그림으로 그린 것으로, 이를 다시 피에트로 파올로 크리스토파리(Pietro Paolo Cristofari, 1685~1743)가 1730~1736년에 모자이크화로 교체했다.

 

제대의 아랫쪽에는 교황 복자 인노첸시오 11세(B. Innocentius XI)의 유해가 유리관 내부에 안치되어 있었다. 

 

그는 원래 대성당 지하 무덤에 안장되었지만 1956년 10월 7일 비오 12세때 시복되면서 관을 열었는데 사후 267년이 지났음에도 유해가 부패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로부터 55년 뒤인 2011년 5월 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을 기념해 사람들이 보다 가까이에서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여기에 대리석 석관을 마련하고 대성당 지하 무덤에 있던 유해를 이장했다.이에 따라 기존에 모셔졌던 인노첸시오 11세의 유해는 변용 제대로 이장되었다. 

제대의 양 옆에는 20세기에 제작된 2개의 기념물이 서 있는데, 왼쪽은 교황 가경자 비오 12세의 동상이고 오른쪽은 교황 비오 11세(Pius XI)의 동상이다. 두 교황 모두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즘에 반대했던 인물이다. 

 

성 세바스티아노 제대의 왼쪽 벽감에는 교황 인노첸시오 12세(Innocentius XII)의 기념물이, 오른쪽 벽감에는 왕위를 포기하고 가톨릭으로 개종한 스웨덴 여왕 크리스티나(Kristina)의 기념물이 있다. 경당의 아치 윗부분 좌우에는 관용(Clemency)과 지조(Constancy)를 의인화한 조각상이 있다.

 

 

 

성 예로니모 제대(Altar of St. Jerome)

 

제대의 뒷배경을 장식하는 성화는 서방 교회의 4대 교부 중 한 사람이자 교회학자이며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한 에우세비우스 소프로니우스 히에로니무스, 즉 성 예로니모(St. Eusebius Sophronius Hieronymus, 340/347~420.9.3)를 주제로 했다. 

 

 

죽어가는 성 예로니모의 손에 입을 맞추기 위해 허리를 굽힌 바오로와, 화면 왼쪽에 앉아 있는 성 예로니모의 발치에 머리를 대고 있는 사자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으며, 도메니코 참피에리가 1614년에 그린 것을 1744년에 모자이크화로 교체했다.


제대의 아랫쪽에는 교황 성 요한 23세의 유해가 유리관 내부에 안치되어 있다. 

 

'선하신 교황 요한'으로 불리며 많은 존경을 받았던 그는 1963년 6월 3일 선종한 뒤 대성당 지하 무덤에 매장되었다가 2000년대에 들어와 시복 절차가 진행됨에 따라 관을 열었는데, 30여년이 지났음에도 유해가 부패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따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요한 23세를 2000년 9월 17일 시복하면서 새로운 매장처로 이 제대를 선택해 그의 거룩함을 기렸다.

 

 

 

거짓 제대(Altar of the Lie)

 

제대의 뒷배경을 장식하는 성화는 이런 내용이다. 

 

하나니아스가 땅을 팔아 생긴 돈을 감추고 아내인 사피라도 그걸 알고 있는 상황에서 돈의 일부만을 사도에게 바쳤는데, 베드로는 "하나니아스, 왜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겨 성령을 속이고 땅값의 일부를 떼어 놓았소? 그 땅은 팔리기 전에도 그대 것이었고, 또 팔린 뒤에도 그 돈은 그대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 아니오? 그런데 어쩌자고 이런 일을 하려는 생각을 마음속에 품었소? 그대는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속인 것이오."라고 말하자 하나니아스가 그 자리에서 죽었다. 

 

사람들이 시신을 메고 장사지내러 나간 사이, 남편의 죽음을 알지 못한 사피라가 들어오자 베드로는 그녀에게도 돈이 이것뿐이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거짓말을 하자 "어쩌자고 그대들은 서로 공모하여 주님의 영을 시험하는 것이오? 보시오, 그대 남편을 묻은 이들이 바로 문 앞에 이르렀소. 그들이 당신도 메고 나갈 것이오."라고 말하기 무섭게 사피라 또한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다는 사도행전 5장 1~11절의 내용을 나타냈다.

 

크리스토포로 론칼리(Cristoforo Roncalli, 1552~1626)가 1599~1604년에 그린 것을 1725~1727년에 모자이크화로 교체했다.

제대의 맞은편에는 교황 비오 8세(Pius VIII)의 기념물이 있으며, 기념물 밑에는 성물 안치소 및 재무 박물관으로 향하는 문이 자리하고 있다. 대성당과 성물 안치소 및 재무 박물관을 연결하는 이 통로에는 대성당에 안장된 교황들의 명단이 있다.

 

 

 

 

세례 경당(Baptistery Chapel)


세례 경당은 도메니코 폰타나의 종손인 카를로 폰타나(Carlo Fontana)가 설계했다. 

 

여기에 놓인 지름 4m의 자색 반암 세례대는 카스텔 산탄젤로에서 옮겨온 것으로 전해지는데, 그 위에 덮인 도금한 청동 덮개 장식은 카를로 폰타나가 설계한 것을 조반니 지아르디니(Giovanni Giardini, 1646~1721)가 완성시켰다.


세례대 뒷배경을 장식하는 성화는 요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세례를 하는 장면으로 카를로 마라타(Carlo Maratta)가 1696~1698년에 그린 것을 1722년 모자이크화로 교체했다. 

 

경당의 스펜드렐(spandrel) 네 곳은 프란체스코 트레비사니(Francesco Trevisani, 1656.4.9~1746.7.30)가 디자인한 것으로 의인화된 아프리카아메리카아시아유럽의 4대륙이 장식되어 있다.


경당 오른쪽 벽감에는 영국 국왕 제임스 2세의 아들인 제임스 프랜시스 에드워드 스튜어트(James Francis Edward Stuart, 1688.6.10~1766.1.1)의 아내 마리아 클레멘티나 소비에스카(Maria Clementina Sobieska, 1702.7.18~1735.1.18)의 무덤이 있다. 경당의 아치 윗부분 좌우에는 정의(Justice)와 용기(Fortitude)를 의인화한 조각상이 있다.

 

 

 

 

 

곳곳에 마련된 제대들이다. 44군데의 경당 즉 제대가 있다고 했었지?

오케이

 

 

 

 

이곳은 성당에 들어갈 때 성호를 그으며 얼굴에 바르는 성수..

어렸을 때 잠시 성당에 다녔었다.

 

워낙 아버지가 엄하신 유교집안의 종손이라 교회도 성당도 다니지 못하게 막으셨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일명 종교탄압.

원래 박해란 받으면 받을수록 그 신앙이 강해진다던가

흥분

일요일만 되면 꿋꿋하게 아버지 눈 피해서 성당 나갔다.

(내가 원래 하지말라 그럼 더 하는 고집탱이 성질이 있어서...^^;;)

 

성경퀴즈에 입상도 해서 상도 탔는데, 아버지한테 들키는 바람에...압수...주일마다 감시받고 못 나가게 됐다.

그래도 대학교때 학교 오가며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성당에 들어가서 혼자 기도하다 나왔는데...

 

대학교때 엄마따라 절에도 다녔었다.

 

성당이나 절은 마음이 편안해지고 마음이 다스려지는데...이상하게 교회는 적응이 잘 안된다.

기독교 집안으로 시집와서 세례도 받았건만...

지금은 철저한 기독교 신자인 시어머니가 주일마다 교회나가라 그래도 뺀질뺀질...안 나간다.

 

근데...성당이라면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무슨 조화?

안들려

뭐, 언젠가 다시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면 절에 가든가 성당에 나가게 될 듯 싶다, 근데...아직은 그 어떤 종교에도 매이고 싶은 생각 없다.

 

(모든 종교를 다 인정한다. 제발 자기 종교가 옳다고 싸우지 마시길.인류역사의 비극은 종교에서 비롯된, 결국은 종교전쟁이 대부분이라는 생각...)

열공

 

 

 

 

 

 

이날, 한쪽에서 결혼식 올리는 장면을 봤다. 운좋게도.

신나2

 

 

 

 

아름다운 신부와 신랑, 새로이 탄생하는 한쌍의 젋은 부부를 축복해주는 가족,친지들, 

그리고 주례 서시는 신부님.

 

이렇게 위대한 성당에서 올리는 결혼식이니만큼 잘 살아주시길...

하긴 카톨릭교도들은 이혼을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자녀들도 생기는대로 낳는다고...맞나?

사랑해5

 

 

 

 

역대 교황들의 이름

 

 

 

 

열심히, 졸졸 사람들 많은 곳을 따라 들어가봤더니...

헉! 기념품 판매소

흥4

 

 

 

아, 이럴땐 그 레코드 가이드님도 그립다.

분노2

 

 

 

 

 

하여튼 이밖에도 베드로 대성당에는 엄청나게 많은 조각과 교황의 동상과 제대와 그림들이 있으니 잠시 감상해 보시길...

위도 보고, 아래도 보고, 옆도 보고,뒤도 보고...벽도 보고 바닥도 보고 천정도 보고, 뭐..골고루 다 보세요.

 

 

 

 

 

 

 

 

 

 

 

 

 

 

 

 

 

 

 

 

 

 

 

 

 

 

 

 

 

잘 보셨나요? 제가 이제 아무 말도 안할 줄 아셨죠? ㅋ

호호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바티칸 시티의 재정은 전 세계 카톨릭 신자들이 보내는 봉헌금으로 재정을 충당한다. 우표와 기념품 등을 판매하고

미술관 입장 수수료와 출판물 판매 등으로 수입을 얻는다.

 

기념품 하나 살까...싶었는데 마땅히 사고픈게 없어 돌아나왔는데 같이 간 일행 중 한분이 꼭 뭐라도 사야겠단다. 그분은 뭐가 핑요해서 사는 게 아니라 헌금대신 이곳의 재정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싶으셨던 듯;;;;;

 

이런말 하면 누군가에게 혼나겠지만

이날 성당에 입장해서 각 제대마다 미사를 드리고 헌금하시는 분들 꽤 계셨는데

1인당 10유로씩만 헌금해도??  

(여기도 헌금에 대해서 세금내나? 바티칸시티 자체가 국가니깐 헌금 자체가 세금인가?? 알쏭달쏭...

파마

 

 

 

마지막으로 성당의 건축역사(네이버 백과, 위키 사전 등을 참조)

 

성베드로 성당은 그리스도 교회당 중 세계 최대의 규모를 갖는다. 324년 로마황제 콘스타티누스 1세에 의해 창건, 르레상스, 바로크 시대에 지금의 대성당이 신축되었다. 

창건시에는 사도 베드로의 묘위에 위치하는 5랑의 바실리카식 교회당이었는데 노후화되어 15세기 교황 니콜라오 5세때 전면 개수에 착수, 브라만테와 미켈란젤로가 수행한 역할이 컸다.

 

브라만테는 교황 율리오2세의 의뢰로 네 구석에 탑, 중앙에 반구단곡 돔을 가진 그리스 십자형 평면의 설계안을 준비하고, 그의 사망 후에는 라파엘로, A. da 상갈로가 건설주임이 되었다. 그러나 공사는 설계변경과 보강을 반복하며 진척되지 못하고, 1547년 교황 바오로 3세(재위 1534~49)가 미켈란젤로를 주임 건축가로 임명해서 준공하고자 하였다. 

 

그는 전임자 상갈로의 번잡한 계획을 배제해서 둔화된 중앙 교차부의 양괴감을 강화시키고, 동시에 동완부를 약간 연장해서 집중ㆍ바실리카 두 형식의 융합을 도모하였다. 지금의 대성당의 중핵부, 16개의 리브로 이루어진 둥근 지붕의 이중곡 구조, 거대 오더에 의한 균일한 외벽은 이안에 의거하고 있다. 그의 사망 후 1585~90년에 쟈코모 델라 포르타는 중앙 원개를 약간 첨두형으로 고쳐서 완성시키고, 17세기 후반에는 바실리카식 평면을 구한 반종교개혁의 이념에 따라서 카를로 마데르나가 신랑부()를 세 기둥만큼 연장해서 현파사드를 보강하였다. 

당내의 미술작품 중 청동제의 베드로 좌상(12세기), 나비젤라의 모자이크화, 청동제 정면문 등은 구 성당에 유래하는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제외한 다른 주요 작품은 바로크시대 이후에 속하며, 근대의 작품으로서는 현관랑 좌단의 만즈의 작품 입구문(1947)이 주목된다. 교황의 제단을 덮은 청동제 대천개(1624년경~33) 및 대성당의 가장 구석에 위치하는 베드로의 주교좌는 내장 조각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한 베르니니의 대표작이며, 전자에서는 4개의 거대한 꼬인 기둥이 우산형 지붕을 지지하며, 그 높이는 로마시내의 대저택 파라초 파르네제와 거의 같다. 현관랑 오른쪽 구석의 문은 〈성문〉이라고 하며, 25년마다 성년()에 교황이 스스로 개폐하고, 그것을 통과하는 자는 면죄를 받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16세기의 개수공사를 계기로 지하제실이 설치되었는데, 1940년대부터 50년대에 발굴조사가 진행되어서 구성당의 바닥면, 오래된 묘 등이 발견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종교학대사전, 1998.8.20, 한국사전연구사)

 

 

간단히 말하면 브라만테, 미켈란젤로,마데르나, 베르니니 등 당대의최고 예술가이자 건축가들이 100여년이 넘도록 이 성당을 열심히 지었다는거죠. 

 

PS. 에궁....오늘도 두시를 넘기는군요.흑..

빈둥

괜찮아요, 전 원래 올빼미체질이걸랑요.ㅋ

 

성베드로성당 이야기,,,원래 며칠 전에 반 이상 썼었는데...낮에는 워낙 전화가 많이 걸려와서 일하느라 못 마무리짓다가 이제서야 마무리짓습니다. 

성베드로광장 이야기도 함께 쓰려 했는데, 분량이 넘쳐...

스크롤의 압박감...

충전중

 

다음에는 성 베드로광장이야기를 쓰고요,맘 내키면 다른곳 이야기도...

영원히 머물고만 싶었던 오르비에또나 

가슴이 탁 트여 황홀하기까지 했던 스위스 리기 등...

그도 아니면 정말 잠깐 본 콜로세움이나 포로로로마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