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마을 이야기

고 3인데???

삼생아짐 2012. 5. 2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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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붉게 피던 할미꽃이 지고

 

꽃술만 바람에 흩날릴때 쯤이면 농촌에선 본격적인 모심기가 시작되지요.

 

 

며칠전부터 잘 삶아 놓았던 논의 흙이 가라앉고

 

비료기가 적당하게 잦아들어

 

드디어 어리고 빳빳한 푸른 모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답니다.

 

 

지난 주 금요일......도시의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네요.

 

- 엄마, 바빠?

 

- 응.

 

- 뭐하는데?

 

- 모 심어야 해.

 

- 그럼 들어갈께.

 

그런데......잠시 망설여집니다.

 

고3인데,한창 공부해야 하는데...이녀석을 오라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슬쩍 고민됩니다.

 

제 망설이는 마음을 알았는지 아들녀석...

 

- 엄마아, 나 집에 가고 싶어.

 

- 알았어, 들어와.

 

그래놓고 나니 괜스레 미안해지기도 하고, 또 대견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집에 오려고 하다가도

 

힘든 농사일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면 안온다고 하는데

 

바쁘다고 하니까 들어온다는 그 말이 왜 그리 기특하게 들리는지...

 

도시에 나가 공부하고 직장다니는 자식들도 어려서부터 집안 일을 거들어봐야

 

나중에라도 서슴없이 거든다는 말을 들은지라

 

일단 오라고 했습니다.

 

 

남편에게 아들이 들어온다고 하니깐 남편도 좋아합니다.

 

이녀석 데리고 모 심으면 되겠다구요.

 

한마디 덧붙여 봅니다,.

 

- 고 3인데??

 

약간 뜨끔한 표정, 그래도 좋은지 집에 다니러온 후배에게 자랑합니다.

 

고3 정도면 데리고 일할 만 하다고 남편 후배, 은근 부러워합니다.

 

 

가끔 어지럽다고 하소연하던 녀석,

 

지난밤에도 늦게까지 공부했다고 졸리다더니

 

그래도 모를 심는 아버지를 쫓아다니며

 

무거운 모 상자를 들어 기계에 대어주고

 

 

빈 상자를 모아 쌓아서 창고에 넣습니다.

 

 

올 한해 이녀석들의 역할은 무사히 끝난거지요.

 

올 봄, 모자리 할 때 이녀석들 털어서 파종기에 넣어주던게 제 역활이었는데

 

마무리도 결국 아들과 제 손으로 넘어왔네요.

 

 

군데군데 빠져심긴 곳은 바닥이 덜 굳어 해어지거나

 

물이 너무 깊어 잠겨버린 곳

 

혹은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곳이라

 

나중에 때워줘야 하지요.

 

 

우리보다 먼저 모를 심은 강씨 아저씨네...

 

혼자서 열심히 모를 때우고 있네요.

 

저 논을 줄을 따라 걸어가며 때워줘야 하는데

 

밟으면 모가 망가지는지라 조심조심...발을 깊이 빠져가며 딛다보면

 

다리에 알이 배고 허리도 무척 아프지요.

 

게다가 얼굴도 반사하는 물 빛에 비쳐 까맣게 그을고 눈도 부시지요.

 

사실 사람을 얻어 모를 때우기도 하는데 그 품값이 거의 쌀 한푸대값이라

 

때우는게 나은지 안 때우는게 나은지 셈 해 볼 때도 많습니다. 

 

이런거 생각하면 남는 밥 함부로 버림 안되는데......

 

가끔 함부로 버려지는 밥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서도...저도 찬 밥 먹기 싫으면 강아지나 소를 주곤 하지요.

 

(반성!!!)

 

 

심다보면 이렇게 귀퉁쪽은 놓아두고 심습니다.

 

기계를 돌리는 곳이지요.

 

-  여기는 어떻게 해???

 

- 기냥 놓아두지 뭐.

 

- 헐......

 

저를 놀리느라 시큰둥하게 대답하던 남편

 

 

그러면 그렇지, 맨 나중에 돌아가며 심습니다.

 

 

일요일날, 다 못 심은채 아들을 내보내고

 

오늘 새벽까지 모를 심는데 제가 나가서 거든다니깐 나오지 말라더니

 

어슬렁 어슬렁 논두럭에 앉아 모판도 정리하고

 

심는거 구경하고 있으니까

 

중간에서 심다가 모자른다고 모 한 판을 날라달라네요.

 

근데...이거 무게가 장난이 아니네요.

 

딱 한 판 날라다 줬는데 허리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이걸 어제 하루종일 했을 아들녀석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새삼 가슴이 짠해옵니다.

 

(물론 남편은 더 힘들겠지만요...

 

연실 뒤를 돌아보며 모를 심어야하니 목도 아플터인데......)

 

 

남은 모는 귀퉁이에 담궈놓고

 

 심겨진 모들이 어느정도 자리를 잡은 후에 땜빵으로 쓰일 예정이지요.

 

 

평소에 전화도 문자도 잘 안하던 아들녀석

 

 

꼭 용돈 떨어질때 쯤이면 카톡을 넣는데......

 

 

제 대꾸가 시크하다고 서운해 하는데...

 

이녀석이 집안 일 거들고 나가니 갑자기 용돈도 마구 주고 싶고

 

맛난 것도 많이 해주고 싶고

 

해달라는대로 다 해주고 싶은 한없이 너그러운 마음이 되네요.

 

아...부모로서 너무 속보였나봐요.

 

 

아들녀석에게 물어보았습니다.

 

- 야, 남들은 고3이라고 일도 안시키고 심부름도 안시키고 부모들이 눈치보며 상전처럼 모신다는데

 

넌 들어와서 이렇게 일해서 어떡해???

 

 

아들녀석, 씨익 웃으며 대답합니다.

 

- 고3이니까 하는거야, 지친 일상에 이렇게 푸른 생물도 보고 좋잖아.

 

 

역시 농촌에서 태어나서 농촌에서 자란 녀석들은 다른가 봅니다.

 

 

그러고보니...고슴도치처럼 자식 자랑하는 엄마가 되어버렸네요.

 

하지만...

 

농촌에서 부모가 힘들게 일하며 뒷바라지 하는데

 

자식들이 그 부모의 정성과 마음을 몰라주고

 

농촌을 외면하면 얼마나 서운할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위안삼으면서도 어쨌든 그래도 고3인데...

 

대한민국에서 고3 수험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부담스러운지 잘 아는지라

 

마음 한구석으론 계속 미안 미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