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주민들과 함께 선진지견학으로 제주를 갔다가
반가운 분을 만났습니다.
'매일아침 밥상을 차리는 남자'로 유명하신
오성근님
한때 텔레비젼 고정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하셨었는데
제남편과는 약 15년전쯤
충북 괴산의 자연농업 학교에서 만나 인연이 되어
그렇게 형제처럼 지내고 있지요.
저희 집에도 꽤 여러번 다녀가고
간간이 연락을 주고 받다가
이제야 비로소 제주에 정착했다는 소리를 듣고
잠시 짬을 내어 만났지요.
멀리 서귀포 제주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표선면 하천리에 '둥구나무'라는
작은 찻집과 조용히 머무를수 있는 집을 내셨어요.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잔디가 깔린 탁트인 넓은 마당과
띠를 엮어 만든 나즈막한 지붕이 정겹게 다가옵니다.
오성근님의 무남독녀 외동딸 다향이.....
반갑게 맞아주네요.
재작년에는 아빠인 오성근씨와 전국일주를 하는 길에
저희집에 들러 잠시 머물다 가기도 했는데
자녀교육관이 남다른 오성근씨 내외분덕에
지금 홈스쿨링을 하며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답니다.
학교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놀며 공부하는 중인데
친구가 없어 외롭지 않을까...
내성적인 성격이 되면 어찌하나 고민했는데
거리낌없이 맑고 또 밝고 자유로운 모습이 그런 걱정을 단숨에 날리게 하네요.
집안 여기저기에 꽂혀진 책들이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폭넓은 사고를 배우게 하구요
성근씨 내외가 교제하고 있는 예술가들과 각계 각층의 여러분들이 다향이 인생의 스승이지요.
이쁜 고양이 한 마리를 벗삼아 지내고 있는데
고양이 알러지가 있는 오성근씨와 내둥 키우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다투고 있네요.
친구삼아 형제삼아 기냥 키우게 내버려두지 왜 구박하냐고 했더니
고양이 털 때문에 성근씨 매일매일 약을 먹으면서 버티고 있다네요.
팔을 걷어서 보여주는데...장난이 아니네요.
그래도 다향이의 친구이기에 차마 내칠 수는 없나봅니다.
역시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지요.
요즘은 녹차를 따서 덖는다고 하는데
5시간 따도 양파자루 반도 못 채운다면서 다향이 살짝 투정을 부리네요.
그래도 다향이가 따는 실력이 기중 젤 낫다네요.
저보고 지금 나오는 녹차잎은 우전이니깐 100g에 십만원정도 한다면서
마음껏 따가라네요.
녹차나무를 직접 보니 그 수고로움이 정말 얼마인지 알겠더라구요.
아빠가 수고비 주시냐고 했더니 한달에 약 10만원정도 받는다네요.
그 돈으로 소녀시대 사진도 사고, CD도 사고...
또래 아이들답게 내둥 소녀시대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저에게 집안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주고
조잘조잘 떠들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어쩌면 그리도 이쁜지요...
다음달 부터는 표선면 가시리권역에서 운영하는
영화동아리에서 영화제작에 관해 배울거라는데...
저희가 바깥을 둘러보는 동안 다향이가 치는 피아노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와 참 듣기 좋았답니다.
이 돌담의 정체는 외부 화장실 즉 쉼터(?)지요.
돌 많은 제주답게 돌로 쌓은 건물이 신기하다 했더니
성근씨의 부인인 정희씨는 마치 요새내지는 감옥 같다고 평을 한다네요.
그래도 열어보면 실내는 수세식으로 깔끔하고 편안해보입니다.
이제 귤은 모두 따 버리고
아주 작은 금귤과 커다란 하귤이라는 귤만이 더러더러 남아있어
이곳이 제주임을 실감케 해 줍니다.
나무에서 직접 따 먹는 금귤의 맛...
신선하고 달콤하네요.
과일귀신인 제가 혹하니깐 다향이가 얼른 다가와서 마악 따주네요.
넓은 마당 여기저기에는 이름 모를 나무도 많고
꽃들도 많은데
얘는 매실이라네요.
이제 마악 열매 맺은 매실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강원도에서는 볼 수 없는 매실이지요.
이 꽃은 제주 지방에 많은 해무
바다의 안개꽃이라고 하나요...
유채꽃과 함께 제주에서 눈에 많이 띄는 꽃이었습니다.
이름이 '나무'라 했던가요
삽살개도 다향이의 좋은 친구지요.
한창 쌓고 있는 돌담들
누구나 와서 쉬었다 갈 수 있는 조용한 방...
나무로 이루어져 있어 취사는 불가능하지만
조용히 쉬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곳입니다.
성근씨는 둥구나무에서 모든 것을 비워가는 곳이라 했지요.
다실입니다.
갓 볶은 원두커피향이 은은하고
직접 따서 덖은 녹차는 마치 구수한 현미 비슷한 향이 나면서
머리를 맑게 해 주네요.
성근씨가 정성껏 내려주는 녹차를 여러잔 마시고 있다보니...
일어서고 싶은 마음이 홀연듯 사라집니다.
그냥 조용히 머물고 싶은 곳...
세상살아가면서 부대끼던 모든 시름과 갈등과 번뇌마저 떠나보낼 수 있을 듯 싶은
성근씨와 정희씨와 다향이가 고요하게 살아가고 있는
성근씨의 오랜 꿈을 이룬 둥구나무를 돌아보니
어느덧 저마저 기냥 이곳에 눌러앉고픈 마음이 생겨버립니다.
오랜 방황과 탐색끝에 뿌리내린 성근씨네의 터전이
참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둥구나무를 떠나오면서 보니 이미 다 져버렸다던 유채꽃밭이
아직 생생하게 피어있는 곳이 있어
사진을 찍었네요.
원래 꽃밭에서는 꽃과 함께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했는데
울 최후의 보루, 얼릉 들어가 서라고 재촉을 해서
어쩔 수 없이 모델을 섰네요.
결국 질끈 눈을 감은 사진이 되어버렸지만요.
사진을 찍는데 익숙해서 찍히는데는 여전히 어설프고 어색하네요.
제주에서 돌아온 지 어느덧 일주일이 흘렀지만...
여전히 둥구나무에서의 그 한때가 그립습니다.
제주에 가면 가 볼 곳도 많고 둘러볼 곳도 많지만
둥구나무에 꼬옥 한 번 들러서 성근씨가 직접 덖은 녹차를 마셔보셔요.
그 맛과 향이 지금까지도 제 입안에 감돌고 있답니다.
(성근씨가 선물로 주신 그 녹차는 아직 아끼고 개봉을 안했네요.
제주의 그 바람이 그리워질때 쯤 개봉해서 조용히 마시려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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