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성장일기)

나는 병균이 아니야!!!

삼생아짐 2011. 1. 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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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발생 한달이 지나도록 여전히 구제역 발생 소식이 들립니다.

구제역 최후 신고후 약 2주가 지나야 종식으로 본다는데(잠복기가 2주라네요), 매일 아침마다 새로 신고소식이 들려오니 한숨만 나옵니다.

우리 마을의 방역강도도 더 세졌습니다.

아침 여덟시부터 오후 다섯시까지 3교대로 돌아가며 마을 입구를 지키다가 이제는 오후 5시가 넘으면 우리 마을은 굵은 쇠사슬로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를 차단해버리고, 자물쇠를 걸어 아무도 드나들지 못하게 합니다.

 

 

 

소독약을 뿌리자마자 바로 얼어버린 앞창문입니다. 

물론 제 남편도 교대로 나가서 방역활동을 하긴 하지만, 추운곳에서 하루종일 떨며 마을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힘들까 싶기도 하네요. 게다가 추위는 얼마나 극성인지, 이곳은 산간분지라 그런지 유난히 더 춥습니다. 남편이 당번으로 나간 날도 영하 십몇도를 오르내리네요, 하긴 작년에 이곳 날씨가 영하 28.8도였던 기록도 있네요.

 

저는 마을 정보 센터로 출근하고, 맏딸은 면사무소에서 방학중 알바를 하기에 매일매일 출퇴근해야 하는데...

나올때는 모르겠지만 들어갈 때마다 차 밖은 물론 차안과 사람까지도 소독약세례를 받습니다.

수향넘, 어느날부터인가 머리는 물론 옷꺼정 흠뻑 젖어서 물을 뚝뚝 흘리며 들어옵니다.

 

옷을 벗어서 바닥에 눕혀놓는데, 그야말로 소독약으로 흠뻑 젖어있습니다. 아마도 지역내에서 발생하였기에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면사무소에서 나오는거라 더한 듯 싶기도 합니다. 아저씨가 되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뿌렸다고 말하지만 녀석, 시무룩합니다.

 

수향넘 ; 나는 병균이 아니야!!!

          나는 세균이 아니란 말이야!!!

 

소를 기르는 저희도 그런데, 아무 상관없는 도시분들이 얼마나 짜증낼까, 그 마음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소독약에서는 약간의 바나나향이 납니다. 혹 사람에게 직접 뿌려 해가 되진 않나 걱정스러워 했더니, 살충제는 위험해도 살균제는 괜찮을거라고 말하는데, 논에 트랙터로 약치는 것마냥 사람한테 뿌려대니, 좀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미 구제역은 너무 많이 퍼져버려서, 이젠 소독만으로 한계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예방백신 부작용이 있더라도, 수출하는 데 문제가 있더라도, 당장 소를 팔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예방백신 접종으로 살처분 위기라도 모면한다면, 그래도 희망이 있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텅 빈 우사를 바라볼 자신도, 녀석들을 묻을 자신도, 그녀석들을 집 주변에 묻어놓고 농사지으며 그 물을 먹을 자신도 없습니다.

 

이미 묻어버린 농가와 통화를 하니 주변에서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게다가 지하수라 물을 먹지도 못하겠고, 살 길도 막막하다고 합니다.

 

너무 많이 묻어버려서, 이미 더 묻을 땅도 없다는데, 설사 묻을 땅이 있다 하더라도 토양오염과 수질오염은 어쩔 것이며, 기온이 올라가면 혹 발병할 지 모르는 질병위험은 어찌하나요, 그때는 가축이 아니라 사람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로부터 전쟁후에는 기근과 전염병이 돌았던 것이 아니었던가요.

 

샤워를 하고 나온 수향넘, 시무룩하게 말하네요.

 

춘천에 교회언니랑 얘기하는데, 춘천은 정말 아무도 이런 사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대요.
그래서 정말 화가 난다고.

그러면서 수향넘 ; 근데 생각을 해봤어, 내가 만약에 여기 안들어와있었더라면..
우리집소들은 무사하겠지. 하지- 다른 마을에 퍼지지 않았음좋겠다,  이런 생각 갖고있겠나 하고....

 

그러길래 제가 말했죠.

 

삼생아짐 ; 화날거 뭐있어,세상이 그런걸...
자기랑 관계없는 일에는 다들 무심하잖어, 소독하는거 불편해하고...
그게 세상살이지...
그래서 억울하면 출세하란 소리 나오는거고..
그나마 좀 더 사람 살기 좋은 세상 만드려면, 출세한 사람들이 못한 사람들 돌아봐주는 배려는 그래서 필요한걸.
내가 너희들한테 도움을 받는 사람보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란 것도 그 뜻이지. noblesse oblige 이 뜻을 새겨봐.
매일매일 허송세월하면 이 말을 실천은 커녕 실천할 수 있는 기회조차 잡을 수 있겠어??

 

그니깐. 모두 겪어보지 않음 모르는거야. 남 탓할 것도 없고.
농사꾼의 자식이니깐 너만이라도 농촌 사정 이해하라는 게 달리 나와.우리나라 사람들 70프로 이상이 농촌출신일텐데 도시가면 도시사람들 되어 농촌은 잊어버리잖어.

 

수향넘 ; 흠.
응응. 맞아, 다들 시골출신이면서!!!! 쳇-

 

결국 구제역이 세상사는 이야기로까지 번져버려 뜻하지 않게 아이들한테 잔소리가 되고 말았지만, 참 씁쓸합니다.

 

 

계속 번식우를 하다가 최근에 네마리를 비육시켜 설에 맞춰 내보내려 했는데, 그 녀석들을 팔아야 딸아이 대학 등록금도, 둘째 아이 기숙사비랑 학비도 대는데, 어긋나 버렸네요. 팔기는 커녕, 제발 살아만있어 달라고, 녀석들을 볼 때마다 비는걸요.

 

얼마 안 기르는 저희도 그런데, 몇 만 마리씩 기르는 집들은, 또 백마리가 넘는 소들을 묻어버린 집들은 어떤 심정으로, 어찌 살런지 안봐도 훤합니다.

 

며칠전 친정엄마가 전화를 하셨네요.

철저한 유교집안이라 교회에 나가는 것도,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도 조금(?)의 편견이 있으셨던 분인데,

걱정끝에 저희 시어머니께 기도 좀 많이 해달라 그러라고 말씀하시네요.

이제서야 저희친정어머니도 심각성을 아시나봐요.

하긴 저의 친정어머니도 저희가 소를 기르지 않으면 구제역이란 이런 가축질병에 관심이나 있으셨겠나 싶네요.

 

걱정만 하고 있으면 될게 아무것도 없다고, 잊어버리고 늘 하던대로, 조심하며 산다고 하지만...

오늘도 컴앞에 앉으면 역시나 구제역 기사를 뒤지게 되네요.

정말 언제나 끝날런지......

마지막 희망이 백신예방접종이란 생각밖에 안드니, 예방접종할 날만 기다리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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