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갖가지 속이란 속은 다 썩이던 울 장남이
문득 저한테 묻대요.
영재넘 ; 엄마, 살아오면서 감동의 눈물이나 감격의 눈물 흘려본 적 있어??
삼생아짐 ; 글쎄, 별로 없는 거 같은데...
영재넘 ; 그럼 엄만 언제 눈물 흘려??
울어본 적은 있어??
삼생아짐 ; 글쎄, 것두...별로 없는거 같은데??
영재 ; 바보같애. 엄마, 감격의 눈물도 흘려본 적 없다니...
내가 감격의 눈물 흘리게 해줄께.
이번에 꼬옥 일등해서 엄마 감격의 눈물 흘리게 해줄께.
하더니, 녀석, 정말 요번 시험엔 열심히 공부하네요.
잠 많은 녀석이 새벽에 모닝콜 맞춰서 혼자 일어나 공부하고
밤에도 늦게꺼정 문제 풀어보고...
게다가 선생님들이 내준 시험지도 꼬박 챙겨오고...
예전엔 선생님들이 내준 시험지나 공과금 영수증을 제대로 가져온 적이 없어
저한테 무지 혼났거든요.
다른애들은 급식비를 다 냈는데 녀석만 안 냈다고 연락오고...
(요즘엔 스쿨뱅킹으로 통장에서 바로 빠져나가니깐 신경이 덜 쓰이지만요.)
심지어 학교가서 책가방 안 가져갔다고 전화오고...
(요즘은 민재넘도 닮아가요, 지난번에 학교가서 가방 안 가져갔다고...)
게다가 제가 공부좀 하라 그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며 오히려 대들기만 하고...
영재넘 ; 엄마, 옛날엔 내가 너무 바보같았어.
애들이 자기네도 공부 안 한다고 나보고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말하는걸
난 그대로 믿었어.
근데 나중에 알고보니깐 걔네는 새벽두세시 까지 공부했대.
삼생아짐 ; 엄마가 말 할 땐 안 듣더니...
영재넘 ; 그땐 내가 철이 없었지.
삼생아짐 ;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네요.
울 아들 입에서 공부하겠다는 소리가 나오는 날요...
게다가 밤에도 늦게꺼정 공부해서 오히려 제가 자라고 했어요.
영재넘 ; 살다보니 엄마가 공부하지 말라는 날도 있네??
삼생아짐 ; 그러게말야.
근데...시험공부 하면서 졸려운지 조금 힘들어하대요.
초저녁이면 곯아떨어지는 녀석이
밤 열한시꺼정 하고 있으니 졸려울 밖에요.
민재넘 ; 형, 내가 재밌는 얘기 해줄까?
영재넘 ; 뭔데?
민재넘 ; 있잖아, 저번에 엄마가 할머니, 할아버지들한테 컴교육할 때...
헐~~~
삼생아짐 ; 하지맛!!
영재넘 ; 괜찮아, 해봐. 엄만 내가 조는 게 좋아??
공부도 좀 쉬면서 해야지 머리가 흐려져서 집중 안된단 말이야.
민재넘 ; 있잖아, 카메라 메뉴 설정하는데
엄마가 '움직임이 많은 아동을 찍으실 때는' 이렇게 해야하는데
움직임이 많은 야동을 찍으실때는......
그랬다???
영재넘 ; 움직임이 많은 야동을 찍으실 때는??????
푸하하핫~~~~~~
이넘이 뭔 상상을 하는지 웃음을 터뜨리더니...
한번 쉬었다 다시 웃음을 터뜨리고...
아예 웃겨 죽겠다고 뒤집어져요.
내 참...
한참을 웃고 나서 잠이 완전히 달아난듯...
눈 반짝반짝 해져서 공부하는 듯 문제집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풀더니
갑자기 씨익 웃으며...
영재넘; 엄마, 부부관계가 뭐야?
삼생아짐 ; 그건......뭐야, 공부하다 말고 그게 뭔소리야??
시험공부나 하지, 왜 또 엉뚱한 상상하구 그래???
영재넘 ; 시험범위야. 여기 책에 나왔잖아.
부부관계에 의해 정자가 난자에 침입하여 수정이 되면 세포분열을 하면서
자궁쪽으로 이동, 수정 후 1주일 후에 자궁벽에 착상하여
임신이 이루어진다.
삼생아짐 ; 어디봐??
헐~~
하필이면 이넘 과학 시험범위가 '생식과 발생'이네요.
거기에 정말 고대로 그런 말이...
민재넘 ; 엄마, 아기는 어떻게 생겨??
그리고 아기는 어디로 나와??
이 두 넘들이 오늘따라 짠것도 아니고,
나란히 턱괴고 앉아 두 눈 말똥말똥 뜨고 제얼굴만 빤히 쳐다보네요.
딸아이한테 이야기하는 것은 넘 자연스러운데
사내넘 두 넘이 나란히 앉아 빤히 쳐다보며 연달아 질문을 해대니...
조금 곤혹스러운데...
어떻게 대답을 해줘야 하나, 머릿속으로
제가 알고 있던 지식과 언어구사력과 표현방법 등이 마악 왔다갔다...
총동원되려는 순간...
영재넘(씨익 웃으며); 아기는 엄마랑 아빠랑 결혼한 사람들이 손잡고 자면 생겨.
민재넘 ; 그럼, 나두 엄마랑 손잡고 자면 아기 생겨??
삼생아짐 ; 헐~~
영재넘 ; 손잡고 잠만 자면 되는게 아니구 한바퀴 굴러야돼.
그럼 학이 애기를 물어다줘.
민재넘 ; 그럼 나두 엄마랑 손잡고 자면서 한바퀴 구르면 학이 애기 물어다줘??
영재넘 ; 미친X아, 어른들 한테나 물어다주지.
너같은 어린애한테는 안 물어다줘.
근데 요즘은 결혼도 안 하고, 어른도 덜된 애들이 손잡고 자기도 하는데
학이 착각을 해서 애기를 물어다주기도 해.
민재넘 ; 응
민재넘,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고개를 끄덕끄덕...
영재넘, 저한테 한쪽 눈 찡긋하면서 윙크하구요.
녀석과 눈 마주치고 웃고 말았네요.
유들유들한 녀석......
언제 이렇게 자랐는지......
우여곡절끝에 과학 공부는 끝내고, 도덕 공부시간...
영재넘 ; 엄마, 아버지가 보험료 타내려고 아들 손가락 잘랐대.
그럼 그게 어떤 현상이지??
삼생아짐 ; 물질만능주의거나 황금 숭배주의 아닐까??
아님 인간성 상실이거나...
영재넘 ; 그건 가치전도라는 거야.
삶의 진정한 가치를 뒤바꾸어 버린거지.
엄만 학교 다닐때 도덕공부 제대로 안했어??
삼생아짐 ; 이넘아, 그걸 아즉꺼정 기억하고 있냐??
영재넘 ; 도덕적인 사람이라면 기억해야지.
엄마, 내가 어제 학교들어가면서 기가책보며 외우고 들어갔더니
선생님들이랑 애들이 놀라는 눈치시더라.
삼생아짐 ; 그래서, 선생님들이 해가 어느쪽에서 떴냐고 안 물어보시디??
영재넘 ; 응. 그나저나 엄마,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하고 게시판에 올릴거지??
삼생아짐 ;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영재넘 ; 뻔하지,뭐. 근데 나 잘 나온 사진으로 올려야해,알았지??
이젠 이미지관리도 좀 해야하거든.
내참...
녀석, 요즘 철이 좀 드는 듯 싶기도 하고...
또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사춘기 아들을 둔 엄마라
늘 마음이 조마조마하네요.
그래도 작년보다는 올해들어 훨씬 의젓해 졌어요.
지난번에도 제가 늦게 오니까 김치볶음밥을 해서 동생을 먹이고
제것도 따로 차려놓구요...
수향넘 나간 자리를 나름대로 녀석이 채워주네요.
부모랑 자식사이는...그런가봐요.
넘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 말고
자식이 자랄 때를 기다려주는 것도 부모의 몫인가봐요.
2년동안 녀석이 하는대로 꾸욱 참고,
삐뚤어지지만 말라고 맘속으로 조바심도 많이 내고...
울 최후의 보루한테 이르기도 많이 하고...
심지어는 녀석의 성적이 한없이 뚝뚝 떨어지니깐 주위의 손가락질도 받았지만...
이제 조금씩 녀석에게서 스스로 공부하겠다는 소리와
엄마를 배려하는
나름대로 철든 모습들을 하나둘씩 보게되니깐
이렇게 좋을 수가 없네요.
부모는 자식의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고
자식을 위해서는 하나뿐인 목숨도 내어놓는다는데...
전 녀석이 공부하겠다는 그 말만 들어도
이렇게 행복하니...
비록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학생으로서의 녀석의 본분을 조금씩 찾는 것 같아
그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하네요.
저도 어쩔수 없는 대한민국의 엄마네요.
자식에 대한 기대가치가 높은 엄마말예요...
PS. 그나저나 정말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하고 올렸는데...
녀석기대와는 달리 사진이 영 꽝이네요.
아마...웃으면서 찍어 그런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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