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한 이후로 단 한번도 공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슬슬 잔소리가 시작되려던 참에...
도시에 계신 할머님댁으로 일주일간 보내기로 했어요.
외갓집이나 큰집, 친척들이 모두 도시에 있어서
방학하면 우리집 녀석들은 도시로 가죠.
특히 기말고사 죽 쒀온 영재녀석, 제 아빠 눈치 슬슬 보다가
얼른 짐 꾸려서 줄행랑...
(기말고사 1등하기로 약속하고 핸폰 사줬거든요.
성적표 나오자마자 핸폰 얌전히 아빠 책상에다 자진 반납...)
녀석들 데려다주려고 현관을 나서는데
수향넘 ; 엄마, 쟤네 가고 나면 빨래는 누가 걷지??
영재랑 민재(동시에) ; 누나가!!!
여행가는 동생들한테 빨래 걱정 시키는 수향넘이 조금 얄밉던 참인데...
가던 도중에 눈발이 날렸어요.
영재랑 민재넘, 동시에 : 눈이닷!! 눈 온다!!!
소리지르길래 녀석들이 눈오길 기다리던 참이라 신나서 그런가보다 했더니...
쫌있다 뒷좌석에서 핸폰으로 통화하는 소리가...
영재넘 ; 누나, 눈 오니깐 빨랑 빨래걷어!!
민재넘 ; 누나, 하나하나 펴서 널어야돼. 안그럼 냄새나고 잘 안 말라.
삼생아짐 ; 헐~~
기냥 웃고 말았어요.
아무래도 제가 울 아들들한테 너무 집안일 부담을 시켰나봐요...
녀석들, 톨게이트 지나는데 제가 능숙하게 차를 대고 영수증을 뽑고
돈을 내니깐...
영재, 민재 ; 와~~ 엄마, 운전실력 많이 늘었다!!!
뒷좌석에서 박수를......
톨게이트에서 돈 받던 아줌마, 울 녀석들 박수소리랑 떠드는 소리에 웃으며 쳐다보고...
(울 최후의 보루, 녀석들이 집게랑 자루 긴 바가지 갖고 다니라며 저 놀리니깐
하이패스 사더라구요. 울 최후의 보루 차 몰땐 기냥 지나가라고...)
민재넘, 제가 돈을 내고 거스름돈을 받으니깐 자기 달래더니
불우이웃돕기 모금함에 돈을 넣어요.
그러자 모금하던 분들이 사랑의 열매를 네개나 주네요.
민재넘, 학교에서 천원주고 산 사랑의 열매 잃어버렸는데
이제 이거 달고 가면 되겠다고...좋아하네요.
한참 가던 녀석들...
영재 ; 엄마, 나도 운전하고 싶다. 운전 어렵나??
민재(불쑥) ; 엄마, 개나 소나 다 한다는 게 쉽다는 말이지??
삼생아짐 ; 응.
두녀석 (동시에 큰소리로) ; 사랑은 개나 소나 다한다지만
나는 개소만도 못한 바보야
사랑은 개나 소나 다한다지만
나는 개소만도 못한 바보야 헤이!!
삼생아짐 ; 그건 또 뭔 노래냐??
녀석들 ;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나온거야,엄마.
엄마도 텔레비젼 좀 보고 문화 생활 좀 해.
아빠랑 세대차이 느끼지 말구.
패떳도 모르는 무식한 엄마.
지난 번 패밀리가 떴다 프로그램 작가가 전화했는데
본 적 있냐 그래서 모른다고 했더니
기막히다는 투로 위원장님 전화번호 알려달라고...
그 얘기 했더니 녀석들이 울고불고 난리치면서
다시 전화해서 안다 그러라고...
그 후부터 녀석들이 패밀리가 떴다 프로그램이랑 일박이일 프로만 나오면 절 불러대네요.
드뎌 할머님댁에 내린 녀석들...
민재넘 ; 엄마, 할머니 용돈 드려야지.
우리가 있을 동안에 돈 쓰시잖아.
삼생아짐 ; 영악한 녀석...
어머니께서, 허허 웃으시네요.
근데...조금밖에 못 드렸어요......
한참 힘든 때라...
민재넘, 제가 돌아서 나오는데 뽀뽀하고 와락 끌어안더니
제 옷깃에 사랑의 열매를 달아주며 조심운전 하라고...
아주아주 보고 싶을때 전화 하겠다고
보고 싶어도 꾸욱 참겠다고 하면서 옷을 벗어 착착 개서 정리하고...
할머니 옆에 나란히 앉아서 바이바이 하는 거 보면서
떠나왔어요.
근데 녀석들이 있을 땐 그렇게 정신없고 지저분하던 집안이
하루종일 지나도 여전히 깨끗하고
빨래마저 없어서 즐거워야 하는데...
어쩐지 텅 빈 것처럼 허전하고, 보고 싶고...
수향넘 ; 엄마, 엄마가 나만 낳고 영재랑 민재 안 낳았으면
우리 정말 쓸쓸했을거야, 그치??
삼생아짐 ; 그러게말야...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녀석들이 없는 지금, 반찬걱정이며 간식걱정이며
집안일이며 모든 것이 반으로 줄었지만...
정말 허전하고 보고 싶네요.
저지레하고 말썽 부리고 싸울 땐 눈에 거슬리더니
이렇게 텅 빈 것처럼 느껴지고 집안이 온통 썰렁하게 느껴져서
이래서 가족이 소중한가보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늘밤이 지나면 2008년이 끝나는데
수향넘 말마따나 녀석들, 해가 바뀌고 나서야 보겠네요.
새해에도 건강하고, 서로서로 사랑하고, 공부도 열심히
운동도 열심히, 그리고
집안일도 열심히 하거라, 애들아~~~
사랑은 개나 소나 다 한다지만...그래도 정말로 사랑한다, 울 아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