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성탄무렵

삼생아짐 2008. 12. 26.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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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적에 우리집의 성탄무렵은 늘 쓸쓸하기만 했습니다.

 

종가집인데다가 유난히 조상을 모시는 일에 철저하셨던 아버지인지라

 

성탄무렵 교회에 간다거나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다고 외출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죠.

 


거리에 캐롤송이 울리고

 

크리스마스 트리가 곳곳에서 반짝이고

 

그리고 친구들은 교회나 성당에서 공연도 하고

 

선물 받을 생각에 들떠 있어도

 

전 집에서 외출도 못한 채 조용히 오빠와 동생들과

 

책을 읽고 있어야했죠.

 

(아, 물론 아빠가 주무시면 몰래몰래 오빠랑 동생이랑 포커도 치고,

 

고스톱도 치고...바둑도 두고...

기냥 하면 재미없으니깐 용돈 걸고 놀았지만요.)

 

그래도 마음 한구석엔 흥겹고 떠들썩한 성탄 분위기를 좀 즐겨보고 싶었는데...

 

시집오기 전까지 결국 성탄절의 흥겨움은 못 누려봤어요.

 


반면 시어머니는 교회에서 권사 직분을 수행할 정도로

 

신앙심이 투철하신 분이라

 

시집오고 나서는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야만 했는데...

 

이 신앙도 부지런하거나 맘속에 의혹이 없어야만 지켜낼 수 있는 것...

 

젊어서 그랬는지, 아님 내 인생에 넘 자신감이 넘쳤는지..

 

신앙에 매달리는 건 인간 스스로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거라고

 

입으로는 하나님을 말하면서 주중에는 다른 사람들을 헐뜯고

 

나쁜 짓을 일삼는 사람들을 경멸하면서...

 

그렇게 신앙을 멀리했네요...

 

게다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울 최후의 보루랑 주일날 교회에 안 가려고 갖은 꾀를 다 썼죠.

 


울 최후의 보루, 어머니가 주님을 모시라 그러면

 

자기는 늘 마음속에 주(=술)님을 모시고 산다면서

 

한술 더 떠 어머니 속을 긁어놓고...

 

하여튼 종교에 관한 한 울 최후의 보루나 저나 울 어머니한텐

 

사탄의 꾀임에 놀아나는 탕아였지요.

 

 

근데 우리집 녀석들은 할머니의 철저하신 신앙심 영향을 받아서인지

 

아님 어머님의 변함없는 기도 덕분인지

 

단 한 번도 주일날 교회에 빼먹지 않고

 

큰 녀석은 그 바쁜 와중에 주일학교 교사도 하고...

 

이번 크리스마스 공연때 사회도 보고, 반주도 하고, 아이들 지도도 하고

 

참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데...

 


요번 크리스마스 이브날 공연보러 오라고...

 

 

 못 갈 것 같다 해놓고,

 

아이들 공연하는 교회에 나갔더니...


녀석들이 저를 발견하고 넘 반가워하네요.

 


민재녀석도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구요.

 

 

다른 분들도 저를 반기시며

 

이제 교회에 자주 나오라고 다들 손을 잡아주시는데...

 

정말 제가 집나갔다 돌아온 탕아마냥 느껴지대요...

 

(어떤 분은 우리 아이들 본받으라고 대놓고...)

 

 

어쨌든 교회에 나갔으니 잠시 눈을 감고 기도하는데...

 

아이들의 낭랑한 캐롤송을 들으며 마음속에 힘들었던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네요.

 


 

글쎄요, 어쩌면 살아오면서 여지껏 남한테 싫은 소리 안 하고

 

거짓말 안 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제가 원하는 바를 이루어가고,

 

 늘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어쩐 일인지 요즘은 참 힘들더라구요.

 

 

건강도, 삶도...하여튼 모든 게 예전 같지 않아요.

 

나이탓으로 돌리기엔...넘 무책임하고...

 

정신없이 바삐 살아온 삶을 많이 돌아보게 되네요.

 

 

마을일을 맡아 해 오면서 부쩍 늘어버린 남편의 흰머리와

 

교회나가기 싫어 뺀질거리는 공통점을 빼면

 

20년동안 살아오면서 비슷한 점이라곤 하나도 없어 자주 다투었던 남편과의 생활도

 

돌아보아지고...

 

이제 그만큼 몸속에 주(=술)님을 많이 모셨으니 이젠 지칠때도 된 듯 싶어

 

아이들말마따나 신앙생활을 한 번 해 보는 게 어떠냐고 권하고 싶어지는데...

 

 

울 녀석들 ; 엄마, 이젠 교회 나오실거죠??  

 

물어보길래 그래버리고 말았네요.

 

삼생아짐 ; 니네 아빠 나가면...

 

 

오기와 오만으로 살기에 이 세상은 너무 팍팍하고...

 

어딘가 마음 한 구석, 위로가 될 수 있는 그런 곳이 있다면

 

남은 인생, 좀 덜 힘들지 않을까...그런 생각 드네요......

 

그것이 기독교든 불교든 유교든...천주교든지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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