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엄마 아들 더위 먹었대요! 응급실 다녀왔어요.
방학을 맞아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지역 내 리조트로 간 막내아들이 전화를 했다. 한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무더운 올해 여름, 우리 지역은 자그마치 41도를 찍었다. 그런데 이 더위에 바깥 근무를 해야만 한다고 했다.
아이가 근무하고 있는 직장은 리조트내 야간 주점이라 손님들이 있건 없건간에 가게 입구에 서서 앉지도 못하고 영업이 끝나는 12시까지 꼬박 서서 자리를 지켜야 한단다.
24시간 에어컨을 켜고 생활해도 너무 더워 숨이 탁탁 막히는데, 그동안 이 막내아들 녀석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학기 중에 공부하느라 힘들었을 터인데 방학동안 밀린 잠도 자고, 여행도 다니고 독서도 하고...그렇게 생활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데 그런 여건을 만들어 주지 못하는 부모라 더 미안하고 그랬다.
다행이도 아들이 병원에 다녀오고 난 후에는 손님들이 없을 때에는 무조건 밖에 서 있지 말고 시원한 곳에 들어가 쉴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하고, 컨디션도 자주 체크해 주고 원하면 실내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옮겨주겠다고 물어보기도 하면서 나름 많이 신경을 써 준다고 고마워한다.
요즘 대학생들은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내남없이 아르바이트로 다음 학기 생활비를 벌어야 하고, 그래서 방학이 시작하기도 전에 아르바이트 구인 광고를 찾아보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고, 재학증명서를 떼고, 가족관계 증명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거쳐 단 한 달동안의 임시직일지라도 나름 최선을 다해 알바시장에 뛰어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손에 쥐는 돈은 노동시간에 비해 정말 형편없이 적다. 게다가 예전부터 최저임금이 정해져 있어도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는 고용주도 있었다.
큰 딸도 대학교 다니는 4년 내내 한순간도 아르바이트를 놓지 않았었다. 아르바이트 할 시간에 더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 타라고 얘기했건만 학비는 부모님이 대주시더라도 용돈이랑 생활비는 자기가 벌겠다며 딸아이가 거쳐 간 아르바이트 자리는 꽤 여러 가지가 된다.
베이커리에서 빵팔기, 베트남 쌀국수집에서 서빙하기, 검정고시 학원에서 강의하기, 입시학원에서 강의하기, 과외 기타 등등 그래도 통계학과를 나왔던지라 나중에는 입시학원에서 학원강사로 꽤 괜찮은 보수를 받고 일했지만 졸업하고 결혼 준비하는 동안에 예고도 없이 한순간에 잘리고 말았다.
빵집에서 오후 6시에서 밤 열한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는 근무하는 시간에는 절대로 자리에 앉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집에 오면 허리와 다리가 아파 주무르고 맛사지하고 그랬었다.
어떤 날은 울면서 전화를 했다.
빵집 사장님이 욕을 하고 신경질을 자주 내서 무섭다고, 그만두고 싶은데 다른 아르바이트 학생을 구해서 그 자리를 대신하기 전에는 그만두지 못하게 한다고 했다. 게다가 최저시급에도 못 미치는 수당을 받고 계속 일했다고 했다.
처음에 아르바이를 구할 때 사장이 최저시급보다 낮게 줄 수밖에 없다고 그래도 하겠냐고 해서 꽤 아르바이트 자리가 절실했던지라 최저시급보다 낮게 받고라도 하겠다고 약속했기에 최저시급보다 적게 받아도 아무 불평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용노동부에 문의를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그만두고 싶은데 꼭 그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구해야 하냐고, 그리고 최저시급보다 낮은 금액을 받기로 계약한 상태라면 최저시급에 못 미치게 받아도 되는거냐고..
그랬더니 그런 법이 없단다.
어떤 경우에도 최저시급은 지켜져야 하고, 아르바이를 그만두고 싶다면 후임을 구해놓고 구해야할 필요는 없다고, 일주일전에 통보만 하면 된단다. 후임 자리를 구하는 건 고용주의 몫이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의 책임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딸아이를 고용했던 베이커리의 사장과 통화를 했더니 대번에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며 언제든 그만 두어도 된다고, 1년 동안 최저시급에 못 미치게 지불했던 차액도 보상하겠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사장은 이미 그런 법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어린 대학생을 상대로 일종의 사기(?)를 친 거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어쨌든 딸아이는 그 베이커리를 그만둘 수 있었고 엄마인 나에게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울먹울먹하며 말했다.
대학을 다니느라 도시에 나가 살고 있었기에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시어머니 말씀을 들어보니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는 문제 때문에 거의 한 달 동안 애가 고민을 하며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힘들어 했다고 한다.
생각해볼수록 화가 나는 경험이었다.
아직 사회에 첫 발을 내딛기도 전인 어린 대학생들이 용돈을,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보겠다고 밤 늦은 시간까지 자리에 앉아보지도 못하고 일하는데 어른이 되어서 기특하다 여기지는 못 할망정 시급을 깎고, 그만두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게 윽박지르고, 완전히 아이를 겁에 질리게 만들어서 협박을 하다니..,
대부분의 고용주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내 딸이 어쩐지 소모품이나 물건처럼 취급된 기분 나쁜 경험이었다. 특히 자신의 권리를 잘 알지 못하면 억울하게 당해도 소용없다는 진리를 딸아이에게 깨우쳐 준 기회이기도 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방안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10.9% 오른 시간당 8천350원이다. 국내 최저임금 30년 역사상 8천 원대에 접어든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많이 고용하고 있는 카페나 편의점, 영세업장에서는 인건비 부담 때문에 폐업을 결정할 정도라고 한다. 또 그만큼 대학생들 아르바이트 직장 수도 줄었다고 얘기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물가상승, 고용감소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고 실업자가 늘게 되어 경제 대란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목소리들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은 인상되고,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대학생이 바로 당신의 아들들, 딸들이라면 그 최저임금을 마냥 반대 하고 싶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값싼 노동력으로 이익을 창출할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바로잡아 이익이 창출될 수 있도록 하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몫은 영세자영업자나 편의점, 카페 등의 운영자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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