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마을 이야기

'색'을 물들이다...천연염색의 세계

삼생아짐 2016. 1. 1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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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그런 상상을 한 적이 있었다.




소리가 없는 세상은 어떻게 보여질까?

색깔이 없는 세상은 어떻게 느껴질까?

냄새가 없는 세상은 또한 어떻게 다가올까?

맛을 느낄 수가 없다면 사람의 일상은,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맡고 맛을 느끼는 이 모든 작용들

우리의 오감으로 누리는 이 감각들중 어느 한가지라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면, 세상은 정말 많이 달라질 것이다.


물론 행복한 쪽보다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쪽으로가 분명할게다.




오래전, 그러니까 약 30 여 년 전, 귀향한 남편을 따라 남편의 고향에 정착하며 잠시 색깔에 미쳤었다.


도시에서 볼 수 없었던 그 많은 야생화와 꽃들과 풀들과 나무들에서 느껴지던 

향기와 몸짓과 자신을 짓이겨 보여주던 무한한 색의 세계, 

그래서 우리 주변의 식물들이 내어주는 천연의 색들에 잠시 심취해서 작은 문고판 책 한권을 내내 끼고 살았었다. 




색에 관한 추억은 더 오래전 기억으로 돌아간다. 



한여름밤, 평상 옆에는 쑥불 태우는 연기가 향긋하게 올랐고,

까맣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갈래머리가 유난히도 반질거리고 깡총거렸던 다섯살,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잠이 들적에 


첫눈 올때까지 새끼 손가락 손톱 끝에 봉숭아물이 사라지지 않으면 그 사랑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며 

할머니가 열 손가락 모두에 물들여 주셨던 봉숭아물의 주황색


풀밭에 잠시 앉았다 일어날 때에도 어김없이 물들곤 했던 풀물색


제삿날, 밀가루의 그 창백한 하얀색을 먹음직스러운 노란 색으로 변신시켜 주었던 치자색


여고시절, 단짝 친구와 길을 가다 입술을 호호 불며 먹어야 했던 한겨울 가판대의 그 빨갛고 먹음직스러운 색깔의 떡볶이의 붉은 색


대학시절, 강의를 들으러 갈 때면 환한 등불이 켜진 것처럼 한꺼번에 만개해 온통 담벼락을 덮으며 눈을 어지럽게 했던

그래서 강의실에 들어갈까, 강과 바다로 훌쩍 떠나버릴까 잠시 고민하게 했던 개나리꽃등색


새댁시절, 육아와 가사과 농사일에 지쳐 잠시 눈을 들면

나른나른한 봄 기운에 눈가 가득 졸려움에 쫒기면서도 시야 가득 쳐들어오던

주변의 산야를 온통 하얀 눈처럼 덮어버렸던 새하얀조팝꽃까지......




그러므로 색은 언제나 내겐 신비의 세계였다.


천연의 색을 내어 실생활에 응용하는 천연염색 과정을 알게 되고,

아무리 바빠도 꼭 들어야겠기에 2015년이 되자마자 홍천군 농업기술센터에서 하는 천연염색 과정에 신청을 했고, 늦은 가을에 와서야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야생의 꽃들, 풀들은 제각기의 향기와 모양을 가지고 있지만 또한 짓이기거나 끓이거나 다른 용매와 만나 자신만의 고유한 색을 내어준다. 


예를 들면, 치과 치료제, 혹은 향신료로 쓰이는 정향, 회화나무 꽃인 괴화 등과 노란색 뿌리를 가진 강황, 즉 울금, 그리고 일종의 벌레집인 충명(벌레집 오배자), 뽕나무 심지 등이 그러하며, 진도 홍주의 붉은 색을 내는 지초는 붉은 색을, 카레의 원료인 강황은 노란색을,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뽕나무의 심지는 갈색을 내어준다. 





땅콩 껍질처럼 보이는 오배자, 붉나무의 잎에 붙은 벌레집에서는 어떤 색이 나올까?






원시료로 만든 것은 엷은 미색에 가깝지만 이것에 백반처리하면 좀 더 진한 미색이 나오고, 다시 이것에 철을 처리하면 이렇게 흑색내지는 회색 계통의 차분한 색료로 안정된다.




겨울이면 목감기에 잘 걸리기에 오배자 염색을 한 스카프를 목에 둘렀다.

따뜻하다.

직접 만든 것이라 더 애착이 간다.



역시 한약재로 쓰이는 가자는 가자나무의 열매인데, 미로밸런이라 알려져 있다.




모든 천을 염색할 때에는 이렇게 넓게 펴서 천천히 넣어주어야 골고루 염색이 된다.




이 가자열매는 티벳에서는 약중의 왕이라 부르며 인간의 여러 고통을 덜어준다 하여 불화에서 부처님의 손안에 그리기도 하는데 소화불량, 복통, 수렴, 지사 등의 작용을 하는데, 

이렇게 노란색뿐만이 아니라 회색, 고동색의 염료를 내어준다.



옛날 임금님이 입었다던 곤룡포의 붉은 색은 어디에서 왔을까?




소목이다. 


동남아시아가 원산지인 소목은 향균제와 혈액응고 방지제로 쓰이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무역을 통해 삼국시대에서부터 이 소목을 염료로 사용해왔다고 한다. 

임금님의 옷색깔에 많이 쓰였던 소목은 무명베에는 적합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홍화로 무명베에 붉은 색을 내었고, 이 소목은 백반으로 선매염을 한 연후에 후처리로 철이나 동을 사용해야 붉은색 계통의 여러 색을 얻을 수 있다.




소목으로 얻어지는 다양한 색들








이렇게 피처럼 붉은 소목에서 처리하는 매염제에 따라, 색에 담구는 시간에 따라 다양한 색이 나오니 참으로 신기하지 않은가?




쪽빛 하늘, 쪽빛 바다라고 들어보았는가?




쪽과에 속하는 청대에 탄산칼륨을 첨가하고 아2티온산나트륨을 첨가하여 실온에 잠시 내버려두면 거품이 뽀글뽀글 나오면서 환원되어 염색하기 좋은 상태가 된다.



위에 뜨는 가루를 걷어내어가며 조금씩 조금씩 염색하다보면 한국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색깔중의 하나라는 쪽염색이 된다.





담그는 깊이에 따라, 담그는 시간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푸르디푸른 쪽염색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시원한 느낌의 색이 나왔다. 


천연염색의 세계는 참으로 다양하다.



때로는 내가 원하지도 않았던 더 멋진 색이 나오기도 하고, 또 때로는 너무 진한 색이, 또 때로는 너무 연한 색이 나와 자기들끼리 조화를 이룬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다른 피부색, 서로 다른 언어, 서로 다른 감정과 감정들이 교류하여 하나가 되기도 하고, 엇갈리기도 하며, 대립하기도 한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색으로 한마음이 되어 작업을 하는 동안 역할 분담을 하고, 서로 뜻을 맞추고, 색깔을 달리 내고, 함께 공부하는 동안 내내 토의를 거치면서 

그리고 각각의 천에 다양한 색깔을 물들이면서 잠시동안 개인을 잊고 하나가 되었었다.

하나가 되면서 정도 들었나보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는 날에는 다소 아쉽기도 했다.


자주색의 팥죽, 노오란 늙은 호박으로 끓인 호박죽, 거를 때마다 점점 더 뽀얗고 하얘지던 감자가루까지

천연의 색으로 수놓아지는 우리들의 먹을거리들과 

색색의 염료로 물들 들인 입을 것들......


내 주변의 색을 돌아보면서 색으로 표현하면 나는 어떤 색깔의 사람일까, 잠시 돌아보아지는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