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화단에 진달래꽃이 활짝 필 무렵이면 쌀농사를 짓는 우리 마을에서는 어김없이 해야 하는 일들이 있지요.
일년 벼농사의 시작, 바로 모자리인데요
올해에도 어김없이 모자리 설치 일이 시작되었네요.
조선시대 이전에는 논에다 직접 볍씨를 뿌리는 직파법으로 쌀농사를 지었지만
백성의 생활에 관심이 많았던 세종대왕때
어린 모를 키워 논에 내다 심으면 훨씬 더 많은 벼를 수확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 후부터 모자리를 설치하여 어린 모를 키워 나중에 논에 심습니다.
이 어린 모를 키우기 위한 전과정을 모자리라 하는데요,
요즈음 농사일이 거의다 기계화 되어 일손이 많이 덜어졌다 해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농사일들이 바로 이 모자리입니다.
모판을 기계에 넣어주는 사람과 흙과 볍씨를 보충해주는 사람,
파종기에서 나온 모판을 받아 쌓아놓은 사람 등 기본적으로 여섯 명 정도가 필요하기에 다들 돌아가며 서로서로 품앗이를 해 줍니다.
저도 예외는 아니라서 올해에도 품앗이를 나갔지요.
오후에 출장이 있어 오전일밖에는 못 거들었지만 그래도 동네분들과 함께 농사일을 함께 하며 나누는 이야기들은 꽤 재미납니다.
제가 마음이 급해 얼릉 마치고 가려고 서두르자 동네형님, 너무 서두르지 말라고
주인한테 밥 얻어먹으려면 천천히 해야 한다면서 저를 달래시네요.
작년에 모자리를 해놓고 군대에 간 아들도 일 손 바쁠때 거들겠다더니 정말 외박 허가를 받고 새벽같이 집으로 와서 함께 모자리를 했습니다.
며칠 전부터 남편이 볍씨를 소독약을 푼 물에 담그어 소독을 하고, 발아기에 집어 넣어 싹을 틔웠습니다.
올챙이 꼬리처럼 살짝 빠져나온 꼬리 보이시죠?
이게 바로 볍씨의 싹입니다.
가을철, 볍씨를 말리다보면 이 꼬리 같은 것이 가시처럼 콕콕 찌르기도 하지요.
어찌보면 볍씨의 자기보호 수단인데 봄철에는 이 눈이 잘 터야 좋은 모로 클 싹이 되는거지요.
현미의 발아눈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어찌보면 쌀의 생명부분이라 하겠네요.
최신식 파종기입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일일이 흙은 넣은 모판에 파종기를 직접 손으로 돌려 볍씨를 넣었지만 지금은 모판을 집어넣으면 흙을 담고 볍씨를 뿌리고 다시 흙을 덮는 과정까지 한 번에 다 해 줍니다.
게다가 상토흙도 예전에는 일일이 산에서 퍼다가 체로 쳐서 돌을 골라내고 소독약을 뿌려 일주일 정도 덮어놓았다가 말려서 쓰곤 했는데 이제는 비료처럼 이렇게 포장되어 나와 일이 훨씬 수월해졌답니다.
파종기에서 볍씨를 적당히 뿌리면
이렇게 기계가 돌아가며 흙을 굴려 볍씨를 덮어줍니다.
흙과 볍씨가 담아진 모판을 받아서 차에 차곡차곡 싣고
모자리 할 하우스로 가져다가 한 장 한 장 나란히 늘어놓습니다.
작년에 모판 바닥을 평평하게 다져야 한다며 고민고민하다가 저보고 들어가서 구르라던 제 남편
올해에도 승용차를 끌고 들어가 그림처럼 다져놓았네요.
왜냐하면 바닥을 평평하게 해줘야 볍씨가 들뜨지않고 고르게 발아하거든요.
한 판도 빠짐없이 물을 골고루 주고 난 후, 비닐을 덮어주고, 다시 보온을 위해 이부자리도 덮어줬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며 문도 만들어서 닫아 주었지요.
따뜻한 하우스 안에서 이제 볍씨들은 본격적으로 싹을 틔우고, 그리고 파랗고 이쁜 모로 자라날 겁니다.
그 동안에도 여러차례 물을 줘야 하고, 소독약도 쳐야하고, 보온덮개을 덮었다 열었다 햇볕 관리도 해줘야 하고 일은 끊임없이 이어지겠지만 한 일주일동안은 여유가 있습니다.
시골은 어린 아이의 고사리 손도 요긴하다더니 올 해 못자리도 아들녀석 덕분에 훨씬 수월했습니다.
사실 고3 수험생 때에도 들어와서 모심기 할 때 도와주기도 하고, 작년에도 군대 가기 전에 농사일 다 거들어 주고 갔었는데 올해에도 일부러 외박 허가를 받아 나와 도와주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어려서부터 부모가 하는 일을 거들어야 이담에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의 고생을 알고 집안 일 거든다는 명목하에 저희는 아이들에게 저희가 하는 일 골고루 다 시켰었는데 가끔은 미안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죄(?)이니 어쩔 수 없지요.
작년에 모자리 해놓고 남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이웃분들이 돌아가며 관리를 해 주시고, 그렇게 어렵게 생산한 쌀이건만 쌀의 소비가 줄어 파느라 마음 고생도 많이 하고 여러모로 마음 졸였어도
쌀농사만은 포기할 수 없는게 농부의 심정이네요.
아침저녁으로 남편과 함께 모자리를 돌아보며, 여전히 속삭여 봅니다.
무럭무럭 자라라, 아기모야.
더불어 올해에도 풍년농사 짓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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