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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 사람들의 지혜가 담긴 너와집과 굴피집

삼생아짐 2015. 1. 2.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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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산골이라고 들어보셨나요?

깊고 깊은 산골, 산높고 골짜기 깊은 그런 산촌마을을 말하는데요,

6.25전쟁 난 것도 모르고 살았다는 산촌마을 삼척에는 자연이 주는 재료를 활용해 거주지를 마련했던 산골 사람들의 소박하고 현명한 지혜가 담긴 지붕 모양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첫번째가 바로 굴피집인데요, 굴피집은 참나무나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등의 속껍질을 사용하여 지붕을 만드는 집을 말합니다. 

이 지붕형태는 태백산맥이나 소백산맥 일대를 비롯한 산간지방 화전민들의 집에 널리 쓰인 형태인데요, 고려시대 이전부터 사용되었다고 하네요. 



굴피는 처서를 전후로 하여 수령 20년된 이상 된 나무에서 얻는데요, 물이 한참 올라 껍질을 벗기기 쉬운 때가 바로 음력 7월경이지요. 




이렇게 벗겨낸 굴피는 건조되면서 돌돌 말리지 않도록 잘 펴서 차곡차곡 쌓아 돌을 올려놓고, 그늘에서 4-5일정도 말려 9~10월에 껍질쪽을 밑으로 하여 처마로부터 마룻대쪽으로 포개어 쌓습니다. 




껍질이 벗겨진 나무는 죽지 않을까 염려도 되지만 곧 새살이 돋아 다시 껍질이 생겨나므로 걱정없다네요.

굴피의 수명은 "기와 만년에 굴피 천년"이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길어서 20년정도 간다고 합니다.




그 사이사이 보통 2~3년에 떨어잇기(밖으로 드러난 굴피를 안쪽으로 넣고 안쪽의 부분을 바깥쪽으로 교체하는 일)를 하거나 새로운 굴피로 보수를 하는데요, 




삼척 대이리에는 20 여 채의 굴피집이 있었는데, 근대화의 물결에 밀려 거의 사라지고 지금은 단 한채만이 남아 있다네요.



(삼척 너와마을 자유게시판에서 인용)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에 중요민속자료 제 233호로 지정된 굴피집은 동서로 길게 뻗은 계곡의 냇가 북쪽에 자리잡고 있는데요, 언제 지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약 19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본채에는 사랑방과 안방 가운데에 마루와 도장방을 두고, 안방쪽에 부엌을 두었습니다. 부엌과 마루 앞은 흙바닥으로 된 통로 같은 공간이 있고, 사랑채 건너편에 외양간을 붙여 돌출시켰고, 도장방에 뒷문을 달았습니다. 벽은 흙벽과 판자벽으로 마감하였고, 연기는 지붕에 설치한 까치구멍으로 나가도록 하였습니다.

삼국시대 이래 우리 문화가 전수된 일본에서도 나무껍질을 여러켜로 만든 지붕을 볼 수 있는데, 규슈지방의 광륭사 법당과 나라현의 가스사시가에 전시된 예가 대표적이라 하네요.

( 네이버 백과 사전 인용)


위의 굴피집은 대금굴과 환선굴 올라가는 곳에 있는데, 대이리 203번지의 이종순가옥의 원형을 보존하여 방문객들이 볼 수 있도록 지어놓은 것입니다.



위의 사진은 삼척너와마을 박태화관리자님이 찍으신 사진인데요, 삼척 너와마을에서는 이 굴피를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굴피를 마련하여 잘 다듬어서 그림을 그려가는 체험인데요, 

어린 아이들에게 산골마을 전통의 집 형태와 재료를 알게 해 주고, 

그림을 그려 창의력을 북돋아주는 일석이조의 체험 프로그램입니다.




완성된 굴피그림, 꽤 이쁘죠?




굴피집과 함께 또하나의 산골마을의 대표적인 집은 너와집인데요, 

너와집은 '느에집'또는 '능에집'이라고도 부르는데 말 그대로 너와를 지붕으로 얹은 집을 말합니다.




너와는 200년이상 자란 붉은 소나무 토막이나 전나무를 길이로 세워 놓고 쐐기를 박아 쳐서 잘라낸 널쪽으로 보통 가로 20~30센티미터, 세로 40~60센티미터, 4~5센티미터의 두께로 만들어 2겹으로 끝부분이 겹쳐지도록 비늘모양으로 이어가는 지붕을 말합니다. 




보통 지붕처마쪽부터 위쪽으로 이어가는데, 이음이 끝나면 지붕이 비와 바람에 파손되지 않도록 '너시래'라는 길쭉한 장대를 여러 개 걸쳐놓고 지붕 끝에 묶거나 돌을 올려놓아 고정시킵니다. 

너와는 70장이 1동이 되며 한칸 넓이의 지붕에 1동반에서 2동이 들어간다네요.

수명은 약 5년 정도이며 기와 지붕을 수리할 때처럼 썩은 것은 들어내고 새것으로 교체한다고 합니다.




너와를 만들 때에는 톱을 사용하지 않고 도끼를 사용하는데, 톱으로 자르면 너와가 쉽게 갈라지거나 섬유질이 파괴되어 빗물이 새거나 잘 흘러내린다고 합니다. 


초가지붕이 보온이 잘 되도록 서까래 위에 흙을 깔아 이엉을 엮는 것에 비해 

너와지붕은 흙을 전혀 쓰지않고 너와를 직접 서까래 위에 길이의 3분의 1정도씩 겹치도록 덮어나가는데, 

비가 오거나 습할 때에는 부피가 늘어나 비와 습기를 막아주지만 

겨울에는 건조하여 수축하여 틈새로 연기가 빠져나가기도 하지만 너와틈새로 밤하늘의 별을 볼 수도 있다니 낭만적인 형태의 지붕이라 아니 할 수 없네요. 


게다가 눈이 오면 절로 너와가 늘어나서 방안의 따듯한 공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숨구멍을 막아주므로 보온이 되기도 하였다니 참으로 지혜로운 지붕이라 하겠네요.




그런데 이 너와집도 굴피집처럼 근대화의 물결에 밀려 거의 사라지고 약 3채 정도만 남아있는데 

위의 너와집은 김진호씨의 집으로 삼척군 도계읍 신리에 있는 중요민속자료 제 33호로 지정된 집이고요, 

역시 굴피집처럼 대금굴 올라가는 곳에 중요민속문화재 221호로 지정된 강봉문씨의 집이 남아 있습니다.


강봉문씨의 집은 11대조가 병자호란(1636년)때 이곳으로 피난와서 지은 것이라는데 전통적인 너와집과 굴피집의 내부형태에 외양간위에 다락을 꾸미고, 마루를 중심으로 안방, 도장, 사랑방, 부엌, 봉당을 구성하고 있으며 대문간 왼쪽에 외양간을 붙여 돌출시킨 형태로 대금굴이나 환선굴 방문시 꼭 들러보면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너와집과 굴피집은 모두 산간지방에 지어진 집으로서, 짐승으로부터 가축과 사람을 보호해야 했기에 집 한채에 살림에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와 있는 형태, 즉 오늘날의 아파트와 비슷한 형태의 집입니다. 

집안에 방, 마루,부엌,창고,봉당(부엌 바닥), 외양간이 모두 다 꾸며져 있고, 




방의 모서리에는 코클이라 불리는 벽난로가 있어 실내 조명과 보조 난방으로 사용하고(방구석 기둥에 흙을 바르고 흰 나뭇가지들 사이에 대고 흙으로 마감), 

지붕 양쪽에는 까치구멍이 있어 연기가 빠져나가도록 설계 했으며, 불씨를 모아두는 화티(돌을 흙으로 덮어 쌓아올린 것으로 성냥이 없던 시기에 불씨를 보존) , 

조명역할을 하는 두등불(마루와 부엌의 조명을 위하여 호롱불을 놓아두던 자리인데 부엌과 마루 사이 벽에 구멍을 뚫어 두곳을 동시에 밝힘), 

햇싸리를 엮어 항아리처럼 만들어 식량을 저장하던 채독(콩 옥수수, 감자, 수수 등의 곡물을 저장하는 통, 소똥에 재를 이겨 겉에서 바르면 새지 않고 쥐도 뚫지 못했다고 한다)

통나무 속을 파내어 김치를 보관하던 김치통(무김치, 배추김치 등을 담는 통으로 김치맛이 시어지지 않고 독보다 낫다고, 크기는 120센티미터 정도,지름 70센티미터 정도), 물레방아 등이 있습니다. 


그밖에도 산촌사람들의 생활필수품으로 눈이 올 경우 신고 다니던 설피, 사냥용 도시락통인 주루막, 눈이 왔을 경우 사냥할 때 사용하던 물푸레 나무로 만든 창 등이 벽에 걸려있어 산촌사람들의 생활상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점차 사라져가던 너와집과 굴피집은 2002년 삼척 너와마을이 정보화마을로 지정되면서 되살아나기 시작했는데요, 지금도 너와마을에서는 이렇게 너와집 형태의 숙박동을 지어 체험객을 대상으로 여러 체험을 진행하고 있는데, 너와집과 굴피집 외에도 통방아, 물레방아 등을 복원하여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의 산골 생활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너와집과 굴피집은 말 그대로 우리 조상들이 집 지을 재료를 구하기 힘들었던 산간지방에서 지역에서 나는 재료를 활용하여 주거지를 마련했던 슬기로운 주거의 형태지만 

지금은 벌목이 금지되어 재료를 구하기 힘들어지고, 너와나 굴피를 뜨는 기술자들이 떠나면서 그 원형을 지키기가 점차 어려워져 잊혀져가는 우리의 주거형태가 되어가지만 

이렇게라도 보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너와집과 굴피집 재료 채취 과정과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는 강봉문씨의 눈에 덮힌 너와집 사진은 삼척시청의 박래균주무관님과 강원도청 연송흠 주무관님이 찍으신 사진입니다. 

두분다 삼척시의 정보화마을 업무를 맡아 보셨던 분들로 삼척시 정보화마을의 조성과 발전에 공이 큰 분들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