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싱숭생숭, 따뜻한 기온이 땅속에서부터 스멀스멀 기어올라오고, 여기저기서 올라오는 꽃 소식에 눈이 어지럽던 차,
오랫만에 온 가족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이제 아들녀석이 군대에 가거든요.
요즘은 군대도 경쟁이라 네 번 도전 끝에 드디어 요번 달 말일경에 입대하기로 결정되었네요.
아들녀석 군대 가기전에 모두 모여 보자고, 그래서 큰딸과 막내녀석 불러들여 함께 동해안으로 떠났습니다.차에 타자마자, 뒷자리가 떠들썩해지기 시작합니다.
이젠 전부 체격들이 커져서 뒷자리에 세 녀석이 앉으면 좀 좁거든요. 처음엔 자리가 좁다고 투닥거리더니...
영재녀석 : (자랑스럽게)내가 옷장 정리해 보니깐 누나랑 민재 줄 만한거 많더라?
수향녀석 : (씨익 웃으며)난 그딴거 안 줘도 돼. 난 나라사랑카드만 있음 돼. 매달 10만원씩 꼬박꼬박 통장에 입금될거잖아.^^
영재녀석 : (헉..)어휴...누난 군대면제라서 좋겠다. 생긴거만 여자지 하는 짓은 완전 남자잖아?
수향녀석 : (헐~~)너 나한테 잘 보여야 해, 군대가면 내가 맨날 편지 써 줄거거든. 상관들이 누나 있나 없나 물어보는게 군대생활 첫번재 관문이래.
영재녀석 : (흥!)누난 안 써주는게 도와주는 거거든? 상병들이 누나 얼굴 보면 도리어 나 기합받아. 엄마랑 아빠랑 누나 낳아놓고 울었잖아, 어디서 이렇게 못 생긴게 나왔나하구.
수향녀석 : (헉!!!)넌 태어나서 엄마 젖도 제대로 못 빨았잖아, 바보같이.
영재녀석 : (가소롭다는듯)그래도 이렇게 잘 컸잖아?
하면서 연실 투닥거리면서 군대 얘기, 태어난 얘기로 실갱이를 벌이는데...이게 좀 많이 시끄럽더라구요.ㅡㅡ;;
그순간 남편이 음악을 틀었는데,
녀석들, 야, 아빠 시끄러운가 보다, 음악 트셨어...
하는데 흘러 나오는 음악이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
'집 떠나와 열차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밖을 나설 때 가슴 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포기 친구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순간 뒷좌석이 찬 물을 끼얹은 듯 조용~~~~~~
그랬다가 일제히 웃음을 터뜨리는데, 갑자기 수향녀석, 민재가 울고 있대요.
돌아보니 막내 녀석, 눈시울이 글썽해서 펑펑 울고 있고...차 안은 울음과 웃음이 뒤범벅이 되어버렸네요.
타이밍 적절한 노래와 아들녀석과의 이별 예감,
웃고 있지만 저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오는 거 참느라 혼났네요.
하여튼 그렇게 떠들면서 강릉 경포대에 도착해보니, 날씨가 다소 쌀쌀한데도 많은 분들이 벚꽃을 보러 오셨네요.
벚꽃 시샘 바람이 좀 차도 꽃은 이쁘게 폈네요. o(^-^)o
강릉 시내는 경포대뿐만이 아니라 곳곳에 벚꽃이 심어져 있어 차를 달리는데 길이 완전 환상적입니다.
수향녀석은 셀카 찍느라 정신없고 녀석 아빠는 아들에게 사진 찍는 법 알려줍니다.
자식, 학교에서 사진 동아리 들어가 열심히 출사다녔다면서 아직 녀석 아빠보단 한 수 아래입니다.
막내녀석도 언제 울었나 싶게 부드러운 미소를 띤 꽃남이 되었네요.
답답한 아파트를 벗어나 모처럼 꽃 구경 온 녀석들, 완전 신났습니다.
만날 때마다 쑥쑥 커져서 이젠 183 센티미터가 넘는 막내녀석, 이젠 제가 한참 올려다봅니다.
함께 살지 않으니 만날 때마다 녀석의 폭풍 성장이 새롭기만 합니다.
벚꽃 축제 시작일이라 그런지 아직 공연 준비는 안 되었나 봅니다. 조용하고 한가로워 오히려 찬찬이 벚꽃을 즐기기에는 좋습니다.
그런데 하늘이 흐려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하네요.
숙소에 들어가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라,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으로 차를 돌렸습니다.
기념사진 찰칵!
또다시 셀카!
(그넘의 셀카...ㅋ) 하면서도 저도 함께 찰칵!
오랫만에 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이곳 저곳을 찬찬이 둘러보는데, 문득 책이 한 권 눈에 띄더군요.
아...부끄럽지만 제 초기 작품도 저기에 있습니다.
오래전에 쓴 소설이라 서툴고 미숙한 부분이 많은 중편 소설인데, 황송하게도 문학상을 주셨습니다.
막내녀석, 엄마가 쓴 소설이라 신기하다면서 그 자리에 앉아 책장을 넘깁니다.
와~~ 얼마나 부끄러운지..
녀석이 소리내어 읽는데, 온 몸이 오글거리며 정말 덮쳐서라도 빼앗고 싶은 심정입니다.
좀 더 잘 쓸걸......싶은 후회가 밀려오네요. 하지만 그때는 그게 최선을 다한 작품이었겠지요.
그런데 아들녀석, " 체온으로 데운 잠자리? 팔베개? 쓰다듬어? 손길을?"
해가며 킥킥 거립니다.
예전에 제가 습작하던 작품중에 조금 성인(?)스러운 부분을 묘사한 소설이 있었는데, 그걸 노트북에 저장해 놓은 걸 녀석이 어느날 읽길래 제가 못 읽게 막느라고 덮쳤더니 엄마가 온몸을 던져 막는다고, 자긴 엄마가 전직 골키퍼인줄 알았다나요?
엄마 야한 소설 쓴다고 두고두고 놀려댔었는데 이 소설에서도 그런 부분만 기가 막히게 찾아 읽고 있습니다.
딸녀석과 큰아들녀석, 이녀석 뒤통수 때리면서 혼내주고요, 정말 글이란건 함부로 쓰면 안되겠다는 반성을 다시 했습니다.
그 후로, 진중하게 앉아 글 쓸 시간이 많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제가 재능이 없는건지,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 못한 소설들이 많아 늘 마음 한구석이 답답했었는데, 평생을 가져가는 업보 같습니다.
쓰고 싶은데 쓰지 못하는거요.
하여튼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을 나와 이번에는 커피숍이 줄지어선 안목항으로 들어가서 전망 좋은 커피숍으로 올라갔습니다.
저야 뭐 원래 커피를 좋아하지 않으니 딸기 쉐이크 시키고요, 모두들 커피와 막내녀석 화이트 초코렛을 시켰는데 금액이 자그마치 4만원이 넘네요.
우씨...제가 투덜거리니깐 녀석들이 웃네요. 다른데서도 다 이 가격 한대요.
문화생활에 드는 돈이니깐 아까워 말래요.
쌀이 10킬로가 넘는데...이걸 한 번에 마셔서 없애나.....투덜거렸더니......
녀석들, 엄마 촌아줌마인건 어쩔 수 없다네요.
자식 셋 기르고 학비대고 생활비 대려면 어쩔 수 없는게 현실이거늘...
그래, 생활의 무게는 아직까지 부모인 나나 지자...포기합니다.
좀 비싼 값을 들여서 그렇지, 높은 층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모습은 좋네요.
강릉에 사시는 지인덕분에 전망좋은 방을 구했습니다.
지난번에도 와서 묵었는데 방이 깨끗하고 침대에 누워서도 일출을 볼 수 있는게 장점입니다.
대낮인데 수평선 끝에 환하게 무지개가 떴네요.
녀석들,환호성 지르며 사진 찍고 저마다 이리저리 보내느라 정신없습니다.
하늘에도 무지개가 떠 있다는데, 제 눈에는 안 보이네요. 바다끝에 떠오른 무지개만으로도 황송합니다.
짐을 풀고, 숙소에만 있기에도 뭐해서 일찌감치 낮술을 하러 나갔습니다.
이젠 아이들이 커서 제법 술대작을 하는데, 저야 뭐 아직까지 녀석들의 그런 모습이 적응이 안되지만 녀석들 아빠는 녀석들과 곧잘 대작하는지라 술 자리가 자연스럽네요.
비가 마구 내리고 있어서 생선회는 비릴 듯하여 돼지갈비 집을 찾아갔지요.
오랫만에 연탄불에 구워먹는 돼지갈비, 맛이 제법 괜찮습니다.
아들녀석, 술잔을 비우기 전 한쌈 싸는데, 넘 맛나보여 찰칵!
주인 아주머니가 돼지껍데기도 서비스로 주시네요. 쫄깃하면서도 맛난 돼지껍데기, 언제부터 이 맛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봄비 세차게 쏟아지는 날, 대폿집에 앉아 기울이는 술잔이며 따뜻한 연탄불이며 오고가는 이야기들이 참으로 정겹습니다.
녀석 아빠, 아들의 술잔에 술을 따라줄 때마다 "잘 갔다와!" 합니다.
아들녀석,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미칠라 그럽니다.
하여튼 은근 짖궃은 구석이 있습니다.
저녁 식사 후, 밤 벚꽃을 보러 온건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그랬는지 불을 켜놓지 않아 조금 실망, 노래방을 갈까 하다가 리조트 오락실에서 간단하게 몸풀기 게임을 했습니다.
빗속에 보는 벚꽃 구경도 괜찮았을 터인데, 많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리조트 지하 오락실에서 보내는 시간도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평소엔 느릿해서 나무늘보 같은 녀석이지만 운동할 때에는 순발력이 꽤 뛰어납니다.
영재녀석 완승^^
이번에는 농구게임
영재와 민재가 시합을 하는데 녀석의 아빠도 구경하다 끼어들었습니다.
승부는 민재의 완승.
다음 달 부터 학교의 농구선수로 뛴다더니 실력이 제법 좋네요.
학교에서 제일 크다더니 키 커서 농구하는 거 아냐? 했더니 아니라네요, 자기 실력 괜찮다고 큰소리 치더니 제법 골대에 집어넣는 성공률이 높습니다.
숙소에 돌아와서 다시 또 한잔씩을 걸치더니 영재녀석 밤바다가 보고 싶다고 나가서 보내 온 사진입니다. 우리가 묵은 동이 '듀오'인데 방 두칸, 거실이 있고 욕실이 두개여서 5인가족이 숙박해도 여유가 충분하네요.
리조트 앞 전용 해변, 여름에는 해수욕을 하면 좋을 듯 싶은데, 밤에도 산책하기엔 좋네요.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를 보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 다짐과 계획도 세웠겠지요?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 한다는 군대...
막상 입대를 앞두니 마음이 많이 심란하겠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가족과 추억도 쌓고 마음각오도 다졌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다음 날 아침, 리조트 8층에서 바라본 일출이 참 아름답습니다.
구름 뒤에 숨어서 살그머니 뜨는 해
숨어서 지켜보는 또 한 사람.....
"군대가도 해 뜨는 건 볼 수 있거든?" 하네요.
맨날 뜨고 지는 게 해라는데,
맞는 말인데 왜 어이없게 느껴는건지요? 일부러 녀석들 델구 동해바다 온건데 이렇게 말함 제가 섭하지요. -_-;
올 12월 31일날 해돋이보러 동해바다 가자 그러면 똑같이 말해야겠습니다.
"집에서도 해 뜨거든?
맨날 뜨고 지는 게 해거든?"
제가 원래 은근 뒷끝있는 여자거든요.
그래서 민재녀석은 늘 저더러 '엄마 뒷끝 작렬'이라 하는건지도 모르지만요.ㅋ
그래놓고 이녀석, 자기는 해돋이 지켜보고 바다도 지켜보고 있습니다.
평소에도 늘 바다타령 하던 녀석이니 실컷 봤겠지요.
뒤늦게 일어난 민재녀석, 놓친 일출대신 잠탱이 형과 술꾼인 누나의 뒷모습도 찍고, 리조트 내 이곳저곳의 사진을 찍느라 정신없네요. 아늑하고 너무 마음에 들어 나가기가 싫다네요.
녀석이 찍은 사진들인데 그런대로 느낌 괜찮지요? ㅎㅎ
둘째날, 비록 구름에 가린 해돋이지만 일출도 보고, 화창하게 맑은 날씨 덕에 벚꽃이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길거리도 더욱 깨끗해지고 전날보다 벚꽃도 더 많이 피어난 듯 싶습니다. 돌아보는 곳마다 환한 꽃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며 여심을 유혹합니다.
달리는 차안에서도 이렇게 이쁘게 나오네요.
주문진항을 돌아 양양 낙산으로 향했습니다.
원래 양양에 오면 늘 가던 막국수집이 있는데, 열한시가 되어야 문을 연다고 해서 바닷가에서 식사를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아침 식사 메뉴를 물어봤더니 각자의 취향이 다 다르네요.
죄송하긴 했지만 막내녀석은 회덮밥, 큰아들녀석이랑 저는 물회, 지난밤에 술 잔뜩 푼 남편과 딸녀석은 물곰국을 시켰네요.
직원들이 결혼식 가서 일손이 딸린다면서도 사장님, 맛나게 요리해 주셨습니다.
제가 웬만하면 음식점 잘 안 올리는데 물곰국이랑 물회를 넘 맛나게 먹어서 소개해 드립니다.
특히 이집의 밑반찬 중 직접 잡은 도루묵으로 조린 도루묵 조림이 별미입니다.
파시라니깐 돈을 안 받고 그냥 싸주시네요.
다음에 낙산에 가면 들러보셔요. 조미료를 쓰지 않은 깔끔한 맛이 일품입니다.
삼생아짐 소개 받고 왔다 하면 더 잘 해주실 거예요^^ ㅋ
낙산사 올라가는 초입새에 있는 식당입니다.
아, 첫째날 강릉 사천항에서 먹었던 물회도 꽤 맛난 곳 중의 하나입니다. 장안횟집인가, 그런데 물회와 함께 나오는 우럭미역국이 별미지요. 우리 아들 말마따나 벚꽃 여행이 먹방여행이 되어버린 감도 있네요.^^; 그만큼 동해안 여행에서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는 건 행운이겠지요
늘 다니던 구룡령이 아니라 오랫만에 한계령을 넘었습니다.이틀전에 내린 눈이 이곳을 딴 세상으로 보이게 합니다.
꽃 구경 다녀온 것을 금새 잊어버리게 할 정도입니다.
산 아래에는 벚꽃이며 봄꽃들의 꽃잔치인데, 이곳은 눈이 하얗게 덮여 꽃구경과 눈구경을 동시에 할 수 있습니다.
인제에서 내려 주고 버스 타고 가라고 했더니 수향녀석과 민재녀석, 스마트폰으로 차시간 조회하고 두시간이 넘게 걸린다면서 투덜거려 홍천터미널에 내려주기로 했는데, 갑자기 남편 방향을 바꾸어 녀석들 집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뒷좌석에서 환호성을 지르고 난리도 아닙니다.
아빠 멋쟁이, 아빠 최고!
피곤하다던 남편,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네요. 그거 보고 녀석들 또 웃어댑니다.
역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남편도 아이들 아부에 약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돌아오는 길, 영재녀석
"아빠, 피곤하시죵? 제가 운전해 드릴테니 주무실래요?" 해가며 연실 아부하는 바람에 남편이 운전대 넘겨 줬습니다.
그래놓고 사진 찍어서 수향녀석에게 전송
지난번에 저한테 와서 스타렉스(스틱)만 끌어보고 아직 소나타(오토)는 끌어보지 못했던 수향녀석, 조심해서 가라며 내심 부러운 눈치......
정말 오랫만의 가족여행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도시로 나가고, 둘만 살다가 요즘은 휴학한 큰아들녀석과 살면서도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기 어려운데, 큰 아들 녀석의 입대를 계기로 뭉친 1박 2일
이제 이녀석 군대에 보내고 나면 앞으로 더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겠지요.
살면서 느끼는건데 세월, 정말 잠깐(!)입니다.
가족끼리 부대끼며 사는 것도 정말 잠깐(!)입니다.
사랑만 하고 살기에도 모자른 세월이라고 누군가 말했었지요.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고, 베풀 수 있을 때 베풀고, 아껴줄 수 있을 때 아껴주는 것, 그게 현명한 일일 듯 싶습니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가 남지 않을터이니까요.
(Go East, 삼생아짐네 가족도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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